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단체 활동가가 됐어요?”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 출근해 논평과 성명을 쓰고 어떤 정책들을 제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지금도 오랜만에 만나거나 연락이 닿은 지인들(과 과거의 동료들과 취재원들)은 어김없이 이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경우 “뭐, 그렇게 됐어(요)” 정도의 답을 하면 상대 또한 그렇지, 하며 다음 대화로 넘어간다. 잘은 모르지만 이 정도의 대답으로 질문자가 나의 이직의 이유를 정말 납득하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근황을 묻는 또 다른 형태의 물음에 가깝다. 아마도 내가 두루뭉술한 형태의 대답 대신 “사실 말이야, 예전부터…”라고 진지하게 말문을 열었다면 상대는 속으로 헉, 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어떤 일을 ‘왜’ 선택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삶과 고민을 들여다보고 꺼내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그렇지”하며 적당하게 넘어가 준 상대의 모습에 답변자인 나 또한 안도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내 삶과 고민을 꺼내 보이는 일은 사실 내게 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달 초 어느 날 오전, 박제선 활동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회원 소식지에 실릴 글 하나를 써야 하는데 주제는 신입 활동가의 인사로, 앞으로의 각오를 밝히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헐”이라는 감탄사를 던진 후 말했다. “제게 있어 가장 어려운 주제의 원고이군요.” 곧바로 답변이 왔다. “저도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 같아서….” 원고를 쓰지 않아도 된다거나 주제를 변경할 수 있다거나 등의 말이 이어지길 기대했지만 역시나 바람은 바람일 뿐, 기대한 말이 모니터에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결국 박제선 활동가의 프로필 사진 속 고양이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마감일을 확인했다.
그렇게 마감일을 받아들고 고민했다. 나는 왜 기자를 그만두고 활동가를 선택했을까. 머릿속 질문임에도 답을 꺼내 놓는 건 역시나 쉽지 않았다.(이 글을 마감 당일에야 쓰고 있는 이유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막 삶(의 길)을 전환한 상황에서 이 길이 나의 소명이라고 확신 가득 말한다면, 그건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는 건, 인과를 배제한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한 ‘지금의 답’ 뿐이다.
왜 기자를 그만뒀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대답을 망설이는 건 마음속에서 기자를 그만뒀다는데 방점을 찍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기사의 댓글에 ‘기레기’라는 조롱의 단어가 붙는 시대이고, 십수 년 기자로 일을 하며 스스로 부끄러운 순간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기자는 공익의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일을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직업이라 생각한다.
활동가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욱 그렇다. 공익을 위해-민주언론시민연합의 경우 언론이 권력 감시라는 책무를 위해 위임받은 권한에 취해 스스로 권력으로 기능하지 않고 공적 책임 실현이라는 가치의 실현에 최선을 다하도록 감시·독려하기 위해-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가장 좋은 방안을 찾으라며 회원들이 내어준 회비로 일을 할 수 있다. 불리는 이름이 달라졌을 뿐, 하는(해야 하는) 일이 변하진 않았다.
그럼 왜 활동가야, 라는 질문에 지금 가능한 답변은 숨고 싶지 않아서, 라는 정도의 말이 아닐까 싶다. 기자로 일하던 시절, 매 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스트레이트 기사 하나를 쓸 때도 왜 이런 문장을 쓰는지, 이 문장 안엔 어떤 공익이 담겨 있는지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을 뒷받침한 상식 혹은 당위의 명제들이 과연 이 사회 안에서 공유되고 합의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침몰한 세월호와, 그 침몰로 아끼는 사람을 잃은 수많은 사람을 향해 정치와 언론이 쏟아낸 저주에 가까운 부정의 말들이 힘을 갖는 시간들이 길게 이어졌다.
방송 등 언론 정책을 살피고 비평하는 일을 주로 하는 매체에서 일했기에 그 시간 동안 그런 현상을 비판하고, 또 어떤 법과 제도로 그런 현상을 부추기는 매체들을 제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그럭저럭 옳게 보이는 문장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럭저럭 맞는 듯 보이는 문장을 쓰고, 가끔 ‘그래도 우린 기레기는 아니지’라고 애써 자위하는 동료들의 얘기를 들을 때 ‘과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선 안도하는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파괴된 듯 보이던 우리 사회의 상식과 합의를 복원한 건, 옳은 문장으로 채운 기사가 아닌 행동하는 시민의 목소리였다.
물론 시민들이 행동할 수 있도록 거짓으로 꾸며져 있던 진실을 발굴한 훌륭한 역할을 한 언론(인)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언론(인)보단 그렇지 않은 언론(인)이 더 많았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했다. 대충, 적당히, 맞는 듯 보이는, 옳은 듯 읽히는 문장 안에 숨어있고 싶지 않다고.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에게 직접 말을 걸어 언론 개혁의 길을 닦아 온 민주언론시민연합 안에서 나는 어떤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게, 지금 밝힐 수 있는 최소한의 각오다.
글 김세옥 정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