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회원인터뷰] 또 다른 김재철이 와도 버틸 수 있는 힘, 그것이 MBC의 미래다 (이용주 회원)
등록 2018.08.2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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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육군의 실전 훈련을 보도하던 한 MBC 기자가 제독 절차 중 하나인 샤워를 직접 체험하며 리포트를 했다. 곧바로 화제가 됐다. 2년 뒤, 이 기자는 정반대의 의미로 다시 여론에 회자됐다. 당시 보도 탄압, 노조 파괴를 일삼던 사측을 비판했다가 정직 9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세 번의 파업과 수많은 부당 징계. 9년이란 엄혹한 세월을 지나 이제 막 제자리를 찾은 MBC 기자들이 있다. 샤워도 마다하지 않는 ‘열혈 기자’ 이용주 회원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에게 MBC, 그리고 민언련은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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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과 함께 한 ‘황우석 사태’, 저널리스트의 길을 열어줬다


이봉우 : 5년 만에 기자로 돌아오셨고, 민언련과도 참 오랜만입니다. 감회가 어떠신가요?

 

이용주 : 한창 혈기왕성한 30대 초중반의 시기를 보도국 밖에서 기사 쓰는 일이 아닌 곳에만 있었다는 게 너무 아쉽죠. 그런 만큼 요즘 일을 할 때 하루하루가 더 절실합니다. 작은 기사 하나도 굉장히 소중하게 쓰고 있어요.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민언련을 찾아뵙게 됐는데 멋진 특종 하나 없어서 아쉽네요. 2006년 MBC 입사 이후 민언련 활동을 잘 하지 못해 참 부끄럽습니다. 저는 안 그러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저도 별 수 없나 봅니다.


이봉우 : 민언련 회원으로 벌써 10년 넘게 함께 하셨습니다. 민언련과 첫 인연은 무엇이었나요?

 

이용주 : 2005년 3월에 제대를 하고 학교 선배의 추천을 받아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던 차에 민언련 글쓰기 강좌를 들었습니다. 저는 글쓰기 강좌도 좋았지만 글쓰기 외에 다른 활동도 하고 싶었는데 마침 강좌 뒤풀이를 했고 당시 활동가들께서 신문모니터위원회를 권유하여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방송기자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방송용 얼굴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문기자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신문분과를 시작했습니다. 신문분과를 하다 보니 당연히 술도 많이 마셨고 그렇게 2년 가까이 활동을 했습니다. 2006년 입사 직전까지 그렇게 활동했습니다.

 

이봉우 : 민언련 활동을 하시던 2005~2006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언론계 사건은 무엇인가요?

 

이용주 :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황우석 사태, 또 하나는 쌀 수입 협상 논란입니다. 황우석 사태의 경우 많은 민언련 회원들과 언론인 지망생들도 고민을 하고 갑론을박을 벌였던 사안입니다. ‘과연 MBC의 보도가 올바른 보도일까? 올바른 보도는 무엇일까?’ 저도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MBC가 당시 ‘국민 욕받이’로 전락한 정도였는데 저는 신문분과에서 많은 보도들을 쭉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기존의 다른 이슈들과 큰 차이점이 있더라고요. 보통 다른 이슈들에서는 진보, 보수 매체의 논조가 갈리는데 황우석 사태는 모든 매체가 일제히 MBC 보도에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MBC가 옳다는 진실이 드러났죠. 그런 과정을 모니터하면서 ‘나는 저렇게 보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 것일까’ 감탄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욕을 먹는다는 게 상당히 아픈 일이라 보도하는 사람도 위축될 수밖에 없잖아요. MBC가 그렇게 욕을 많이 먹는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이며, 나도 가능할까,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언론인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고요. 두 번째 쌀 수입 협상 논란의 경우에는 제가 대학생 때 농활을 하면서 농민들과 얘기를 많이 나눠서 당시에도 농민에 대한 친밀감이 남아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그 문제를 당면하다보니 모니터 보고서 하나로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농민들에게 함께 한다는 느낌을 전해드리고 사회적으로 뭔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정교하게 언론의 논리를 반박할 수 있을까 분과원들과 함께 토론도 많이 했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이봉우 : 역사적인 시기, 치열하게 모니터를 하신 셈인데 그런 경험들이 언론인의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됐을까요?

 

이용주 : 물론이죠. 스스로의 다짐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매우 중요하더라고요. 분과하면서 다른 회원들과 ‘사람은 못 되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진지하고 거창한 약속들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언론의 역할, 언론인이 해야 할 일들을 얘기했죠. 그런 과정이 모두 언론인의 자세를 생각하는 계기였습니다.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방송 기자가 되다

 

이봉우 : 열정적으로 ‘신문분과’ 활동을 하셨는데, 결국엔 방송국에 입사를 하셨어요. 계기가 있나요?

 

이용주 : 별 다른 계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뜻을 뒀고 한겨레 입사 시험을 봤는데 상당히 예감이 좋았습니다. 합격했다고 확신했죠. 그런데 이게 설레발이었는지, 불합격했어요. 좌절에 빠졌는데 비슷한 시기에 MBC도 입사 시험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시험을 본 상태였거든요. 그냥 경험 삼아 시험을 봤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합격을 한 겁니다. 너무 얼떨떨했습니다. 처음엔 장난치는 건가 싶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역시 시험은 힘을 빼고 봐야하는 모양입니다.


