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광주에서 뵐께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한밤입니다. 세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서야 마침내 펜을 들었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한밤에 쓰는 글은 감상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그게 또 좋아서 굳이 그 늦은 시간에 편지를 쓴다고 끄적이던 옛 기억도 새록새록 나네요. 책을 읽어도 좋고, 영화를 한 편 봐도 좋고,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딱 좋은 그런 시간, 한밤의 힘을 빌어 인사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민언련 유령회원(이었던?) 정찬미입니다.
제가 처음 민언련 회원이 되었던 때가 2010년, 그러니까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였네요. 먼저 가졌던 아이 태명을 ‘민주’로 했는데 유산이 되어서 ‘민주’라는 아이가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며 다시 생긴 아이에게 ‘희망’이라는 태명을 지어주고 나서입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민언련 회원이 되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대전에서 거주하고 있는 제게는 언론학교도, 기타 활동도 모두 어려웠으니까요. 둘째가 태어나고, 또 셋째가 태어나고,…5월이면 광주순례 공지가 어김없이 떴지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시작하는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매년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광주순례 메일에 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젠 막내가 웬만큼 걸을 수 있으니 광주에서 합류해서 반나절 가량되는 일정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5월 16일, 2015 민언련 광주순례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생각만큼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세 꼬맹이들의 수다조차 다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와의 일상이 갑갑한 울타리였던 아이들은 그 날 고삐 풀린 망아지였습니다. 콧바람도 씽씽 불겠다, 관심 가져주는 어른들도 많겠다, 한껏 고조된 아이들은 엄마가 민언련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5·18민주묘지에 송건호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과 같은 언론지식인과 이한열 열사, 이재호 열사 등 많은 민주 열사들이 함께 잠들어 계신다는 것, 5·18민주묘지가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되기까지의 험난했던 과정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처음으로 구묘역까지 가본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어느 묘역에서 인사를 드리면 될지 몰라 5·18민주항쟁추모탑 앞에서만 참배를 드리고 돌아왔는데 이제 따로 가게 되더라도 신묘역, 구묘역을 어떻게 돌아보면 되는지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다만 전두환이 담양에 민박했다는 기념비를 누군가 가져와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밟고 지나라고 구묘역에 묻었다는데 이제는 또 그 뜻을 간직하기 위해 기념비의 글씨가 상할까 더 이상 밟고 지나가지 말라 하여 그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새 또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가버렸네요. 함께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들은 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있을 테니까요. 적어도 매년 5월에는 광주에서 뵙도록,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