[민언련과 나] 열정 그 자체였던 민언련 모니터 활동
등록 2014.11.2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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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그 자체였던 민언련 모니터 활동





정희종 회원 dulbo1@hanmail.net


1992년 여름쯤 어떤 모임에서 김언경 현 사무처장으로부터 신문모니터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현동에 있는 ‘언협’ 사무실을 찾아갔다. 당시엔 크지도 않은 반지하 사무실 공간에 사무처가 있었고 그 옆에 회원 활동 공간이 있었던 아담한 규모였다.


모니터 활동과 함께한 '언협' 시절


그 당시는 1992년 총선을 끝내고 그해 겨울 대선을 앞두고 선거보도 모니터 활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선감연)’가 꾸려지던 때 나는 신문모니터분과 활동을 하며 일주일에 두 번씩 모임을 갖고 모니터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 때는 민주정권 수립이라는 시대적 사명감과 함께 언론보도 감시를 통하여 언론개혁 활동에 동참한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었다.


1992년도 겨울의 선감연 활동에 참여한 회원들의 열정이 대단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과 비교하면 훨씬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신문과 방송 보도를 양적·질적으로 분석하였으며, 선거 이후 최종 보고서를 발간할 때까지 작업했었다. 그 때는 참 열정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선감연 이후 언협에게는 독자적인 모니터 활동을 해야 하는 과제가 대두되었다. 그 동안의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신문모니터 활동을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1대 분과장인 김영일 회원의 뒤를 이어 2대 분과장을 맡게 되었다. 매주 한 번씩 만나서 모니터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꾸준하게 하였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언론보도를 모니터 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비평의 관점을 세워야 하며, 토론 과정에서 일정의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사명감이 없으면 지속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꾸준하게 개최된 언론학교를 통하여 문제의식을 가진 회원들이 계속 가입하였고 조직은 활력을 띄었다. 또한 이 시기에 영화분과, 인터넷분과 등 다른 회원조직도 확대되었고. 한 달에 한 번 가는 ‘참언론산악회’ 모임 등 다양한 회원 활동이 이루어졌다.


언협의 변화와 깊어지는 고민


언협이 시민운동조직으로 변모해 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특히 신문과 방송 모니터 활동이 회원 중심으로 꾸준히 지속되었던 것은 커다란 자산이었다. ‘조중동’이란 용어가 보편화되고, 조선일보 반대운동도 본격화되어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여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언론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강하였다. 이후 1995년 지방선거, 1996년 총선과 1997년 대선 ‘선감연’ 활동에도 언협 신문분과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보고서를 생산해 나갔다. 물론 이 보고서가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있지만 언론이 얼마나 불공정하며, 여론 조작에 앞장서는가를 증명해 준 활동이었다고 평가한다. 특히 1997년 대선보도에서 조중동은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편파적인 보도를 하였는데, 이에 대한 비평을 꾸준히 해낸 것도 커다란 성과였다.


언협이 연남동으로 이전한 이후 회원 활동 공간도 더 넓어지고 참여도 더욱 활발해졌다. 이 시기의 추억은 모임을 끝내고 홍대로 진출하여 거의 밤을 새면서 뒤풀이를 했던 것이다. 토론이 이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우정과 단합이 돈독해졌으며, 이때의 열정이 바탕이 되어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만남이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연남동 시절에 언협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명칭도 민언련으로 바꾸고 시민운동 조직으로 변신하였으며, <말>지와의 관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 시기에 회원 중에 몇몇을 이사로 선임하였는데, 나도 이사가 되어 회의에 참석하면서 민언련 전체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역량 부족으로 민언련의 당면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말>지와의 관계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 열정을 기억하며...


약 10여 년 동안 모니터 활동을 한 이후 제3대 분과장인 김은주 회원에게 책임을 넘기고 평회원으로 참여하다가 점차 활동을 그만 두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활동한 시기는 민언련이 언론개혁이라는 과제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려고 노력했던 때였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고 성유보 이사장님 시절에 언론개혁 홍보를 위하여 언론노조 등과 함께 전국 순회 자전거 행진에 참여한 것이다. 10일 동안 서울-목포-부산-대구-서울 등 주요 도시를 국도를 따라서 주행했는데, 나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5일 동안 함께 한 기억이 난다. 그 만큼 열정이 있었던 시기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