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책이야기] 폭스뉴스와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들
등록 2018.02.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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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진보적인 사회학자가 도널드 트럼프를 가장 많이 지지했던 보수적인 지역을 찾아가 5년 동안 살다시피 하면서 그곳 사람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해서 그 사람들의 내면을 연구한 책이 나왔다. 『자기 땅의 이방인들』이다. 대체 왜 가난한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 같은 수구 정치가를 지지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들을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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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사회학과 명예 교수다. 『감정노동』(이매진, 2009)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혹실드는 가장 부유하고, 진보적이고, 교육 수준 높고, 다양하며 개방된 문화를 지닌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 산다. 그런 혹실드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보수적이고, 교육 수준 낮고, 폐쇄된 문화를 지닌 루이지애나 주를 찾아가 주민들을 밀착 취재한다. 마치 한국 전라남도 광주에서 ‘빨갱이’ 소리를 듣는 진보 인사가 경북 대구의 수구적인 ‘보수주의자’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같이 지내면서 취재하는 격이다. 미국 이야기인데 한국 사회를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저자가 방문한 보수적인 도시 루이지애나는 싱크홀과 화학 물질 오염 등 환경 위기의 전시장이다. 평균 기대 수명이 짧아 진보적인 도시 사람들보다 5년 일찍 사망하며(75.7세), 교육 수준이 낮은 지역이다. 그리고 미국 전체에서 인간 개발 지수 49위, 건강 순위 꼴찌, 아동 행복 수준 49위인 도시다. 주민들은 환경오염의 피해자들이다. 그런데도 환경 규제에 반대하고, 보수적인 정권을 지지한다. 이 ‘거대한 역설’을 저자는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우파 쪽 사람들은 삶에 관해 어떻게 느낄지, 정치의 밑바탕에 자리 잡은 감정에 관심이 있었다. 저자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두 곳을 오가며 ‘티파티(Tea Party)’ 친구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들의 자리에 서봐야 했다”며 “그 사람들 ‘내면의 이야기’, 느껴진 그대로 쓴 서사를 발견했다”고 밝힌다. 루이지애나의 티파티 핵심 지지자 40명과 관련자 20명의 심층 인터뷰가 이 책의 바탕이다.


보수 단체인 ‘티파티’라는 말의 어원과 뜻은 다음과 같다. 티파티의 티(TEA)는 ‘Taxed Enough Already’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이미 세금을 충분히 많이 내고 있다’, ‘세금 더 많이 내기 싫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세금 인상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이들은 큰 정부와 큰 기업, 큰 부채, 큰 세금, 이런 걸 싫어한다. 작은 정부와 적은 세금, 자유시장 경제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들은 매우 보수적인 주장을 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불법이다, 총기소지의 자유는 신성한 것이다, 정부 간섭은 중단돼야 한다,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가 맞벌이 부부 가족을 돕는다는 생각 자체에 반대한다. 환경 보호? 기업이 살려면 환경오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구 온난화도 마찬가지다.
사례를 들어본다. 저자가 만난 마이크 샤프는 싱크홀이라는 커다란 재난 때문에 집을 잃었다. 이 싱크홀은 약 30미터짜리 나무들을 집어삼키고 약 16만 1900제곱미터 넓이의 늪을 뒤집어놓았다.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시추 회사 때문에 일어난 재난이었다. 마이크 샤프는 명백한 환경 재해의 피해자였다. 그런데 티파티 지지자인 마이크는 모든 종류의 정부 규제를 철폐하라는 요구에 환호한다. 게다가 환경 보호를 위한 정부 지출을 과감히 삭제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가난한 이들이 이렇게 보수주의자가 되는 까닭은 뭘까. 그중 하나는 역시 왜곡된 기사를 쏟아내는 수구 언론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그 사례로 2014년 퓨리서치센터에서 1만 명이 넘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든다. “과거에 견주면 양쪽은 또한 점차 자기편 텔레비전 채널에서 뉴스를 얻는다. 우파는 <폭스뉴스>에서, 좌파는 <엠에스엔비시(MSNBC)>. 그리하여 분열은 더욱 확대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마치 한국에서 수구 보수들이 <TV조선>과 ‘조중동’을 보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JTBC>와 ‘한경오’를 보면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자기 땅의 이방인들》. 이 책을 보면서 자꾸 한국의 태극기부대가 떠올랐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거나, 대구 어느 시장 바닥에서 노점을 하거나 식당에서 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감옥에 간 박근혜가 억울하다고 풀어주라고 하는 장면은, 미국에서  트럼프에 열광하고 있는 티파티 단체 회원들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오늘날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비슷한 집단에 갇힐수록 견해는 더 극단적으로 바뀐다”고 지적한다. 환경운동가인 샐리와 티파티 지지자인 셜리가 평생 서로를 돕고 사는 우정을 소개하면서 “건강한 민주주의는 모든 문제를 끝까지 토론하는 집단적 능력에 달려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우리 한국사회도 그런 집단적 능력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보수적인 지역에 사는 시민들 가운데 얼마나 착하고 선량한 이들이 많은가. 우리는 그런 이들과 얼마나 깊은 토론을 해 봤을까. 그런 토론으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같은 극우 정치가들이 정치를 한다고 깝죽대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글 안건모 편집위원·월간 <작은책>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