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좋은 보도상_

2019년 3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소외된 우리’편에 선 KBS, 이것이 수신료의 가치
등록 2019.04.22 10:55
조회 464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19년 ‘민언련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신설하고, 첫 수상작으로 KBS <거리의 만찬>을 선정했다.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은 기존의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의 후보인 방송사 탐사‧시사 프로그램 이외의, 모든 방송사 및 인터넷 언론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시민들과 방송 관계자가 추천 또는 공적서를 보낸 모든 작품이 심사 대상에 오른다.

 

최근 정치‧시사 이슈를 다양한 방식으로 녹여낸 영상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시사 프로그램’의 전통적 의미가 희미해졌고 그 중 사회적 의미가 큰 양질의 프로그램도 많다. 이에 따라 민언련은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에 기여한 공적이 있는 프로그램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기획했다.

 

2019년 3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심사 개요

수상작

KBS <거리의 만찬>

방송분 : 15~19회(3/1, 7, 15, 22, 29)

선정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엄재희(민언련 활동가),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이봉우(민언련 모니터팀장), 임동준(민언련 활동가), 정수영(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심사 대상

3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시민 또는 방송 관계자가 추천한 모든 프로그램

선정사유

KBS <거리의 만찬>은 ‘할 말 있는 당신과 함께 하는 시사 예능’이라는 기획 의도 아래 그간 언론이 외면하고 억압했던 우리 이웃들을 직접 만나 위로와 공감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13년 간 부당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투쟁한 KTX여승무원을 만났던 파일럿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진행자들 특유의 친근감 있는 진행과 재치로 ‘권력의 탄압’이라는 무거운 사연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당사자들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까지 일상의 언어로 이끌어냈다. 이는 그간 언론이 얼마나 권력에 편에 서서 부당하게 시민들을 억압했는지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통렬한 비판이 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언론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했던 홍가혜 씨‧반올림(삼성 반도체 공장 희생자 고 황유미 양 아버님 황상기 씨‧이종란 노무사)을 만난 16회 <언론에 당해봤어?>는 정권의 뜻에 따라 개인을 매장시키고 거대 자본의 스피커가 되어 산재 피해 노동자들을 마녀사냥했던 언론들을 정통으로 꼬집었다. 이외에도 3월에는 고 장자연 사건 증언자 윤지오 씨, 사법농단 최초 고발한 이탄희 판사 부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소방관들도 만나 국회와 언론이 말하는 ‘시사’를 넘어 우리와 당사자들이 서로 위로하며 나누는 ‘시사 토크’를 선보였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런 내용들을 보통 시민들의 감성과 언어로 풀어낸다는 것이 KBS <거리의 만찬>의 강점이다. 이로써 시민들은 권력의 억압이 바로 나의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공감할 수 있고, 언론 비평이 직관과 인간적 공감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 즉 시사와 비평이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이에 민언련은 KBS <거리의 만찬>을 2019년 3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에 선정했다.

 

KBS <거리의 만찬>은 지난해 7월 13일 파일럿으로 기획되어 2회를 방송한 후 11월 16일 정규 편성 첫 방송을 내보내 지금까지 총 19회가 방영됐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 타사에서는 모두 예능 프로그램과 인기 드라마를 앞세운 틈바구니에 KBS는 <거리의 만찬>으로 “시사‧예능 프로그램”을 내세우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시간대에서 시청률 3~5%를 오가며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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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는 당신과 함께”, ‘우리 편에 선 언론’이 나타났다

선전에는 이유가 있다. KBS는 기획 의도를 “진짜 이야기가 있는 거리”로 나가 “할말 있는 당신과 함께하는 시사예능 프로그램”으로 내세웠다. 시사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이례적으로 3명의 여성 진행자가 투입됐다는 점도 이목을 끌었다. 제작진의 이 선택은 탁월한 결과로 이어졌다. 방송인 박미선 씨, 김지윤 박사, 가수 이지혜 씨는 무거울 수 있는 대화를 각자의 개성과 특유의 재치로 유쾌하게 이끌고 있다. 출연자들 대부분은 사회와 권력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은 우리 이웃들인데, 이들에게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진행도 돋보인다. 이를 통해 KBS <거리의 만찬>은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탄압을 당했는지,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지, 우리 모두의 언어와 눈물로 풀어냈다. 단순한 슬픔이나 감동을 넘어 권력의 탄압과 사회의 부조리가 당장 나의 일일 수 있다는 자각, 억압 속에서도 유쾌한 일상을 모두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공감이 이 프로그램의 강점이다. 언론이 약자와 소외된 이웃 편에 설 때 스스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진실을 편안한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파일럿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3월에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권력에 종속된 언론’을 ‘밥 한 끼’하며 들여다보는 프로그램

