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대로 역사교육…국민을 통제하려는가(송민희)
등록 2015.05.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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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대로 역사교육…국민을 통제하려는가 


송민희(민족문제연구소 활동가)


지난 5월 1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5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을 발표하고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현재 5대 5에서 6대 4 비중이 되도록 조정한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포함될 고등학교 한국사 시안은 전체적으로 교과 과정이 정치사 중심으로 재편성돼 경제·문화·사회사 내용이 대폭 줄었다. 또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는 3·1운동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관련 내용도 축소되거나 빠졌다. 또 2011개정 당시 논란이 되었던 ‘자유민주주의’나 ‘경제성장’이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을 고찰할 수 있는 ‘산업화’나 ‘민주화’ 등의 표현도 사라지고, 평화나 인권 등 보편가치를 중시하는 관점은 자취를 감췄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은 근현대사가 역사 교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근현대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고, 일본은 자국 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근현대사를 별도 과목으로 신설할 예정이다. 이렇듯 근대사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은 근현대사를 중시하는 세계적인 역사 교육 추세에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장 교사들의 의견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더 정확하게는 국가권력의 정통성)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회‧문화‧경제사는 학교 교육에서 아예 가르치지 않겠다는 것이며, 뉴라이트가 싫어하는 독립운동사(특히 임시정부사), 민주화운동사의 서술을 줄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과거 국정 <국사> 교과서, 더 나아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와 다를 바 없는 시안이 나온 데에는 교육부의 ‘편향적인 밀실연구팀’ 구성이 큰 몫을 했다. 역사과 교육과정 각론개발팀의 연구진은 친정부·우편향 인사들 위주로 구성됐고, 2013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비호 논란을 일으킨 교과서 수정심의위원도 3명이 포함됐다. 국정교과서 도입에 적극 찬동한 교수, EBS 교재에 박정희 유신 관련 문항을 줄이라는 등의 메일을 집필진에게 보낸 이도 포함되었다. 교육부가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들 위주로 연구진을 구성하고, 뉴라이트의 역사서술을 기조로 하여 근현대사의 비중을 줄인 것은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 혹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처럼 여론에 밀려 국정화 추진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유신교육의 부활

이명박 정부는 취임 직후 금성 근현대사 교과서 공격을 통해 역사교과서를 누더기로 만들었고 2009개정교육과정을 통해 근현대사를 축소해버렸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2011년 교육과정 개정’을 둘러싼 파동 역시 이명박 정부가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학계의 일반적 연구성과를 배제하고, 편향성을 가진 특정 집단의 견해를 반영하는 등 교육과정의 내용을 초법적으로 수정한 데서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취임 첫 해인 지난 2013년, 친일·독재 미화와 숱한 표절·오류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켰다. 이 교과서가 교육부의 기존 검정 체제와 절차마저 무시한 비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학교 현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자 꺼낸 카드가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이다. 전 세계적으로 북한, 베트남만이 운영하고 있는 교과서 국정제는 교과서와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수정하려는 유신으로의 회귀이며, 세계사의 역행일 뿐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했던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함께 권희영 한국학대학원장, 박효종 방통위원장, 이인호 KBS 이사장,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등 뉴라이트 인사들이 역사연구 및 관련 정부 주요 기구에 대거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국정교과서가 독재정권 찬양의 도구로 이용되었듯이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며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역사 국정교과서가 가져올 재앙은 초등학교에서 이미 검증되었다. 지난해 말 친일‧독재미화 오류투성이로 논란이 되었던 초등 국정 역사교과서 실험본 <사회 5-2>는 중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인식과 국정교과서 개발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교과서의 국정화가 절대 안되는 이유가 다시금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이 국가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역사 교육과정 시안은 국가가 역사에 개입하겠다는 정치적 의도성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불과 10년 전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시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공청회 및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학계‧교육계‧시민사회 등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제대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패전 뒤 일본은 국가가 교과서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성에 기초해 교과서 국정제를 폐지하고 검정제를 시행했다. 최근 역사왜곡으로 전 세계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 정권조차도 교과서 검정제의 틀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이 아베정권 보다 더 역사왜곡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역사교육을 국가가 통제하려는 시도를 즉각 멈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