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8월호] [여는글] 행방불명된 마봉춘·고봉순을 찾아라
등록 2017.08.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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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MBC는 한 때 ‘고봉순’, ‘마봉춘’으로 불리며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국정농단의 제일 공범이며 적폐청산 1호의 방송사가 됐다. KBS와 MBC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내내 퇴행의 길을 걸었다. 권부의 치부를 축소·은폐하고, 불편한 의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비판적인 주장은 이유 불문하고 종북·좌파의 색깔을 칠했다. 냉전이데올로기를 부추겨 국민을 진영의 벽으로 가두고 편을 갈랐다. 이들 방송에서 자유·평등·정의는 사라졌고 진실은 소외됐다. 급기야 이들 공영방송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흉기로 변해버렸다. 여론을 통제하고 싶은 권력자의 욕구와 자리를 탐한 부역자들의 욕망이 빚은 부도덕한 뒷거래의 산물이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촛불이 희망했던 적폐청산은 아직 요원하다. 청산 1호인 언론적폐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세력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지만 그들의 부역자들은 멀쩡히 방송사 안에서 인사권과 편성권을 휘둘러 적폐세력을 두둔하며 시대역행적 방송을 쏟아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권부의 충견으로 충성경쟁을 일삼았던 이들이 최근 ‘방송독립’을 외치고 있는 모습은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불공정 방송을 비판만 해도 ‘방송개입’이라며 날을 세우고 노동탄압 등의 불법행위를 조사하면 ‘방송장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고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깡패집단과 다를 바 없다. 이들 부역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때로는 훈수를 두면서 이들의 방패 노릇을 하는 KBS이사회와 방문진도 매한가지다.

 

이런 현실에서 이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방송의 공정성과 내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은 용도 폐기된 지 오래다. 5년째 무단협 상태에 놓여 있는 MBC는 공정방송협의회 개최 자체가 불가능하다. 불공정을 비판하는 구성원에게는 가차 없이 전보와 징계가 떨어진다. 법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당전보, 부당징계 등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를 법에 호소하는 정도지만 승소를 확신하더라도 대법원의 최종판결까지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시급하다. 부역자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시간 끌기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방송사 안에서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눈물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15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영화 ‘공범자들’(MBC 해직언론인 최승호 감독)을 본 이용마 MBC 해직언론인은 “MBC, KBS 욕 많이 먹고 있지만 내부에서 지난 10년 동안 저희들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지금도 양대 공영방송 구성원들은 경영진 출근저지 피케팅, 기수별·국별 성명서 발표, 일인시위, 사내외 집회 등 다양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웃지 못 할 일은 KBS구성원들이 출근저지 피케팅을 시작한 뒤로 출근시간에 경영진 보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참담한 KBS의 현실이다.

 

법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투쟁은 파업이다. 하지만 파업은 방송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방송을 사랑하는 방송 노동자들이 쉽게 결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2012년 MBC 170일 파업에도 적폐권력과 부역자들은 방송이 망가지든 말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무책임의 극치를 생생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적극적 불복종 운동’은 효과적인 투쟁방식이다. 최근 사내에서 “김장겸 물러나라”고 소리를 지르는 MBC 김민식 피디의 샤우팅(shouting)은 언론부역자들의 부당성을 알리고 사내 여론을 환기시켰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13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김 피디는 망가진 MBC에 대한 책임과 인사위원회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단행했지만 경영진의 제지로 중단됐다. 그런데 경영진이 내건 제지의 이유가 “밥 먹을 때가 됐기 때문”이라니 허탈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상 쓰레기통 속 폐기물이 되어버린 방송에 신물이 난 국민은 인내의 한계 상황까지 왔다. “그 방송 안 보면 그만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KBS 수신료를 JTBC에 주자”는 극단적 주장까지 등장했다. 방송사 안의 구성원들은 오랜 동안 권력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려 저항했지만 이들을 지지하고 성원했던 시청자들에게 남은 것은 패배감과 좌절감뿐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냉철해져야 한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KBS와 MBC를 적폐세력의 언론부역자들에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KBS와 MBC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며 포기해서는 안 되는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채널 9번, 11번은 좀처럼 시청자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신뢰도와 영향력이 형편없이 추락했지만 좋든 싫든 습관적으로 채널 9번과 11번을 트는 시청자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지금도 1,200만여 명의 시청자들이 매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앉아 KBS와 MBC가 토해내는 오염된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망한 공영방송에 관심을 끊어버린다고 해서 언론환경이 더 건강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종편이 쏟아내는 막말과 불량 콘텐츠가 여론을 주도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의제설정 기능에 구멍이 나고 국민의 알권리는 무시되기 십상이다. 요망한 프레임이 작동되어 선정과 왜곡으로 언로가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문화계를 혼란에 빠뜨린 조윤선 전 정무수석의 공판 뉴스가 ‘조윤선 순애보’, ‘젊은 시절 꽃미모’, ‘7년간 열애’ 따위의 감성언어로 도배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자본 의존도가 클수록 방송은 선정성과 질적 저하로 흐르기 십상이다. 케이블, IPTV, 위성 등 매체마다 수백 개의 채널이 존재하고, 인터넷, 모바일 등 매체환경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합편성을 하는 공영채널은 KBS와 MBC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남녀노소, 빈부의 차, 계층, 지역 등과 관련된 콘텐츠를 차별 없이 골고루 서비스하는 보편적 서비스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공영방송이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보편적 서비스의 의무를 짊어진 공영방송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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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포기하면 엉뚱한 객들이 활개를 치기 마련이다. 국민이 공영방송을 버리면 공영방송은 국민을 버린다. 그러기에 공영방송을 장악했던 적폐세력들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지금에도 그 부역자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오염된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현실은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한다. 이제 시민이 나서야 한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이 무법자들의 방송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들이 휘두른 인사권과 편성권을 국민이 가져와야 한다. 그리하여 행방불명된 마봉춘, 고봉순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