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신문 토달기] 그리스 경제위기도 ‘좌파’ 탓?
등록 2015.09.2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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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토달기 | 그리스 경제위기 관련 5개 신문 모니터

그리스 경제위기도 ‘좌파’ 탓?

 

 

 

최재혁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유럽의 찬란한 문화를 상징이자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 그리스가 최근 국가부도에 빠졌다. 그리스 신전 기둥을 다 빼서 채무를 갚아도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그리스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비대한 공공부문, 해외의존적인 산업구조, 뿌리 깊은 부패구조, 과도한 연금 등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독일로 대표되는 채권자(국)들이 그리스를 빚의 늪에 빠뜨리는데 일조했고, ‘치료제’로 썼던 긴축정책은 오히려 그리스의 부채만 더 키웠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신문은 게으른 국민성, 과도한 복지 나아가 좌파정부가 그리스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하는데 여념이 없다.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를 선언한 6월 26일 이후부터 한 달간 5개 일간지가 그리스 부도사태를 어떻게 다루는지 모니터했다.

 

 

우리도 공짜복지 좋아하면 그리스처럼 망한다?
조선은 그리스가 망한 원인을 ‘공짜복지’와 ‘포퓰리즘’에서 찾았다. <지원금 300조원도 탕진… “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7/1, 한경진)에서 긴축안에 반대하는 국민과 찬성하는 국민들의 의견을 전했는데 전철에 탄 한 승객의 말인 “공짜 좋아하다 이렇게 망했는데...”를 제목으로 쓰며 ‘공짜 복지가 그리스를 망하게 했다’는데 무게를 실었다. 이 밖에도 <포퓰리즘 정치가 나라와 백성을 절벽서 떨어뜨린 그리스>(7/2, 사설), <금반지를 안 모으는 그리스>(7/4, 손진석), <복지 포퓰리즘이 타락시킨 그리스의 자포자기>(7/7, 사설)에서 포퓰리즘에 빠진 국가와 국민은 정신적으로 타락한다며 그리스가 그 단적인 예라 지적했다.

 

 


동아도 <국가부도 임박한 그리스 위기, 남의 일 같지 않다>(6/30, 사설), <그리스, 복지 퍼붓다가 재정 파탄 한국도 구조개혁 안하면 위기 닥쳐>(7/1, 이유종), <‘철밥통 공무원’ 개혁 못해 국가부도 맞은 그리스의 비극>(7/2, 사설) 등 원인을 다룬 기사에서 과잉복지, 포퓰리즘를 끊임없이 제기했다.  


하지만 실제 통계치를 놓고 보면 단순히 ‘복지’가 그리스 부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차 구제금융을 받기전인 2009년, GDP 대비 사회복지비율은 24.4%로 OECD 평균인 22%보다 2% 높을 뿐이고, 북유럽 국가들은 30%에 달한다. 복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복지 지출 비중이 고령 인구, 그것도 연금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연금도 공무원 등 특정 계층에만 과도한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 1,2차에 걸쳐 약 2520억 유로(약 313조 원)를 지원받았지만 자국 경제에 투입한 201억 유로를 제하고는 대부분 빚을 갚는데 사용되었다는 점은 간과한 채 모든 책임을 복지병과 포퓰리즘으로 모는 지록위마인 셈이다. 

 

조선일보 기자칼럼 <他山之石 된 조르바式 삶>(7/8, 김태훈 문화부 차장)의 주장도 부적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칼럼은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그리스인 조르바」를 언급하며, "그의 자유는 무책임과 동의어다", "(조르바는)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기보다는 멋대로 사는 삶을 경계하는 타산지석으로 읽힌다. 그건 그리스인들 탓이다"라고 주장했다. '조르바'라는 문학 캐릭터에 대한 부정적 일면만 부각하여 비판적으로 재단한 것도 부적절하지만, 조르바와 그리스인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사실상 그리스인에 대한 모욕 수준이다. 그리스는 OECD 가입 국가 중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37시간으로 멕시코, 대한민국에 이어 3위다. 이런 그리스인을 조르바처럼 '팔자 좋게' 살았다고 보는 것 역시 억지이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의 박희준 칼럼 <그리스에게 필요한 것, 불굴의 조르바>(7/13)와도 단적으로 비교된다. 칼럼은 “그리스인들을 무책임하다고 비난만 해서는 그리스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백발이 되어서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절대 포기도 하지 않고 세계를 정복하고 말겠다는 조르바가 가진 기백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스가 재기하고 못하고는 불굴의 조르바가 살아나고 못하고에 달려있지 않을까”라고 표현했다.