KBS <거리의 만찬>은 지난 3월 총 5회차를 방송했다. 3월 이전까지 출연자들을 보면 하청 노동자, 희귀중증질환 아동의 가족과 의료진, 두발자유를 외치는 청소년들,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싸운 엄마들 등 모두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었는데, 3월에는 비교적 ‘유명인’들이 나왔다. 최초로 사법농단을 고발한 이탄희 판사 부부(17~18), 고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 윤지오 씨(19), 언론으로부터 인격 말살을 당했던 홍가혜 씨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하 반올림)(16), 목숨을 걸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만 마땅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소방관들(15)이 주인공이었다. 소방관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다른 매체로부터 그동안 조금이라도 조명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 역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핍박 받아온 지근거리의 이웃들이라는 점은 매한가지다.

 

특히 16회 <언론에 당해봤어?>편(3/8)이 돋보인다. 이 방송은 세월호 참사 당시 홍가혜 씨에게 숱한 모욕과 허위·왜곡을 퍼부었던 언론, 삼성 반도체 공장의 발암물질로 인해 가족을 잃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싸운 반올림을 마녀사냥했던 언론에 주목했다.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우리 언론이 얼마나 권력과 돈에 종속되어 있는지, 그 민낯을 보여줬다. 또한 살아있는 한 명 한 명의 이웃들을 밟고 올라 서서 장삿속과 권위주의에 취했던 언론에 통렬한 성찰을 요구했다. 보통 이런 주제는 어렵고 비장하기 마련이지만, KBS <거리의 만찬>답게 따끈한 국물과 해학, 눈물로 시청자들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우리와 진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

KBS <거리의만찬> 16회(3/8)는 박미선·이지혜·김지윤 3명의 진행자가 먼저 KBS 보도국을 탐방해 보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한 후 ‘언론 피해자’인 홍가혜 씨와 반올림(삼성 반도체 공장 사망 노동자 황유미 씨 아버님 황상기 씨, 이종란 노무사)을 만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진행자들은 보도국에서 늘 촌각을 다투면서도 치열한 보도 과정을 살펴봤고 “이분들(데스크) 결정이 100%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박미선),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취재 경쟁을 하다보면 무리수를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이지혜)는 소회를 밝혔다. <새삼 무겁게 느껴지는 언론의 책임>, <거대한 권력, 언론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자막과 함께 방송은 자연스럽게 홍가혜 씨·반올림과의 만남으로 옮겨갔다.

 

KBS <거리의 만찬>의 기본적인 컨셉은 ‘할 말 있는’ 우리 이웃과 밥 한 끼 함께 먹으면서 위로와 공감의 수다를 떠는 것이다. 어찌보면 평범한 컨셉이지만 여기서 ‘권력과 언론의 탄압’을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끌어내는 것은 KBS 제작진의 능력이다. 16회도 마찬가지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대응을 비판한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긴급수배에 5일만에 구속, 100일 넘게 수감 생활까지 했던 홍가혜 씨, 반도체 공장 발암물질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삼성과의 긴 싸움에서 많은 동료 노동자들을 잃었던 황상기 아버님·이종란 노무사의 안타까운 여정은 결코 슬프게만 그려지지 않았다. 특히 “(유미가) 먹으면 토했고 자주 피로했고 어지럽고 그랬어요. 백혈병 판정 받고 엄청 울었고 제가 죽는 줄 알았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나고 그래요”라며 딸의 생전을 떠올리면서도 시종 담담하고 웃는 표정을 유지한 황상기 아버님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진행자들의 모습은 진한 여운을 남겼다. 제작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인데 많이 지치셨을 것 같아 기운 내시라고 뜨끈한 국물, 보신하시라고 음식을 준비했다”며 ‘힐링 푸드’ 인서트 화면을 삽입해 무거운 분위기를 다시 환기시키는 장치도 마련했다.

