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의 베스트 영화 44!(6)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여섯 번째, 17위 - 13위
이번 순위에는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두 편이다. <여름의 조각들>과 <영원한 여름>. 두 편 모두 잠
시 머물다 사라지는 소나기처럼 아름답고 쓸쓸하다. 각각 프랑스, 대만 영화인데 정서적으로 닮았다. 올
2월 <스틸 앨리스>로 오스카를 거머쥔 줄리안 무어의 섬세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파 프롬 헤븐>과 요즘
말로 ‘시크’한 조지 클루니의 인생이야기 <인디에어>도 흥미롭다
-김현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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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위. 파 프롬 헤븐
(미국·프랑스, 감독 : 토드 헤인즈 / 출연 : 줄리안 무어·데니스 퀘이드·데니스 헤이스버트) |
평화롭고 균열 없이 가정을 꾸리던 캐시(줄리안 무어)는 어느 날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남편(데니스 퀘이드)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남편의 고백.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부유하고 행복했던 인생이 그 순간 천국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버렸다. 분명 보았는데, 믿지 않아야 할까. 자신을 위한 남편의 사랑은 거짓이었나. 캐시는 혼란스럽다. 흑백 인종차별, 동성애, 남녀차별, 1950년대 미국 중산층의 허영과 불안. 감독 토드 헤인즈는 ‘편견과 위선’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키워드를 가감 없이 풀었다. 이야기는 존재 이유로 귀결된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한없이 찬란한 인격체여야, 때론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캐시가 마음을 전했던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의 이별 인사처럼. “Live Proud, Splendid Life. Would you? (당당하고 빛나게 살아줘. 그럴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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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 세상의 모든 계절 (영국, 감독 : 마이크 리 / 출연 : 짐 브로드벤트·레슬리 멜빌·러스 쉰) |
타인의 삶이 빛나 보여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는 자화상을 괴로워하며 탓하는 일이 나뿐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때론 스스로 비루하기 그지없어 놓아버린 내 일상의 조각을 두고 남들이 동경하는 걸 목격하기 때문이다. 내막과 상반된 그들의 반응은 늘 당혹스럽다. 각자의 삶을 낱낱이 알 수도 없거니와 속사정까지 파악했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그럴 때마다 행복을, 행복의 조건을 생각한다. 결론이 나지 않는 진부한 레퍼토리를 이리저리 짜 맞추며 '행복할 이유'를 대충이라도 끄집어낸다. 행복을 바라봐야만 한다면 그건 너무나 쓸쓸하다. 공평하지 않다. 기다리던 봄이 와 꽃들이 지천으로 만개한들 행복하지 않으므로 이 계절은 무효이다. 영화는 흐릿하게 일상으로부터 소외된 한 사람의 쓸쓸한 눈빛을 주목하라 한다. 마지막 장면 레슬리 멜빌이 연기한 메리의 떨림은 압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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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인디에어 (미국, 감독 : 제이슨 라이트먼 / 출연 : 조지 클루니·베라 파미가·안나 켄드릭) |
1년 중 322일 동안 비행기를 타는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베테랑 해고전문가이다. 여행 가방 하나만 든 채 자유롭게 현재를 즐긴다. 그의 목표는 천만 마일리지를 쌓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플래티넘 카드를 받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주제로 강의할 때, 라이언은 인생을 짐 싸기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것저것 가방을 가득 채우려는 이들에게 죄다 버리고 최소한의 것들만 챙기라고 권유한다. 물품이나 인간관계 모두 필요할 때마다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만만하고 여유롭던 그에게 새로운 온라인 해고프로그램을 개발한 신입사원(안나 켄드릭)이 등장하면서 여정에 변화가 찾아온다. 그의 행복은 온전히 유지될 것인가. 영화를 본 후 실제로 나와 타인 간의 관계를 골똘히 생각했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라이언은 집착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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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여름의 조각들
(프랑스, 감독 : 올리비에 아사야스 / 출연 : 줄리엣 비노쉬·제레미 레니에·에디뜨 스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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