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기자’, 이용마 기자를 만나다
유민지 활동가
“시계탑 앞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한번 찍어볼까요?” 사진을 찍으러 동행한 이병국 회원이 이용마 기자에게 제안했다. “영~ 카메라는 어색해서…” 20년차 ‘기자’가 마이크 없이 카메라 앞에 서니 더 어색해 보였다. 지난 2012년 마이크를 빼앗겨 버린 이용마 기자는 대학에서 ‘한국정치론’을 가르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해고'라면, ‘질기게’ ‘즐기며’ 기다리겠다는 각오로!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MBC 파업 때 노조 홍보국장이었던 이용마 기자는 해고자 1호가 됐다. 파업 시작 51일만인 3월 21일의 일이다. 벌써 3년이 넘었다. 짧지 않은 그 시간을 이용마 기자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
“재판결과에 매달리거나 ‘곧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해고 될 때부터 분명히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죠.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어려울테니까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MBC는 ‘MB씨’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른바 ‘청와대 쪼인트 사장’이 온 후, 정권에 불리한 보도는 빠지고, 대통령 미화 기사가 자리를 채웠다. 경영진의 심각한 보도개입이 기자들의 반발을 샀고 제작거부로 이어졌다. 그리고 MBC 노조는 공정방송 회복을 위한 파업을 시작했다. “정치권이 나서서 MBC를 휘저어놨기 때문에 복직 여부도 정권의 향배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운명이 그렇게 돼버렸어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최소한 2018년까지는 ‘해직기자’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길게 가는 싸움을 하기 위해,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 박사 논문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그리고 현재 몇 몇 대학에 강의를 맡아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딱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강의하면 재밌어요. 난 강의하는 걸 즐기고 있어요. 해직되면 어차피 놀 수밖에 없는데 적극적으로 자기가 할 일을 찾아야 해요. 안 그러면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어지거든요. 그래서 함께 해고 된 사람들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거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기도 해요.”
강의부터 팟캐스트 진행, 육아까지…
인터뷰를 한 장소도 이번학기 강의를 맡은 국민대학교였다. 이용마 기자가 강단에 서서 '한국 정치론'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 강의 주제는 박정희 유신정권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유신을 강의하는 이용마 기자의 설명에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와 언론 상황이 겹쳐 보였다.
해고된 이용마 기자는 바쁘다. 강의 말고도 여러 의미있는 작업에 함께하고 있다.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시도를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을 돕기 위한 모임(장진수와 함께하는 사람들) 발족에 적극 참여했다. <이용마의 한국정치>라는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다. 또 민언련 정책위원도 맡았다.
뿐만 아니라 두 쌍둥이의 등교도 책임지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일학년이 된 두 아들을 위해 이번 학기 강의를 대부분 오후로 조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취업전선에 뛰어든 아내
“집사람, 처음 1년은 좀 괜찮더니 1년 지나면서부터 반응이 안 좋아졌어요. 처음에는 정권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는지 괜찮더라구요,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되니까 갑자기 ‘너 못 믿겠어’하더니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어요. 지금 2년 됐네요.”
이용마 기자는 서른 다섯에 결혼했다. 당시 보도국에서 ‘이미 포기한 노총각 넘버 원, 투’를이어 이용마 기자가 ‘넘버 쓰리’였다고 한다. 그러다 현재 아내를 만나 ‘이 여자다’ 싶어 일년만에 결혼을 했고, 결혼하고 7년만에 두 아들 쌍둥이를 얻었다.
“쌍둥이들이 이번에 학교에 들어갔는데 집사람이 그걸 걱정하더라구요. 아빠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하냐구요. 또 사람들 만날 때 남편이 뭐하는 지 물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할지 어렵다네요” 이용마 기자의 아내는 쌍용노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노란봉투’ 기부 캠페인에 참여해 이런 글을 남겼다. “남편이 해고됐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작은 참여로 해고노동자를 도울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이용마 기자’가 지워졌던 기사
이용마 기자는 96년에 MBC에 입사했다. 해직되기까지 16년간 기자생활을 하며 이리저리 ‘쫓겨나기’ 일쑤였다.
“못 잊을 기사가 있어요. 내 이름으로 안 나간 기사. 내가 기사를 썼는데 그때 부장이 다른 사람이 읽으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구요. 왜냐면 그때 그 기사가 삼성 불법 상속을 비판하는 기사였는데, 삼성에서 포항 MBC에 2억원 광고 주면서 이용마 기자 이름 빼달라고 했대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삼성 홍보팀이 이건희 회장한테 많이 깨졌다고 해요. MBC에서 이용마가 계속 비판기사 쓰는데 기자 하나 못 막냐고 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 이름을 빼는 걸로 면피하려고 한거죠.”