 

무거운 언론 비평? 감동과 공감으로도 할 수 있다

KBS <거리의 만찬> 16회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언론을 겨냥한 것이었다. 진행자 박미선 씨는 특유의 친근한 톤과 어조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기사들을 꼽아보자 제안했고 홍가혜 씨와 황상기 아버님·이종란 노무사는 자연스럽게 마음 속 응어리를 꺼내보였다. 박미선 씨는 “반올림이 돈을 받았다는 기사도 있었다”며 몇몇 보도 사례를 먼저 제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보통 시사 프로그램에서 내세우는 시사 평론가 등 통상적 패널들의 비슷한 발언보다 훨씬 시청자에게 주는 인상이 강했다. 전문적인 인물,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인물이 아닌 옆집 이웃과 같은 박미선 씨가 ‘왜곡 보도’를 지목하는 순간, 시청자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기사들도 무언가 잘못됐을 수 있다’는 점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KBS <거리의 만찬>이 지닌 특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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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거리의 만찬>이 선보인 언론 비평은 달랐다

 

이어서 홍가혜 씨를 향해 ‘희대의 사기꾼’, ‘허언증 환자’ 등 모욕을 퍼부었던 기사의 제목들, 반올림에 ‘IS 끌어들이기 등 막장 집회’ 등 몰상식한 비방을 가한 보도 제목들이 화면에 나왔고 진행자들과 출연자 모두 이 기사를 함께 지켜봤다. 보도 비평 역시 여타 시사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박미선 씨는 “나도 죄송하다. 나도 가혜 씨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별 사람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홍가혜 씨에게 눈물 어린 사과를 건넸다. 또한 “언론은 한 쪽 편만 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삼성 반도체 산업재해와 같은 사건에도 가해자, 피해자 측 입장을 똑같이 실어주는 이른바 ‘기계적 중립’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때 분위기는 시종 진지하다기 보다는 슬펐다. 인간적 공감으로도 객관적인 언론 비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눈물‧웃음 주는 시사 프로그램, ‘저널리즘’의 가치를 실현하다

비록 보도 비평을 주된 주제로 삼은 회차는 16회뿐이었으나 이 방송에서 KBS <거리의 만찬>이 보여준 가능성은 충분히 귀감일 될만 하다. 권력에 의한 시민들의 고통, 권력의 편에 선 언론의 행태를 논하는 시사 프로그램이, 그 고통의 당사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출연진 섭외부터, 방송 구성, 편집까지 제작 상의 묘미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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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언론이 외면했던 ‘KTX여승무원 가족 투쟁 현장’ 보여준 KBS <거리의 만찬>

 

언론 비평이 들어간 16회차 외에도 KBS <거리의 만찬>이 추구하는 목표는 일관적이다. 그동안 미디어가 외면하거나 억압했던 우리의 이웃들을 직접 만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그 희로애락을 밥 한 끼 먹으면 공유한다는 것이다. 언뜻 쉬워보일 수 있는 이 기획 의도는 그 과정에서 권력의 치부를 이끌어내고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어려운 작업이다. 현재까지 KBS <거리의 만찬>은 이 시도를 훌륭히 해내고 있다. 2018년 7월 13일 파일럿 첫 회부터 이런 신선한 발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파일럿 1<그녀들은 용감했다>은 13년 째 거리에서 부당 해고에 맞서 싸운 KTX 여승무원과 만났는데 정규직 전환 약속을 휴지조각 취급하며 280여 명을 대량 해고 했던 코레일, 코레일에 맞서 13년 간 거리에서 싸운 승무원들의 사연이 소개됐다. 역시 유쾌함과 눈물 바다를 오가는 대화 속에서 파업 집회 현장에 나왔던 승무원들 어머니의 모습은 감동과 함께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어머니들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낯선 ‘파업 집회’에서 딸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투쟁의 구호를 외쳤고 “같은 기차 타는데 왜 우리 딸들만 비정규직이라고 내팽개치나. 딸한테 끝까지 하라고 했다. 지금 나오면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니 끝까지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언론에서 단 한 번도 조명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부당해고가 바로 나의 딸, 나의 가족, 내가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 그 일을 당하면 누구나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전파를 탔다. 많은 언론이 이러한 사실을 숨긴 채 투쟁 현장에 색깔론을 덧씌우고 있다. KBS <거리의 만찬>은 그 색깔론과 편파 보도를 지적하는 방식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젖혔다.

 

시민 편에서 시민과 수다 떠는 KBS, 앞으로도 계속해주길

분량의 한계상 다 소개할 수 없을 뿐 KBS <거리의 만찬>의 다른 회차들도 그간 우리 언론이 숨겨왔던 우리 이웃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언론이 시민들에게 다가가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한 층 더 성숙할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어 시청자로서는 축복이다.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고통을 함께 ‘수다’로 풀어내는 KBS <거리의 만찬>의 여정이 더 길게, 더 치열하게 이어질수록 위기에 빠졌다는 방송 매체의 미래에도 한 가지 가능성이 더 열리게 될 것이다.

 

<끝>

문의 이봉우 모니터팀장(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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