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호] [영화이야기] 가치 있는 존재
등록 2017.02.1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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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인의 삶은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난다. 다른 삶을 동경하거나 꿈꾸지 않는다면 대개 거짓이다. 건강하든 부유하든 평화롭든 활기차든 로맨틱하든 타인의 삶에서 ‘반짝이는’ 그 무언가를 발견하고, 내 것이 되어 더 윤기 나길 바란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타인의 삶이 아닌 내 삶에서 반짝이는 빛을 좇으라 귀띔한다. 

 

 

1926년 2월 1일 ~ 2009년 4월 2일, 한 사람이 멋지게 살았다!

 

2007년 역사학자 존 말루프(감독)는 시카고 역사를 다룬 책에 삽입할 옛 거리 사진을 찾기 위해 동네 경매장에 들렀다. 존은 가장 큰 상자를 380달러에 낙찰받았다. 상자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네거티브필름 15만 장이 들었다. 필름 주인은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였다. 비비안이 촬영한 1950~60년대 뉴욕, 시카고 거리 풍경과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은 존을 매혹했다.

 

비비안마이어를찾아서_포스터.jpg

 

존은 그녀의 작품을 사진 커뮤니티 플리커(Flicker)에 올렸고, 네티즌은 뜨겁게 호응했다. 천부적 재능과 심미안을 지닌 비비안은 누구일까? 어디에 있을까? 존은 본격적으로 비비안의 발자취를 좇았다. 그녀를 알았던 이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비비안은 비밀이 많았다.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때론 ‘비브’ ‘미스 스미스’란 이름을 사용했다. 항상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었으며, 집을 옮길 때마다 수십 개의 필름 상자를 반드시 챙겼다. 그녀가 찍은 인물 대부분은 표정이 자연스럽다. 주로 사용했던 카메라 <롤라이 플렉스 Rollei flex>는 뷰파인더가 대상이 아니라 하늘 방향에 달려있어 사람들이 ‘내가 사진 찍히는’ 지를 눈치채기 어려웠다.

 

그녀는 죽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자기가 찍은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차에 탔을 때처럼 남의 자릴 만들어줘야 해요. 좌석 끝으로 가줘야 다른 사람이 와서 앉죠.”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사진을 위해 열정을 쏟았던 그녀의 삶은 고독할지라도 순리대로 흘렀다. 아마도! 비비안이 남긴 사진 중에 셀카도 많았다.

 

훗날 SNS를 휩쓴 셀카 열풍을 예견했을까. 거울 너머, 쇼윈도에 비친 비비안의 표정은 건조하지만 여유롭다. 치밀하게 인간을 관찰하고 사회 낮은 데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던 비비안, “괜찮아요. 멈추지 말고 가세요.”라며 롤라이 플렉스 버튼을 누를 것만 같다. 비비안은 상자에 8미리, 16미리 영화 필름도 150개 남겼다. 이 동영상 또한 어떻게 사람 마음을 움직일지 기대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요. 우린 자유로운 존재니까요”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는 동네 작은 가게에서 팥소를 넣은 전통 빵 ‘도라야끼’를 만들어 판다. 그에겐 한 번의 큰 실수 때문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일이 즐겁지 않다. 일상이 무기력하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며 도쿠에(키키 키린) 할머니가 찾아왔다. 굽은 손가락, 굽은 허리로 젊은이도 꺼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도쿠에는 진심으로 원했다. (이때까지 흐름으론 도쿠에 할머니와 센타로 관계에 비밀스러운 사연(잃어버린?)이 있나 의심했다) 도쿠에 할머니의 진심은 손님한테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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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해 삶아 만든 팥소 덕분에 가게는 분주했다. 비로소 센타로는 활력을 얻었다. 도쿠에는 모든 일과 사물에 감동했다. “고생했어!” “힘내!” 팥 한 알에 고마워하고 오후 창가에 스민 햇볕에 행복하며, 벚꽃 한 송이도 고귀하게 감쌌다. 평화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동네에 도쿠에 할머니를 둘러싼 소문이 퍼졌다. 한센병을 앓았던 사실이 알려지자 손님 발길이 끊겼다. 도쿠에는 망설임 없이 가게를 떠났다. 그들에겐 더 큰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도쿄 외곽에 있는 한센병 환자 요양소 도서관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 체험했던 햇살, 나뭇잎, 바람, 꽃 등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겼다. <너를 보내는 숲>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수자쿠> 등 자연, 삶과 죽음, 가족을 주제로 세상과 소통했던 감독은 도쿠에 할머니를 통해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보기 위해, 듣기 위해 태어났어.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야.” 물론 긍정적이고 온화한 도쿠에 할머니도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무시 때문에 상처를 안고 살았다.

 

센타로에게 보낸 편지, “아무 잘못 않고 살아가는데,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손가락질에 한없이 쪼그라들고 속이 곪았어도 도쿠에는 한 걸음 먼저 다가서 타인을 위로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세상에 없으니까. 극 중 도쿠에를 연기한 베테랑 배우 키키 키린은 가와세 감독과 호흡하며 연기와 실제를 오갔다 한다.

 

‘대본일까?’ 궁금한 장면이 있다. 도라야끼 가게 앞에 흐드러진 벚꽃을 보던 도쿠에가 읊조리던 말, “내가 벚꽃에 넋을 잃고 볼 때, 센타로 얼굴에 배인 깊은 슬픔을 잊을 수가 없어. 십 대 후반 나의 표정이 그러했을 거니까.” 키키 키린은 이 영화 개봉 일 년 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태풍이 지나가고>에 출연했다. 유명 작가를 꿈꾸지만 별 진척 없는 철부지 료타(아베 히로시)의 엄마로 등장해 아들과 가족의 행복을 도모한다. “행복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거란다.”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날마다 즐겁게.” 그야말로 격려와 응원의 아이콘이다.

 

김현식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