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강윤경] 시민 20명의 힘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절실히 고민해야 합니다.
등록 2015.06.0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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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20명의 힘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절실히 고민해야 합니다

 

 

민언련 활동가가 된 후 한 달이 지나면서 ‘유민지’라는 사람의 실체가 파악되자 선배들은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민지, 윤경이랑 비슷한 거 같지 않아?” “그러게, 강윤경 스타일이네”
궁금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를 통해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활동하면서 아쉽게도 마주치지 못했다. 6월호 소식지 회원인터뷰를 준비하다가 ‘강윤경’이라는 이름을 보고 ‘옳거니’했다. “요즘 민언련에 못가서 죄송해서 인터뷰 못해요”라며 저어하는 강윤경 회원에게 “이번 인터뷰가 민언련으로 다시 오는 시작입니다”라는 말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설렌다. 6년동안 기다렸던 만남이다. - 유민지 활동가

 


강윤경 회원과 만나기로 한 곳은 범계역 부근에 있는 아이쿱 율목(안양·의왕·과천)생협이다. 생협 매장이 아닌, 사무실에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율목 생협 사무실은 교육관, 아이들 놀이방, 식당과 업무공간으로 나눠져 있었다. 교육관에서는 기타동아리 수업이 한창이었고, 식당에는 생협 먹거리로 만든 맛있는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절

 

 


강윤경 회원은 언론학교를 통해 민언련을 만났다. 방송분과 회원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 굉장히 많은 일을 배웠어요. 총무 업무도 맡았다가 교육 진행도 하고, 홍보도 했었어요. 그러면서 방송분과도 들어갔지요. 민언련이 하는 활동이 워낙 많기 때문에 활동가 하나하나 멀티플레이어가 됐어요. 그러면서 집회와 캠페인도 다 함께 하고… 생각해보면, 나한테는 그때가 20대의 마지막이었는데, 정말 앞뒤 가리지 않고 다 바쳐서 한 거 같아요.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일이죠.”
방송분과에 들어가 회원들을 조직하고, 함께 토론하고 어울렸던 시간들을 얘기하는 강윤경 회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민언련에서 모든 걸 배웠어요.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꾸려가야 하는 지 A부터 Z까지요.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해왔던 거지만, 그때는 아마추어였다면, 민언련 활동은 회계부터 실무까지 배우고 잘 다듬어졌던 시기였어요. 일을 잘하면서 활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훈련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민언련은 회원수나 활동가 수로 보면, 작은 시민단체인데 시민으로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하잖아요. 여론을 옮겨보려고 하고, 법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5년간 다 바쳐 일하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활동가 직책을 내려놨다. 이후 다시 현장으로 나오면서 강윤경 회원이 찾아간 곳은 금속노조였다.
“민언련은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가겠다 싶더라구요.(웃음) 금속노조를 가게 된 건 민언련 활동을 하면서 ‘왜 노동자들은 언론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컸어요. 그래서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겠나 싶어서 갔지요. 그런데 그때가 쌍용차 투쟁이 벌어졌을 때였습니다. 제가 ‘공보부장’이었는데, 사람이 계속 죽어가는 상황에서 저는 그걸 보도자료로 내야했죠.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 잡혀가는 현장에도 있었는데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눈물만 났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지요”
그리고 만난 곳이 아이쿱 율목 생협이다.


