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을 위한자발성과 열정이 모인 곳, 민언련
김종규 전국언론노조 전 수석부위원장 kjk6076@hanmail.net
내가 처음 민언련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언론노조에 파견 나가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우리사회의 언론환경에 대한 이해가 아주 보잘 것 없었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도 해 보았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언론노조에서 나온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내가 우리 사회의 언론 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론노조가 언론 현업자들이 모인 단체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이해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처음으로 만난 시민단체가 민언련이다.
민언련과의 첫 만남
당시 민언련 사무실은 서대문로터리에 있었는데 마침 내가 나온 고등학교 근방이었다. 그래서인지 민언련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의 인상은 마치 오래 전부터 이곳을 드나들었던 것만 같다는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좁은 사무실에서 여러 명의 활동가들이 방문객(?)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때는 뭐가 그리 바빠서 찾아온 사람도 거들떠보지도 않는가 하는 서운함이 있었지만 그 이유를 나중에는 알 수 있었다. 너무 할 일이 많았던 것이었다.
당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변화에 따른 미디어 환경의 격변기였다. 4년에 걸친 DTV 방송방식에 대한 논쟁이 일단락 된 직후라 그동안 DTV논쟁에 가려져 있었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위성DMB, IPTV 등과 같은 뉴미디어 매체의 등장과 신문유통원, 신문지원 방안 등 사양길에 접어든 신문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었다.
또 경인지역 새 방송 사업자 선정과 관련하여 많은 시민사회와 이해당사자들이 씨름을 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방송법 개정과 관련한 의제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당면한 문제가 이렇게 많으니 사무처 활동가들이 눈코 뜰 새가 있었겠는가.
2014 명랑운동회에서 회원들과
연대와 소통의 진전
언론과 관련된 많은 일들이 언론노조만의 의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민사회와의 연대와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후에야 본격적으로 언론시민단체와 연대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딴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다고 위안할 수 있었던 것에는 민언련의 도움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민언련은 여느 언론단체와는 달리 천 명이 넘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 재정과 업무능력이 안정되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사안은 경인지역의 새방송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이 일이야말로 민언련의 역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하신 성유보 선생님은 당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경인방송을 설립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 해 주셨다. 아마도 언론노조 보다는 전임 민언련 이사장으로서 민언련에서 앞장섰던 일이었기에 그토록 애정을 가지셨다고 추측도 해본다.
감동과 배움이 있는 민언련 활동
나는 민언련과 인연을 맺으면서 정말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내가 만난 분들 모두는 우리사회의 언론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자는 뜻 하나만을 가지고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연대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각자 직업이 있는 분들이 바쁜 틈을 쪼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함께 했다. 거대한 권력과 싸우는 일이기에 일신상의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거침없이 헌신적으로 일하시는 분들을 통해 나는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보수도 없이 밤을 새워가며 언론모니터를 하는 민언련 분과위원들, 웹진을 발행하고, 논평을 쓰고, 각종행사를 완벽하게 해내는 상근 사무처 식구들, 적은 수입을 쪼개 후원을 하는 회원 모두에게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러한 분들이 든든하게 지원해 주는 민언련이 버티고 있는 한 우리의 언론환경도 보다 좋아 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감동이 나를 지금까지 ‘조금이나마 후원하고 가끔이나마 활동하는 민언련 회원’으로 있게 해 주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