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책이야기] 민주화운동의 '얼굴 없는' 위대한 투사들
등록 2016.03.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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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이 사람을 보라 2: 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

민주화운동의 '얼굴 없는' 위대한 투사들

 

박현진 회원


 “그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아주 작은 일 하나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영웅적인 행동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만 해도 됩니다. 그러면 역사의 어느 시점엔가 작은 일 수백만 개가 하나로 뭉쳐 변화를 가져옵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작은 일 수백만 개”가 뭉쳐 역사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때로는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뒤흔들기도 하지만, 결국 역사를 한 걸음 나아가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개개인의 작은 일들이 모였을 때 가능하다고 봤다.

 


 『이 사람을 보라 2』(두레)은 그간 우리 민주화운동사에서 도드라지지 않았던 사람들과 그들이 시대의 고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담아낸 책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저자 김정남 역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민주화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저자는 책 서문에서 “감추어진 진실을 빛 속에 드러내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기도 하다”고 밝혔다. 앞서 2012년 출간한『이 사람을 보라 1』에서는 김수한 추기경, 장준하, 이소선, 전태일, 박종철, 리영희, 조영래 변호사 등 29명의 인물을 통해 민주화운동사를 조명했다.


 이번 책에서는 장일순, 홍남순, 김영삼, 천관우 등 이미 민주화운동사에 이름을 깊이 새긴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자가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됐다며 기록한 전병용의 이야기 등 20명이 담겼다.


 ‘전병용을 비롯해 몇몇 헌식적인 교도관들이 30여 년에 걸친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보여 준 역할은 상당한 세월이 흘러 이제야 그 윤곽의 일부가 빛 속에 드러나 우리 민주화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햇빛을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다. (중략) 한국의 민주화는 이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 441쪽


 전병용은 1967년 교도관으로 임용됐고, 1969년부터는 서울구치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유신정권이 잡아들인 학생들과 바깥세상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았다. 김지하는 훗날 회고록 <흰 그늘의 길>에서 전병용의 두고 “민청학련 사건의 최대의 공로자”라고 표현했다. 같은 해 7월 구속된 지학순 주교를 보살피고, 몰래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전병용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군사독재를 무너트리게 된 일에도 전병용은 큰 역할을 했다. 감옥에 갇힌 이부영이 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되었다”는 편지를 이 책의 저자인 김정남에게 전달해 6월 항쟁의 불씨를 만들었던 것이다. 1986년 5월 인천사태 때 수배된 이부영과 장기표 등을 숨겨준 혐의로 전병용 스스로가 구속되기 불과 2, 3일 전 일이었다. 저자는 전병용을 두고 민주화운동사의 “얼굴 없는 위대한 투사”라고 표현했다.


 그간 조명되지 못했던 강은기 역시 “민주화운동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던 사람이다. 그는 인쇄소 ‘세진문화사’를 운영했는데, 1979년 YH 여성 노동자들의 유인물, 5‧18 광주민중항쟁 관련 화보집 등의 제작을 맡았다. 계염사 군법회의에서 3년을 받아 복역까지 했지만, 자신의 공로를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책은 전병용, 강은기와 더불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출범에 공로자인 신형봉 신부와 최기식 신부, 민주화운동가들을 숨겨주고 그들의 도피자금을 마련해줬던 흥국탄광 현장소장 박윤배 등을 담았다. 부록으로는 민주화운동사의 고비마다 큰 역할을 담당해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역사를 조명했다.


 저자는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바로 20~30년 전 일인데 역사가 돼버렸다. 젊은 사람들은 민주화가 한꺼번에 와버린 것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그 편린이라도 살펴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책에 실린 ‘이름 없는 사람들’도 알아봐줬으면 좋겠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도 많지만, 보이지 않게 헌신한 사람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사를 다룬 책은 꾸준하게 발간돼 왔다. 하지만 『이 사람을 보라 2』은 조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굵직굵직한 사건 혹은 이름을 남긴 ‘영웅’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꾼 것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고군분투였음을 일깨운다. 더불어 사람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민주화운동사를 폭넓게 기술했다. 민주화운동사 전반을 두루 살펴보기 위한 ‘기록’으로 읽어보기에도 충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