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토달기] ‘원칙 깬 사면 요청’에 ‘원칙 없는’ 보도
등록 2015.01.22 17:28
조회 659



신문 토달기 | '비리 재벌 총수 봐주기' 관련 5개 신문 모니터

‘원칙 깬 사면 요청’에 ‘원칙 없는’ 보도



오세민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사면권을 남용해서는 안 되고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고 발언했고, 공약집에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 제한·집행유예 불가’를 명시했다. 이것은 재벌 총수들이 그동안 천문학적 액수의 배임과 횡령, 조세 포탈 등의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작 “집행유예” 등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간혹 실형을 선고받아도 ‘가석방’이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는 모습을 보았던 국민들의 분노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비리 기업인 무관용 원칙’만은 지켜왔다. 비리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이나 사면은 제한되었고, 법원도 엄벌 기조를 보였다. 그런데 최근 최경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기업인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실세 부총리와 여당 대표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의 무관용 원칙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논의한 바 없다”, “원칙대로 하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앞선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행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취임 2주년을 맞는 2월이나, 설 또는 3.1절에 예상되는 특별 사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사면’ 비판했던 조·중·동


과거 이명박 정부의 2010년 8.15 특별 사면에 대해서 주요 보수 신문들은 하나같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는 <95%가 선거사범… ‘親서민’ 없었다>(2010.08.14, 5면, 이명진 기자)에서 “이명박 정부의 광복절 사면에 대해 정치인이나 공직자에 집중되어 있고, 정부가 그간 내세운 사면의 원칙과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무원칙 사면’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반 형사범 가운데 정치인, 공직자, 지방 단체장 등 이른바 힘 있는 사람을 뺀 ‘순수한 일반인’은 고령과 신체장애, 질병으로 고통받는 37명에 불과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사설 <親서민의 ‘특권 세상’>(2010.08.14)에서 “서민의 곤고한 삶 위에 특권 지대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비치는 세상에서 정치권이 외치는 친서민 구호는 공허하게 들린다”고 결론지으며, 대통령의 사면권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오남용 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사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검찰 관계자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은 <“원칙도 비난도 없어… 인심 쓰기 사면 법무부가 사면 타이핑하는 곳이냐”>(2010.08.14, 5면, 전진배 기자)의 기사에서 원칙을 깬 특별사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주요하게 다뤘다.


또 이들은 <‘사면권 오남용 방지 시스템’ 시급하다>(2010.08.14, 조선)와 <사법 정의 흔드는 사면권 남용>(2010.08.14, 중앙)의 사설에서 정권에 의해 남용되고 있는 사면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면권 오남용 방지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보수 신문들의 사면에 대한 이례적인 비판은 이번 기업인 사면 요구에서 말한 경제적인 이유와는 달리 정치적인 이유라는 속내가 있다. 동아일보는 <친노-친박 껴안기 “원칙을 깬 사면” 비판도>(2010.08.14, 06면, 이태훈 기자)라는 기사를 보면, 주요 사면 대상자들의 면면이 전 정부의 권력 실세들이나 현 정부의 임기 중 총선에서 공천 헌금을 주고받은 인사가 대거 포함된 정치적 사면이었기 때문에 비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요 보수 신문들의 비판이 정치적 이유라는 점은 분명했지만, “원칙을 깬 무분별한 사면”은 비판하겠다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 것이다.


여권의 기업인 사면 ‘군불 때기’에 동조하는 보수 신문



<조선일보> 2015년 1월 2일 1면 보도 갈무리


최근에 불거진 기업인 사면에 대한 기사에서는 과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던 보수신문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일보는 <“기업인 가석방을” 최경환, 靑에 건의>(2014.12.25, 1면, 이동훈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무성 대표와 최경환 부총리가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로 수감 중인 기업인의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또 <“미래를 위해 최태원 회장 선처를”>(2015.01.02, 1면, 이혜운 기자)에서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기자단 인터뷰에서 ‘최태원 SK회장이 충분한 벌을 받았다’고 한 발언을 주요하게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정권 실세들과 국내 최대 규모의 경제단체 회장의 발언을 1면에 실어 최태원 회장 가석방에 힘을 실은 것이다.



<동아일보> 2014년 12월 27일 1면 보도 갈무리


동아일보도 <기업인 가석방論 여권서 확대>(2014.12.25, 1면, 장택동 기자)와 <세밑 정국 달구는 ‘기업인 가석방論’>(2014.12.27, 1면, 고성호, 이재명 기자)에서 ‘가석방론’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기업 총수의 가석방 여론을 확산시키려는 여권의 움직임을 부각했다.


한겨레의 기사 <여권 ‘내년 2~3월 기업인 가석방’ 군불 때기?>(2014.12.26, 6면, 석잔환, 김경욱, 김소연 기자)의 말마따나 이 두 신문의 기사들은 2~3월에 있을지 모르는 특별 사면에 앞서 기업인 가석방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군불 때기”하려는 여권의 움직임을 비판하기보다 확성기 역할을 한 셈이다.


한결같은 비판, 한겨레와 경향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의 2010년 8.15 특별사면 때나 지금이나 같은 논조로 정부의 기업인 특혜에 비판적이었다. 한겨레는 <비리 정치, 기업인 살린 ‘그들만의 사면’>(2010.08.15, 1면, 노현웅, 황준범 기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치인들만 대거 사면되고 시국, 노동 사범들은 제외되어 “그들만의 사면”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고, 2014년 사설 <‘황제경영’ 비리 기업인 풀어 주려 왜 그렇게 안달인가>(2014.12.16)에서는 “기업과 국가를 여러 차례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황제 경영의 악습이다”며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비리 기업인을 풀어 준다면 ‘유전무죄’ 논란은 더 심해질 것이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2014년 12월 26일 31면 보도 갈무리


경향신문도 <‘임기 중 비리 관용 안되지만 이번에는….’ 사면 원칙 스스로 뒤집은 MB>(2010.08.14, 5면, 김진우 기자)에서 임기 중 비리 기업인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약속하였지만 이것을 깬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고, 사설 <비리 기업인 ‘무관용 원칙’ 허물 텐가>(2014.12.26)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제 살리기를 구실로 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것을 무시하고, 사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비리 기업인 무관용 원칙”은 진보·보수를 떠나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고, 철저히 지켜지길 바라고 있다. 당연히 언론은 기업인 특별 사면 등 특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움직임을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여권의 가석방에 대한 움직임에 보수 신문들은 이명박 정부의 사면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 이유가 어쨌든간에 이를 강하게 비판하는 논조를 보였고, 원칙 없는 사면을 막기 위한 시스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지금은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권의 말을 옮기는 수준의 기사만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독자를 기만하고, 대한민국 ‘대표’를 자처하는 정론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사람들은 더이상 언론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말과 현재의 말이 다른 신문을 “1등 신문”이라 광고 하면서, 믿고 보라 하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