광고주의 압박으로 기사를 내지 못하는 일, 자발적으로 눈치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제가 법조 출입하다가 라디오 뉴스 편집부로 쫓겨나요. 사내 보도국 게시판에 ‘삼성공화국’이라고 글을 썼거든요. 어느 날 법조실에 있는데 삼성 관련 기사가 나왔어요. 그런데 옆에 연합뉴스 기자가 글을 안 써요. 이건 스트레이트 기산데…왜 안 쓰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글 써서 올려봤자 이사람 저사람이 귀찮게 하고, 결국 빠지니까 안 쓴다는 거에요. 연합뉴스는 원래 작은 뉴스도 다 쓰고 퍼트려주는 곳인데 그러라고 있는 국가기관통신사 조차도 삼성 기사를 안 쓰는 거죠. 다른 언론사 뿐 아니라 MBC에서도 삼성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면 내려서 꼭 빼요. 이런 장난질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사내 게시판에 글을 썼지요. 바로 쫓겨났죠.”
‘이용마 기자’를 지워버렸던 기사
“2003년 2월에도 쫓겨났어요. 보도국에서 일부러 남북이산가족 상봉 지원팀에 나를 파견 보냈죠. 한 2주 가있으라고…법조팀이 원래 중요한 기사가 많은데, 2003년 1,2월에는 법조 쪽에 기사가 없어요. 정권 교체기에는 정권이 수사를 안하거든요. 그런데 부장이 와서 보니까 기사가 없는 거에요. 부장들은 가서 오늘 우리 부에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라고 쫙 불러줘야 힘이 나거든요. 그러니까 부장이 기사거리가 안되는 짜잘한 거 갖고 리포트를 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뭐 이런게 무슨 기사가 됩니까 했죠. 그래도 기사를 하나 쓰라고 하길래, 인터뷰 따고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냈어요. 대신에 앵커멘트 쓰면서 끝에 ‘아무개 기자가 보도합니다’라고 써야하는데 아무개를 비워버렸죠. 그랬더니 차장이 “안 읽겠다고?”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 읽을 수 있으면 읽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했어요. 그래서 또 바로 파견으로 쫓겨났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누구한테 좋은 건데?’라고 따져보는 사람이다. 이게 바로 ‘진짜 기자’의 기본자세가 아닌가? 그런데 이 시대는 ‘진짜 기자’가 설 자리가 없다.
언론과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선다
‘진짜 기자’가 어떻게하면 다시 MBC로 돌아갈수 있을까? MBC는 어떻게 하면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정권이 MBC에서 손을 떼야돼요. 최악으로는 여당이 하나 추전하고 야당이 하나 추천을 해서 돌아가면서 하는 것도 할 수 있다고 해요. 임기 3년으로…그렇게 되면 적어도 여당 추천 사장 뒤에 야당 추천 사장이 온다고요. 최소한 상식적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서로 눈치를 보면서 조절을 하게 되겠죠. 검찰총장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왔다갔다 하게 되면, 편향적인 성향을 안보인 사람들이 자꾸 발탁이 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돼죠. 그러면 정도를 버린 채 한 쪽에 줄서는 일은 줄어들 수 있잖아요. 최악의 경우를 얘기하는 거에요. 하지만 이런 제안은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겠죠.” 정권은 항상 언론과 검찰을 쥐고 제멋대로 흔들었다.
“검찰과 언론, 딱 두 개만 독립을 시키면 대한민국 정치가 정말 발전할거에요. 그러면 정치의 억지가 없어져요. 지금 보세요. 억지부리다가 안되면 헌법재판소에 제소해버리고, 사법부도 자기 사람들 다 세워서 최후의 보루로 다 떠넘기잖아요. 언론도 잡아서 자기들이 쓰는 억지를 똑같이 말하게 하고…하지만 언론이 독립되면 억지쓰는 거 비판하고, 검찰이 독립되면, 말 안되는 거 수사 안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는 거에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 멀리 보이는 길에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난 변할 것 같지 않아요. 난 처음의 시작은 느리지만, 그만큼 변하는 것도 느린 거 같아요. 1학년 때 데모를 쫓아다니긴 했지만, 나가서 앞장서고 하진 않았거든요. 학교 다닐 때부터 생각했던 그 길은 나는 계속 걸어가고 있어요.”
멋지다. 그는 ‘진짜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