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으로]‘시사교양’도 아니고 ‘예능’도 아닌 어설픈 심리 토크쇼
등록 2015.01.2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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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으로 JTBC <속사정쌀롱>

‘시사교양’도 아니고 ‘예능’도 아닌 어설픈 심리 토크쇼



조민혁 방송모니터위원회 위원장


우여곡절이 많았던 <속사정 쌀롱>




△ JTBC <속사정쌀롱>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어주는 토크쇼’ JTBC <속사정쌀롱>이 10회 방송을 넘어섰다. 애초 장동민, 진중권, 윤종신, 신해철, 강남 5인의 공동 진행자로 시작한 <속사정쌀롱>은 진중권과 신해철이라는 ‘냉철하게 할 말을 다 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고정 진행자로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신해철이 1회만 녹화한 채 세상을 떠나는 등 <속사정 쌀롱>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1회째 방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JTBC가 <속사정쌀롱>의 방송시간을 일요일 오후 9시 40분에서 일요일 오후 11시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대중성을 갖출 수 있을 시간에 배치되었으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시간대를 옮겨 성인 대상 프로그램의 성격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가 JTBC <속사정쌀롱>을 모니터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누가 봐도 예능인 이 프로그램을 JTBC에서는 <썰전>과 같이 시사교양으로 분류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시사교양으로서 기능하고 있는지, 11회까지의 방영분을 토대로 살펴보았다.


시청자가 공감할만한 소재, 그러나 대화는 출연진 신변잡기 수다에 그쳐


<속사정쌀롱>은 ‘인간의 심리를 눈에 보이는 명쾌한 실험을 통해 속 시원하게 밝혀보는 인간 심리 토크쇼’라고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심리학은 타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소통과 공감이 사라진 현대사회, 일상생활 속에서 얽히고 부딪치며 이어가는 관계로 인해 사람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거기서 비롯된 수많은 갈등으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속사정쌀롱>은 이런 인간 심리를 살펴봄으로써 시청자에게 위로가 되고 역지사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기획의도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을까?


현재 고정 진행자인 장동민, 진중권, 윤종신, 허지웅, 강남, 이현이는 매주 초대되는 게스트와 함께 인간 심리를 소재로 ‘수다를 떤다’.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이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상황에 대한 ‘심리학적 실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어떤 주제가 주어져도 출연자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수다 위주로 이어가는 데 그치고 만다. 가끔 진중권의 입을 빌려 전문 개념이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맥이 끊기기 일쑤였다.


그나마 신해철이 나온 1회는 의미 있는 내용이었다. 1회에는 서른이 넘어서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면서, 부모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동생이 부모님께 드린 용돈까지 훔치는 남성의 사연이 등장했다. 뻔뻔하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출연자들의 대화는 신해철의 대화에서 복지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무조건 나가서 아무 일이나 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할 수 기회도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복지의 필요성이라고 강조하는 신해철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신해철의 부재 = 논의 확장의 부재?



                                            △ JTBC <속사정쌀롱> 화면 갈무리


신해철의 사망 이후 <속사정쌀롱>에선 ‘실험 주제’로 시작한 대화가 ‘사회·문화, 구조가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는 경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저 출연진들의 상식 수준의 대화와 조언들이 이어졌을 뿐이다. 신해철이 빠진 출연진은 실험의 의미를 넓은 시각으로 분석하지는 못하고 있다. 때문에 <속사정쌀롱>에서 진행하는 심리실험들은 인터넷상에 떠도는 심리테스트를 스튜디오로 옮겨 놓은 듯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으로 비춰진다. 그나마 개인의 심리를 넘어서 구조적 문제를 언급해야 할 진중권은 ‘똑똑한 척하고, 전문용어나 남발하는 캐릭터’로 전락해 ‘외국사례 싫어하는’ 장동민의 구박을 받고 있다. 많이 배운 사람의 허위를 비꼬는 듯한 장동민의 모습이 큰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진중권의 발언이 힘을 잃으면서 <속사정쌀롱>은 흔하디 흔한 예능프로그램이 되어갔다.


한편 이 방송에는 시청자가 어설프게 타인을 진단하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걱정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7회 “지갑의 심리학”에서는 심리 전문가가 출연해 출연자들의 지갑만을 보고 누구 지갑인지 알아맞히며 그 사람의 심리를 유추했다. 이현이의 뚱뚱한 지갑을 보면서 “각종 할인카드나 영수증들이 언제고 필요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탓에 지갑에 이것저것 넣어두는 것이라며 ‘저장강박증’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단편적인 심리 유추는 자칫 시청자에게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성격이 ‘증세’일지 걱정하거나 남을 그렇게 바라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심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일수록 보다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심리를 다루겠다는 프로그램의 핵심내용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아쉬워


이해와 공감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인간 심리를 주제로 한 <속사정쌀롱>은 의미 있는 기획으로 보인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의 원인이 화면을 통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순간,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상사나 친구의 언행이 어떤 심리에서 비롯되는지 알게 될 때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속사정쌀롱>의 대부분은 출연자들의 개인사나 농담, 우스갯소리로 채워지고, 시사 교양적 정보 제공이나 감동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그맨·예능 MC 등의 출연진 구성부터 가벼운 흥미 위주의 대화까지, 누가 봐도 그냥 예능프로그램이며, 이를 시사교양으로 분류한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속사정쌀롱>이 ‘인간의 심리를 눈에 보이는 명쾌한 실험을 통해 속 시원하게 밝혀보는 인간 심리 토크쇼’라는 애초의 기획의도에 맞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내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장동민의 윽박지르기와 한국말에 서툰 강남이 주는 웃음이나 게스트들의 신변잡기 수다는 덜어내고, ‘인간 심리를 파헤치기’ 위한 섬세한 시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예능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히고 어설픈 교양보다는 웃음에 목적을 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더불어 방송시간을 심야로 옮긴 데 따라 성을 주제로 하는 19세 이상 시청가의 소재가 자주 등장할 것도 우려된다. 그럴 경우 시청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JTBC <마녀사냥>의 아류에 그쳐 차별성을 잃을 수도 있다. 차라리 성인이 공감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소재를 다루면서 ‘심리 토크쇼’라는 기획의도를 살리길 기대해본다. 웃음 속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다면,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