“생협은 놀라운 조직이었어요"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만 하다가 대안을 만들어서 성공시킨 사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상황이 너무 신기했어요. 실제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고 있고, 그런 조합원이 이미 10만명을 넘어섰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처음에 왔을 때는 힘들었죠. 매일 야근하고, 조직하고... 2년만에 대상포진에 걸렸죠. 그런데 민언련에서 다져진게 있잖아요. 버텼어요. 처음 들어왔을 때 매장이 1곳이었는데, 지금은 4곳이에요. 매출이 1년에 100억정도 해요.”
처음에는 사무국장 직책으로 와서 매장관리와 조직관리를 모두 맡고 있다가, 두 번째 매장을 오픈하면서 매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매니저를 뽑고, 강윤경 회원은 활동국장이 되었다. 매장을 전문 관리자가 생기자 매장 확장도 빨랐고, 핵심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을마다 공동체를 만들어요. 의왕3동의 경우, 엄마들이랑 작은 도서관 확산 운동을 열심히 해요. 마을강좌도 열고, 엄마들끼리 다양한 재능을 나누죠. 아이들 프로그램도 만들고 기획하다 보면, 마을이 변화되는 게 보여요. 참여하는 사람들도 자신감이 생기지요. 주로 주부들인데, 육아만 하다가 자신의 이름을 새로 찾는 과정이 되더라구요. 그런 씨앗을 마을마다 퍼뜨리고 싶어요. 율목생협에서는 의왕3동 같은 공동체를 일년에 한 두곳이라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넓은 지역에서 모은 30명과 동네에서 모은 30명은 질이 다르다고 했다. 동네는 모이기도 쉽고, 홍보도 잘되고, 활동도 바로바로 벌여낼 수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불이 붙는단다.


시민의 힘을 조직하는 것이 주요 과제
“활동가 몇 명이 하는 역할과 주변에 있는 시민 20명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시민 20명의 힘을 어떻게 조직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죠. 생협은 자원활동 조직이 매우 잘돼 있어요. 주부들이다 보니 시간도 여유있고, 열정도 있죠.”
주요 역할을 자원활동가 그룹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사무국은 그 활동 지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워낙 자원 활동가 그룹이 순환이 빨리 돼 교육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시간이 길게 걸리더라도 그게 맞는 길이라고 본다.
“활동가의 뿐 아니라 자원활동을 하는 조합원들의 역량까지 포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늘어나는 거에요. 민언련도 그런 자원을 갖고 있다. 열정적이면서 끈끈한 회원 활동 모임!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죠. 자원활동 조직을 잘 활용하고 강화시키는 것이 민언련의 역량을 높이는 또 하나의 길인 것 같아요.”
새로운 사업 기획이나 자원활동가들이 나서서 하기 어려운 영역은 핵심 활동가가 담당하면서 사업을 안착화 시키고, 이후 자원활동가들이 스스로 사업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 사업과 활동 영역을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협동조합이 매력 있어요. 자발적으로 나서서 돈도 모으고 운영도 하며 자기 요구를 풀어내는 것이 협동조합이거든요. 그게 까페일수도 있고, 먹거리를 파는 마트일수도 있고, 병원일수도 있고... 대여섯명부터 시작해서 점점 커져나가는 거죠. 원하는 게 있다면 돈을 모아서 우리 스스로 요구를 풀어가는 거죠. 다양한 방식으로... 유럽에서는 생협이 당연한 문화에요. 신발이 잘 안팔리면 신발파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마케팅도 하고 하면서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체를 만들거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걸 먼저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죠”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한 투쟁은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정작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은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역의 시민운동은 정말 척박해요. 그런데 생협은 일단 먹거리를 중심으로 먹을 사람들이 오는 거니까 그만큼 사람을 확보하고 시작하게 되요. 그러면서 먹거리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의제들을 나누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생협 활동 방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율목 생협은 책 모임, 바느질 모임, 기타, 우크렐라, 리코터 같은 악기동아리, 요리동아리 등 조합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또 건강한 먹거리를 많이 홍보하고 생협을 알리기 위해 식생활 교육과 요리강좌도 진행한다. 그러면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부터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조합원들과 나누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활동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느껴졌다. ‘강윤경 스타일’은 열정과 자신감이다.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닮았다던 나를 다시 불러내야겠다. 6년차 활동가가 되면서 적당히 쌓여있었던 먼지들을 털어내고 다시 첫 마음을 닦아보는 시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강윤경 회원은 사무실에 뛰어 올라가더니 우산을 들고 다시 내려왔다. 범계역까지 우산을 함께 쓰고 가며 응원을 보탰다. “자발적 회비 인상, 저도 할께요. 만원 올려주세요.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