 

 

치프라스는 무책임한 지도자?
조선, 동아는 그리스 집권당 ‘시리자(SIRIZA)’의 당수 치프라스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나라를 빚의 늪으로 빠뜨리려는 몰염치한 지도자로 묘사했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2015년 7월 5일, 그리스의 운명을 가를지도 모르는 국민투표가 있던 날이었다. 그 다음날인 6일에는 5대 일간지 모두 치르라스의 투표하는 모습을 보도하였는데,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이 있다. 조선, 중앙, 동아는 치프라스가 혀 끝에 침을 묻혀 투표용지에 바르는 모습을 실었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은 일반적인 투표 모습이었다. 치프라스가 야비해 보이는 모습을 일부러 넣었다고 말하면 억지일까. 또 동아는 <[특파원 칼럼]유럽의 국민투표라는 도박게임>(7/6, 전승훈)에서 치프라스를 히틀러에 비유하기까지 한다. “정책을 놓고 벌이는 ‘국민투표’는 자주 지도자들의 신임을 묻는 ‘신임투표’와 연계되곤 한다. 신임투표는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강화할 때 즐겨 써온 수법이다. 나폴레옹, 히틀러가 그 예다. 치프라스 총리도 이번 투표에서 승리한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채권단과의 협상에서도 무소불위의 비타협적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리스 경제위기를 심화시킨 데는 전 정권들에 책임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스가 유로에 가입한 2001년, 당시 집권당은 중도 진보주의 노선을 타는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당시 유럽연합에 가입을 하려면 정부채무비율 60% 이하, 재정적자 비율 3% 이하여야 했지만 정부채무와 재정 수지 통계를 분식해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정권을 잡았던 보수주의 정당인 신민주주의당(ND) 정권 역시 관광산업호황과 부동산 활황을 바탕으로 연 4%대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호황 또한 거품이었다. 해외자본들이 관광산업과 해운, 선박 쪽에 투기의 목적으로 들어왔다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돈이 싹 다 빠져나갔고, 돈이 빠져나간 그리스의 각 기업들은 대출 이자를 갚기에도 버거웠다. 이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준 그리스 은행들의 대출도 자연스레 부실화되었다. 이 부실을 막기 위해 그리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서 메꿀 수밖에 없었고, 국가 빚은 더욱 늘어 2011년 말 2차 구제금융 직전에는 3560억 유로로 명목 GDP의 171%를 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2009년 10월에 밝혀졌듯이 ND정권은 부채와 재정적자 규모를 은폐하면서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었고, 거기에 이러한 재정적자를 숨기기 위해 계속해서 골드만삭스에게 대출을 받았다.


그럼에도 조선은 <그리스 같은 빚의 보복 을 피하려면>(7/2, 김기훈)에서 “좌파지도자가 개혁을 외면하고 포퓰리즘 정치를 선택하는 바람에 서양 민주주의 발원지의 운명은작두 날 위에 올려져 있다”고 했고, <금반지를 안 모으는 그리스>(7/4, 손진석)에선 “멀리 보지 않고, 당장만 편하게 해주는 달콤한 정책을 내는 좌파정권”이라고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빚진 자에게도 사정이 있다
현재 그리스 전망은 암울하다.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9에서 30.2로 떨어져 경기침체 불안감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3차 구제금융에 따른 개혁안을 잘 시행한다 하더라도 빚이 줄어들고 다시 GDP가 성장할지는 미지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리스의 이번 구제 금융이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연합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한국에도 영향을 크게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은 계속해서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채권자의 관점만이 아닌 채무자의 관점으로도 사안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복지 타령으로만 그리스 사태를 말하는 것은 단편적 시각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의 복지수준을 저하시키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