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이 하는 모니터를 생각할 때면 활동가들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가끔 우연히 식당에서 틀어 놓은 종편의 수준 낮은 시사 프로그램만 봐도 짜증이 나는데, 매일 종편 등 문제 언론들을 시청하거나 읽으면서 문제점을 찾아 눈에 불을 켜야 하는 활동가들의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고될까 걱정이 됩니다. 사실 직접 모니터를 하지 않는 다른 민언련 활동가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매일 언론의 문제점을 접하고 신경 쓰느라 힘들 겁니다. 민언련 활동가들도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는 언제야 민언련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맞이할까 그런 덧없는 생각도 합니다. 정권이 바뀌고 공영방송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전체 언론 상황은 그리 좋아진 거 같지 않습니다.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더 가속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지 않았어도 지금 언론이 보이는 수준이라면 수용자들이 언론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기존 매체를 떠나는 수용자들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수업 시간에 언론의 문제점을 얘기하다보면 수업 내내 비판만 할 때도 많습니다. 혹시 내 수업을 듣고서 학생들이 언론은 가야 할 곳이 못 된다는 생각에 기자, PD의 꿈을 버리는 게 아닐까 우려도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억지로 좋은 점만 얘기할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우리 언론은 왜 이럴까요?
1987년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서 언론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스스로 권력이 됐습니다. 시민들이 언론이 필요하다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언론이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요. 시민들의 희생으로 획득한 자유를 그들의 권력을 구축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언론, 기득권 옹호에 앞장섰던 언론, 자신들의 탈세 등 범죄 행각을 언론 탄압이라고 강변했던 언론 등등. 그래서 시민들이 나섰습니다. 언론을 개혁하자고. 민언련도 함께 했지요. 기득권을 옹호하는 언론을 넘어 이미 기득권이 된 언론의 저항이 거셌고 결과는 개혁의 실패(?)였습니다. 그래도 이 시기는 언론이 중요했고, 언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개혁의 실패는 정권의 언론 장악으로 귀결됐습니다. 정권에 장악된 언론은 흉기가 됐습니다. 민언련이 2017년 발간한 2008-2017 왜곡·편파보도백서를 보면 역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에 언론이 얼마나 패악을 부렸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올바른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인들은 현장에서 배제되고, 부역하는 언론인들이 공영언론을 장악했습니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권력화된 언론들의 행태는 여전했고요. 게다가 종편이라는 새로운 변종이 등장했습니다. 방송 시사프로그램을 사랑방 잡담 수준으로 전락시켰지요. 그 정도 수준이면 시장의 논리로 보면 사라져야 할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일입니다.
정치적이고 정파적인 언론의 편파왜곡보도 행태만 문제인 것이 아니지요. 인터넷은 직접 민주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가진 기술적 수단이지만, 그 인터넷 환경에서 언론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클릭 수가 수입을 좌우하는 인터넷 생태계가 기사의 질을 좌우합니다. 제목에 끌려 클릭을 하면 어디선가 본 거 같은 기사이지요. 제목만 바꾼 기사입니다. 또 클릭하면 보도 자료를 베끼거나 제대로 된 내용이랄 게 없는 기사이지요. 취재가 없는 기사입니다. 뉴스 어뷰징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돈이 되니까요. 미디어 오늘 4월 19일 자 기사에 따르면 유령 기자까지 등장했다는 의혹이 있더군요. 네이버와 제휴를 해야 클릭 수가 느는데 네이버가 일정양 이상의 기사 생산을 제휴조건으로 한답니다. 그러니 한 기자가 하루 수십 건의 기사를 생산합니다. 기사 생산 기계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지요. 뉴스 어뷰징이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네이버가 뉴스 어뷰징을 막기 위해 기자 수 대비 기사량을 평가하겠다고 하자, 기자당 기사 수를 줄이기 위해 유령 기자가 등장한 겁니다.
정치적으로 편파 왜곡 보도를 하는 언론부터 취재 없이 기사를 양산하는 언론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저널리즘의 가치가 자리 잡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론이 진실에 이르는 창이 아니라 진실을 가로막는 장벽이 돼버렸습니다. 그럼 그럴 바에 없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론을 직접 소비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많은 경로를 통해 언론이 생산한 기사를 소비합니다. 신문구독률이 떨어지고 시청률이 낮아져도 우리들이 포털이나 SNS를 통해 이용하는 정보는 결국 언론이 생산한 기사입니다. 우리가 언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 가짜 뉴스의 폐해가 심각합니다. 의도적으로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세력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가짜뉴스를 단속하자고 합니다만 그게 가능할까요? 또 작전세력만이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본 대로 많은 언론이 ‘준’ 가짜뉴스를 생산합니다. 가짜뉴스의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가짜뉴스를 대체할 수 있는 조금이나마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접하는 것입니다. 좋은 언론, 좋은 저널리즘이 답입니다. 좋은 언론이 없는 거는 아니지요. 하지만 좋은 언론이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닙니다. 수용자들은 언론 전체를 불신하며 떠나고 있고, 언론은 더욱 열악해진 정글 같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 생산의 끊임없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언련은 힘들지만 언론 모니터를 통해 수용자들이 옥석을 가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몇 해 전부터는 좋은 보도 시상식도 진행하고 있지요. 민언련의 활동에 공감하는 회원 여러분은 좋은 언론 소비 운동도 함께 벌이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은 언론에 실망하고 언론을 떠나기보다는 좋은 언론을 찾아 그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더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주변에 좋은 기사,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읽거나 시청하기를 권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언론운동입니다.
글 김서중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