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영화이야기] 영화의 힘을 기대했던 <노리개>
등록 2015.09.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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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의 힘을 기대했던 <노리개>

 

염찬희 영화평론가

 

 

 

오늘은 아쉬운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여성연예인 인권 문제 토론회에 다녀왔다. 여성연예인 인권 센터의 활동가는 성 상납을 강요받는 지망생을 포함한 여성 연예인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새삼 영화 <노리개>가 아쉬움과 함께 생각났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2009)가 2011년 황동혁 감독의 영화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상당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 처벌이 더욱 강화된 소위 '도가니법'이 시행되는 결과를 얻었다.

 

아마 그와 유사한 결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신인 여배우 장자연의 2009년 자살 사건을 4년이 흐른 2013년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노리개>(최승호 감독, 2013) 기사를 접했을 때, 홍보비 마련을 위해 대국민 클라우드 펀딩을 받는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그리고 그 영화 홍보 포스터를 접했을 때 또 한 번 ‘영화의 힘’을 느껴보고 싶었다. 홍보 포스터에는 ‘대한민국을 분노케 할 화제작. 당신은 이 사건의 목격자다.’ 같은 자극하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기대는 더 커졌다.


<노리개>의 줄거리는 간단한다. 신인 여배우 정지희(민지현)가 자살 했다. 그녀의 오빠는 성폭행 관련법으로 연예기획사 대표, 영화감독, 언론사 대표를 고소한다. 그 사건을 맡은 여검사(이승연)는 처벌의 대상과 정도를 가지고 변호사와 다툰다. 법정 밖에서는 전직 기자 이장호(마동석)가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진실을 세상에 알려진다. 그렇지만 금권을 가진 언론사 대표는 무죄로 풀려나고 나머지 둘은 미약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된다.


이미 기사를 통해서 세상에 다 알려진 내용으로 영화를 만들려니 어려움도 많았겠다 싶다. <도가니>가 실화를 소설로 만들고, 그 소설을 다시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잘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배경을 영화는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아프다. 한편, 기사에서 접하지 못했던 기자와 검사가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자 뛰는 정의로운 기자를 보아서 기쁘다. 게다가 올곧은 검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해서 더 즐겁다. 이 사회에 그래도 정의가 살아있구나,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구나 싶다. 왠지 정의는 지켜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재판의 결과가 권력에 유리하게 나온 것은 이미 번번이 겪었던 사실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진 이런 류의 영화라면 그것의 완성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관용적인 편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미덕이 있다. 그리고 뒷말로만 퍼지고 있는 연예계의 성 상납 관행에서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학대를 당하는지를 정확하게 짚어 주어서 파급력도 갖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관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장 거슬리는 점은 일종의 성폭행을 당하는 신인 여배우 정지희를 관음의 대상으로 처리하는 감독의 연출 방식이다. 성폭행을 고발·비난하는 메시지가 존재 이유인 영화들은 성폭행의 장면에서 관객에게 관음증적 시각을 단 일 초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의 무감각한 표정, 절대로 원한 것이 아니라는 표정만으로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가 그녀에게 얼마나 고통이 되며 계속해서 상처로 남는지를 보여주는 서사가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그게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행위 장면만 가지고 문제를 드러내고자 한다. 나는 그것을 포기라고 본다. 행위 장면은, 그것이 설령 폭행이더라도 관음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 되기 쉽다.


영화 <도가니>나 <한공주>와 비교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오프닝에서 신인 여배우 자살 사건 개요가 간단 긴박하게 정리할 때에도 편집된 이미지 중에는 여배우의 성행위 장면이 들어가 있다. 물론 무표정한 상태이긴 하지만 남녀가 몸을 섞고 있다. 영화감독이 술자리에서 몸을 더듬거나, 잠자리하는 장면들도 관계자 증언 때에 몇 차례 이미지로 편집되어 들어간다. 그리고 정지희를 소속사 대표가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배치된 장면이 있는데, 영화 찍는 중에 갑자기 강간당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는 감독의 요구에 저항하다가 대표가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응하는 장면이다. 또한, 신문사 대표에게 성 상납 하는 장면도 있다. 매번 남녀의 행위 장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편집해서 넣어야 했나 싶다. 감독은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데, 그가 택한 방식은 잔혹함을 전달할 수 있지만 동전의 또 다른 면처럼 성적으로 자극할 수도 있다.

 

검사가 준비한 증거 때문에 신문사 대표의 법정 소환만은 막아보려 애썼던 변호사의 노력이 허사가 된다. 신문사 대표는 변호사를 불러 소환에 대해서 힐난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그런데 왜 한 번도 그년이랑 같이 잤냐고 묻지 않소?” 고용되어서 고개를 숙이기는 하지만 자존심은 강한 변호사는 답한다. “그거는 제 일에서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알 필요도 없지요. 저는 원하시는 결과를 얻도록 도와드리는 사람일 뿐입니다.” 감독은 이 답을 통해서 이 사회에서 변호사는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답에서 감독의 의도는 받되, 감독이 알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을 감독에게 주고 싶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그의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집중해 주었더라면 좋았겠다. 성 상납을 다루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더 성에 직접 방점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핵심은 비인간적 대우, 인권 침해라는 아픔에 방점이 있어야 한다. 영화는 그것을 향해서 힘을 집중해야 한다. 성이라는 속성이 아니라 비인간성이라는 속성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다양한 장치와 서사를 통해서 영화는 치밀하고 풍성해지는 동시에 메시지는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