이봉우 : MBC 입사하시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보도가 있으신가요?

 

이용주 :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이 둘째 아들이 술집에서 싸우다 부상을 크게 입자 직접 찾아가 보복 폭행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많은 재벌 가문의 갑질이 터지고 있는데 그 사건이 첫 단추였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경찰에 출두하는 날, 그 때 저는 수습이어서 김승연 회장 집 앞에서 죽치고 앉아 기다렸습니다. 김 회장은 연막작전으로 다른 차들을 먼저 내보내기도 했어요. 끈질기게 뒤쫓은 끝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김 회장 차를 발견해 영화를 방불케 한 추격전을 벌였습니다. 함께 했던 카메라 기자도 수습이었는데 수습 2명이서 영화를 찍은 것이죠. 김승연 회장 차가 신호를 받아 멈춰 섰고 저희가 드디어 따라 붙었고, 제가 내려서 차문을 두드렸습니다. 버티던 김 회장도 창문을 빠끔히 열었어요. 한 마디만 하고 돌려보내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창문 틈 사이로 마이크를 들이밀고 질문을 했는데, 그 때 제가 던진 질문이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습니다. 보통 ‘의혹에 한 말씀 해주십쇼. 이런 질문을 하는데 제가 너무 흥분해서 “왜 때리셨어요?”라고 물은 거예요. 김 회장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죠. 결국 신호가 바뀌고 김 회장은 떠나버렸습니다. 당시 보도에는 김 회장이 창문을 조금 열었던 장면만 나갔습니다. 지나친 차량 추격과 제가 다그치는 장면은 불필요하기도 하고 과잉 취재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생략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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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우 : 김승연 회장 보도도 좋지만, 2011년 ‘샤워 보도’가 역시 압권인데, 어떻게 하시게 된 보도인가요?

 

이용주 : 노코멘트 하겠습니다.(일동 웃음) 별 다른 건 아니고 군 관련 보도라 천편일률적으로 나가기 마련인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좀 더 재미있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한 겁니다. 많은 분들이 그때 제가 입고 있는 하의를 ‘팬티’로 알고 계시고 보도도 그렇게 됐는데 분명히 반바지라는 점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일동 웃음)


파업, ‘전두환 같은 그 분’…결국 쫓겨났다

 

이봉우 : MBC 입사하신 후 좋은 시절은 너무 짧았습니다. 공정방송 파업에 참여하셨고 결국 2013년 정직을 당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이용주 : 2012년 파업이 끝나고 복직을 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무려 반년 간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너무 조용했습니다. 언제 파업을 했냐는 듯 무기력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돌아간 겁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빠르게 정상화가 되는 것이 맞지만 파업을 유발하고 문제가 됐던 인사들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우리는 일선 현업으로 복귀를 해서 그들의 지시를 받아 다시 일을 하는 상황이 쉽사리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논쟁이 있고 저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소한 문제제기, 저항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이 사내 게시판 등을 이용해 일상적 저항에 나섰죠.


이봉우 : 게시판에 의견을 개진한 그런 수준으로 바로 정직 징계가 내려지나요?

 

이용주 :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누적이 된 것이죠. 일상적 저항이 시작되자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도 다시 행동에 나섰습니다. 저를 중부권 취재센터라는 곳에 발령을 보냈고 다시 스포츠 취재부로 발령을 내더니 두 달도 안 되어서 아예 보도국 바깥으로 쫓아냈습니다. 제가 당시 김재철 사장에게 계란을 던진 것도 아니고 그냥 아주 소소하게 ‘이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식의 문제제기를 한 것이었는데 보도국에서 쫓아낸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불이익을 받았어요. 일명 ‘유배지’로 쫓아내 버리는 것이죠.

 

이봉우 :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체제의 MBC에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부당한 전보를 당하셨죠. 그렇다면 ‘정직 징계’는 다른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이용주 : 그렇죠. 보도국에서 쫓겨나자 기자로서 저항을 할 수 없게 되어서 결국 다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회사 인트라넷에 자신의 업무를 기록하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다 제가 할 일을 쓰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MBC의 전두환 같은 그 분을 내보낼 전략 수립”이라고 썼어요. 이게 왜 결정타가 됐는지 이해는 할 수 없지만 회사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징계위가 개최됐고 정직 6개월이 결정됐습니다. 2013년 2월부터 그렇게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당시 이용주 기자는 인사평가가 R등급이라는 이유로 정직 1개월에 교육 2개월이 추가되어 사실상 9개월 간 회사를 떠나야 했다_편집자주)


‘또 다른 김재철이 와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이봉우 : 지난 9년 간 아무리 탄압이 심했다고 하지만 MBC 뉴스가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느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붕괴된 것 아니냐 이런 지적도 있었는데요.

