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지침’이란 희대의 괴물이 출현하게 된 시대적 배경, 그 가소롭고도 아연실색할 내용, 그 몸통과 관련 자료 그리고 형사사건의 기록 등을 수록한 <보도지침>이 발간된 과정과 이번에 나온 증보 개정판 간행의 역사성 등에 대해서는 바로 이 증보판 안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그와 겹치는 이야기는 접어놓기로 한다.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하는 사회에서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솔론의 말이 실증된 역사의 한 장(章)이기도 했다.
당시 악역을 맡았던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도 언론 탄압을 통하여 온 극민의 분노를 일으켜 저 위대한 ‘6월항쟁’의 궐기에 불을 질렀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인 공헌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형사법정에서 드러난 법관의 굴절과 검사의 망언, 그리고 ‘역시나 유죄’를 거쳐,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뀐 뒤의 8년만의 항소심 무죄 –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보면서, 역시 정치 사회의 민주화가 사법의 민주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한국적 풍토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하에서 ‘보도지침’을 능가하는 탄압의 비열한 진화가 횔행된 사실 또한 같은 이치를 증명해주고도 남았다.
그리하여 역사의 진행만이 아닌 단락(매듭)을 통한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배의 객체에서 주체로, 역사의 객체에서 주체로 격상하는 정도(正道)라고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지만, 그것을 이겨낼 지혜와 힘도 주신다고 했다. 우리는 화석 아닌 화신을 지향해야 한다,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거창한 일을 해야만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일찍이 율곡은 “무릇 올바른 길은 결코 높고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道非高遠)라는 말씀을 남겼다.
30년 전의 그 ‘보도지침’ 사건을 반추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이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은 ‘반민주’를 투시할 업그레이드된 내시경이며, 우리 모두를 위한 각성제이자 처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