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微弱), 그리고 나약(懦弱)
정상준 회원
지난 연말 송년회 때 가입을 강권(?)한 김언경이라는 후배로 인해 민언련 회원이 되었습니다. 신입회원 글을 달라했으나 이런저런 개인 사정으로 4개월 만에 인사드립니다. 저처럼 TV•신문•인터넷 등 대중매체를 좀처럼 접하지 않는 사람에게 민언련은 다소 생소한 곳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언론에 대한 제 안의 냉소가 주요 원인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거대 자본의 세상을 향한 유혹(광고)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현대 사회의 거대한 상품, 그런데도 말과 글의 왜곡으로 어떤 권력도 만들어낼 수 있는 곳, 그에 못지않게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는 곳,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언론에 대한 소견입니다. 사람들을 유혹해야 상품을 팔 수 있게 된 세상 안에서, 그렇게 하려면 말과 글마저 현란하거나 자극적이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주제넘은 신입 회원이라 욕하실지 몰라도 민언련은 ‘민주 언론을 위한 시민들의 연합’이라는 딱 그 이름만큼만 살아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사고 또 쉽게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아닌 긴 시간의 역사를 가진 손 때 묻은 만년필과 같은 그런 존재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의 회원 한 분 한 분이 모두 그러한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민언련이길 바랍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미약하지도 나약하지도 않다고, 미약하지는 않지만 나약하다고, 미약하고 나약하다며 말과 글로 권력을 행사하거나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각자의 가지고 있는 작은 권력이라도 나누려 노력하는 세상을 향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실이 단 하나라면,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거나 부분적인 진실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분적인 진실은 진실이 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에 생각이 미친다면, 오래 전 미약하지만 나약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이들이 남긴 말과 글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며 무지(無知)의 지(知)를 말한 이유. 에픽테토스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을 알라!’며 스스로의 합리적 판단과 선택을 강조한 이유.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 사이 교묘하게 숨어 있는 생각당하지 않기를 바란 이유.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우리들 스스로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기를 바란 의미.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의지와 함께 종족의 의지마저 의심하라!’며 내면과 외면(세상)에 항상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세상의 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보란 참뜻, 아렌트가 유태인 대량 학살의 집행자 아이히만의 깊이 사색하지 않음과 우리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비교하고 악의 평범성을 강조한 이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말에 부분적으로나마 공감하고, 미약하지만 나약하면 안 되는 한 개인과 한 단체가 이렇게 만난 이유를 그곳에서 찾는다면, 저와 민언련의 만남이 조금은 과장되고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애교쯤으로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