 

이용주 : 나치가 어떻게 공고한 지배력을 확립하고 장기간 유지했는지 보면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자발적 복종이라고 하더라고요. 몇몇 소수가 교묘하게 망가뜨린 부분도 있지만 그런 첫 시도들, 누구를 해고하고 유배지에 보내는 시도 속에서 다수의 분위기가 체념과 침묵으로 이어진 겁니다. 그런 체념의 과정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적지 않은 구성원들이 그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 개인적으로 조금씩 부끄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을 반성하고 비판도 받고 하다보면 변화하는 점이 있습니다. 저희들도 때때로 함께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면서 서로 반성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상처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렵게 되찾은 MBC를 반드시 정상화하겠다는 겁니다. 미디어 부분에서 MBC가 공룡 같은 조직인데 이 공룡의 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서 민가를 덮치면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다들 절감했기 때문에 다른 미래를 희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봉우 : 사실 MBC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여론도 팽배했습니다. 내부에서 싸우시던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이용주 : 오랜 시간 힘든 일을 겪다 보니 사람들이 조금 독해지는 경향도 있더라고요. MBC라는 공룡이 뇌가 오염되어서 민가를 짓밟는 상황이 된 것인데 거기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 분통이 터졌고 ‘우리가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가!’ 자포자기한 시간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항상 결론은 ‘포기할 수는 없다. 이대로 내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MBC가 달라질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달라질 기회가 왔을 때 뭔가를 할 수 있게 준비하자는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이렇게 말하는 저도 부끄러운 시기가 많았죠. 포기하기도 했고 무기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동료들이 힘을 합쳤고 특히 촛불을 드신 시민들이 계셔서 이 시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시민들께서 MBC를 믿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감시하고 계시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설령 다시 엄혹한 시기가 오더라도 ‘적폐 뉴스’를 하던 그 시절로 쉽게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다시 그렇게 되면 정말 미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봅니다.


이봉우 : 이용주 기자가 보시기에 MBC 뉴스를 쇄신하기 위해 가장 바꿔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이용주 : 포맷, 문법, 형식, 진행자, 조명, 앵글 등 모든 것들을 다 바꾼다고 해도 이른바 MBC 뉴스의 정상화, 복원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건 일선 기자들 뿐 아니라 보도국 수뇌, 회사 임원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저희는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역했던 언론이 그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백 번을 선언한들 결국 한 번의 실천, 연속된 실천만이 시청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정상화 방도인 것 같습니다. MBC 뉴스만이 했던 묵직한 의제 설정과 울림을 반복해서 보여드리고 시청자들도 ‘정권 바뀌어서 이제 좀 비판 좀하네’ 그런 반응이 아니라 ‘언론 자유와 공정방송에 우호적인 정권이 왔다고 해서 잠깐 좋은 보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바꾸겠다고 하더니 꾸준히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외에는 부차적인데 그런 요소들 중에서도 하나 꼽자면, 제 개인적으로는 최근 방송 뉴스가 이슈들을 잘게 쪼개서 백화점식 뉴스를 하고 있는데 이 점은 좀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봉우 : MBC가 정상화 시작 한 뒤 반 년 정도 흘렀는데,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이용주 :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변화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MBC 내부에서는 ‘잘 해보자, 힘내자’하는 동시에 ‘아 정말 어렵구나. 쉽지 않구나’ 하는 반응도 있습니다. 반 년 간 해보니까 하루아침에 우리가 돌아왔다고 MBC가 확 변화하는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벌써부터 많은 과제들에 연연해서는 안 되지만 추이를 보면 안타까운 점이 너무 많기도 합니다. 9년 간 망가지다보니 정말 할 일이 많은 것이죠. 그래서 요새는 으쌰으쌰하면서도 또 ‘아 이건 힘들다’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찾은 MBC인데, 한 번 해보자, 기본적으로는 이런 마음가짐입니다.

 

이봉우 : MBC 정상화와 함께 기자로 돌아오셨습니다. 6개월 만에 통일부 출입에서 국제팀으로 옮기기도 하셨죠. 앞으로의 각오 부탁드립니다.

 

이용주 : 최근 MBC가 정상화 이후에 인사이동이 활발합니다. 많은 분들이 얼마간의 공백이 다들 있거든요. 다들 돌아와서 오랜만에 일을 손에 잡고 회사를 일으켜보자고 뭔가 시작하는 것이다 보니 공백의 여파도 있습니다. 저희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공백이 있더라고요. 장시간 MBC 뉴스를 끊고, 시청 거부를 하셨던 그런 여파도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MBC 뉴스의 가치, 영향력, 친근감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나쁜 짓 해서 멀어진 친구에게 굳이 다시 연락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관계를 회복하기까지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잘 하겠다고 한다고 일순간에 예전처럼 복원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상화 했습니다. 우리 반성합니다’라고 해서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있고 회사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뉴스를 더 진정성 있게 만들고 더 쉽게 다가가며 관성적이지 않고 새로운 뉴스를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인사이동이 종종 있는 편입니다. 조직 개편도 최근에 있었고 많은 새로운 시도가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도 이동을 하게 됐는데, 앞으로 MBC와 함께 정말 좋은 보도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작성 이봉우 활동가, 사진 이병국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