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호] [책이야기] 베트남 항미전쟁의 게릴라, 반레 시인
등록 2018.05.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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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소설 한 권을 소개한다. 2002년에 나온 책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이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베트남에 관한 상식(?)부터 되짚어본다. 아직도 우리는 베트남에 관한 역사를 수박 겉핥기로만 알고 있다. 미국이 만든 베트남전쟁 영화에서 본 내용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 람보에서 보던 장면들이 베트남전쟁의 진실인 것처럼 말이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역사가 너무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라다. 중국 지배에 맞서 천 년 동안 싸웠고, 뒤이어 프랑스에 1858년부터 80년 동안 지배를 당했던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프랑스를 쫓아내고 다시 일본에 지배당했다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8월 24일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일본 괴뢰 정부를 쫓아내고 연합군이 진주하기 전에 완전한 자주독립 정권을 수립했다. 1945년 8월혁명은 천 년의 봉건체제와 백 년의 식민체제를 타도한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독일군에게 짓밟힌 프랑스는 연합국의 도움으로 독일 치하에서 겨우 벗어난다. 역사의 교훈을 잊고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원정군을 파견해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내세워 베트남국을 세웠다. 결국 베트남 민주 공화국은 프랑스에 맞서 싸운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다. 8년 동안 계속된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두 손 들었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 1만 여명이 포로로 잡힐 정도로 궤멸돼 버렸다. 1954년 4월 26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린 제네바 협정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고, 베트남 공화국이 완전히 승리했다.


그런데 이번엔 미국이었다. 미국은 그런 공산주의 국가의 수립을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인도차이나 반도에 공산주의 나라가 확산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그동안 베트남을 침략했던 프랑스를 뒤에서만 지원했지만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을 직접 침공했다. 그리고 이어진 2차 베트남 전쟁.(『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의 저자 반레는 절대로 ‘베트남 전쟁’이 아니라 미국의 침략전쟁, ‘항미 전쟁’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미국은 10년 동안 융단폭격을 퍼부어 베트남을 초토화시킨다. 단순한 폭탄만이 아닌 불바다로 만드는 네이팜탄, 밀림을 말라죽이고 사람을 기형으로 만드는 고엽제까지 퍼붓는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비한 폭탄의 몇 배나 되는 폭탄을 퍼부었지만 결국 패배를 한다.


부도덕한 미국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로운 베트남 인민들은 결코 미국에 굴복할 수 없었다. 베트남 젊은이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스스로 전쟁에 참가했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을 쓴 반레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자원입대했다. 사실 ‘반레’는 자기 본명이 아니다. 전선에서 죽어간 시인 친구의 이름이다. 본명이 ‘레지투이’인 반레는 시인이 되기를 꿈꾸다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삶을 대신하고 있다. 그는 열입곱 살 때인 1966년 자원입대한 후 10년 동안 미군과 싸웠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함께 입대했던 300명 부대원 중 살아남은 이는 오직 다섯 명 뿐이었다. 어쩌면 ‘반레’라는 이름은 시인 한 사람 이름이 아니라 전선에서 죽어간 전우들 이름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특이한 서사 구조로 돼 있다. 저자와 똑같은 나이에 자원입대한 빈이라는 주인공은 전선에서 싸우다 죽는다. 그리고 저승으로 와서 이승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마치 얼마 전에 상영한 영화 <신과 함께>를 연상케 한다. <신과 함께>는 여자 아이를 구하고 죽은 소방관 자홍이 일곱 번 재판을 거치면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내용이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의 주인공 빈은 노잣돈만 있다면 황천강을 건널 수 있고, 그 강만 건너면 ‘망각의 죽’을 먹고 환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노잣돈이 없어서 그마저 희망이 없다.


이 책은 전선에서 싸우는 장면이 많지 않다. 저자가 전쟁에서 살아남은 전설적인 게릴라 용사였지만 흔한 무용담도 없다. 베트남을 해방시키기 위한 숭고한 이념도 없다. 미 제국주의를 비난하거나, 공산주의 이념이 정당하다는 장황한 설교도 없다. 그저 인민이 고통받는 이야기, 전선에서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애달픈 이야기다. 유일한 혈육을 전쟁터로 떠나보내는 할아버지,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의 눈을 감겨주기 위해 집을 찾아갔다가 적에게 들켜 허무하게 죽는 소대장 이야기, 자신의 아이를 가진 동료를 배신하고 살해하는 군의관 등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묘사는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이렇게 세밀하게 그 전장을 기억하는 작가의 고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반레 시인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지난 3월 5일부터 12일까지 한베평화재단에서 주관한 베트남평화기행 때, 마지막 날인 3월 12일 반레 시인의 집을 방문했다. 반레 시인이 베트남어로 말했고, 구수정 박사가 통역했다. 반레 시인은 베트남전쟁 당시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면서 그런 참혹함은 글로 옮길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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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항미 전쟁 당시의 반레(오른쪽) 사진 제공_한베평화재단


나는 반레 시인에게 물었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사과를 하지 않고 있고, 베트남 피해자 유족이 “당신네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냐”고 항의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반레 시인은 “그것은 베트남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미명 때문”인데 그것은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 양국 정부를 충분히 압박할 정도로 많아질 때라야 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정부가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는 일이 세상 어디에 있냐?”고 명쾌하게 되물었다. 구수정 박사가 통역하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웃었다. 꽉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반레 시인은 2003년에 소설가 방현석 등이 초청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2003년 10월 8일자 <한겨레21>에 고경태 기자가 쓴 기사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는 쇼핑이나 관광은 한사코 사양했는데 가고 싶은 데가 있냐는 물음에 “할 수 있다면, 광주 망월동의 시인 김남주 묘역을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 베트남의 라디오에서 김남주의 시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감옥에서 시를 썼다는 ‘한국의 전사시인’을 생각하며, 호치민을 떠올렸다고 한다. 고경태 기자는 이렇게 글을 맺었다. “망월동을 찾은 그는 김남주의 무덤에 국화꽃 다섯 송이를 바쳤다. 그리고 세 번 절을 했다. 일어나서 그는 조용히 흐느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무덤을 지나며 울음은 깊어졌다. 사라져간 친구들을 회상한 것일까.”


요즘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종전협정을 맺으려고 한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종전협정이 이루어지면 베트남식 개혁 개방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베트남식 개혁·개방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정책이다. 북한이 과연 성공을 할까.


김정은 위원장이 개혁 개방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베트남이 궁금한 분들은 꼭 반레 시인이 쓴 책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을 읽어보시라. 소설가 방현석은 일찍이 “반레의 소설은 전쟁도 파괴시키지 못한 숭고한 인간의 흔적을 주목한다. 읽고 나면 베트남의 역사를 지탱해온 신비를 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베트남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베트남과 비슷하게 국가를 지켜 온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안건모 편집위원·<작은책>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