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일본대사관 지으라고 소녀상을 철거해야 하나
등록 2019.04.12 18:48
조회 1198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추진해 온 주한 일본대사관 신축을 포기했습니다. 지난 3월 초 일본대사관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의 구청 측에서 일본대사관 신축에 났던 허가를 취소한 것입니다.

 

종로구청의 취소 통보는 일방적이거나 무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 종로구청에서 건축 허가를 했음에도 일본대사관은 최근까지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종로구청이 공문을 수차례 보냈으나 반응이 없었고, 비로소 지난 2월 말 일본대사관에서 ‘본국의 사정으로 건축허가 취소를 받아들이겠다’고 해 종로구청이 취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안을 두고 언론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습니다. 일본대사관 건물 앞에 있는 소녀상 때문에 한일 관계가 악화돼 일본이 신축을 포기했다는 설명입니다. 조선일보는 수요 집회, 강제징용 판결, 강제징용 노동자상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나빠져 일본이 대사관도 안 짓는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요? 백보 양보해서 한일관계가 나빠져서 안짓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원인 제공자인 일본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요?

 

한일관계 악화의 중심에 소녀상이 있었다?

조선일보는 가장 먼저, 그리고 신문 중 유일하게 <일, 주한대사관 신축 4년 끌다 돌연 취소>(4/10 이동휘 정우영 기자)란 기사를 냈습니다. 조선일보는 일본대사관 신축이 어떻게 허가 취소됐는지 설명하다 이런 구구절절한 분석을 덧붙였습니다.

 

외교가에서는 악화된 한·일 관계가 새 대사관 신축에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온 ‘정의기억연대’는 2011년 12월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했다. 일본 정부는 “각국 정부는 외국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유지할 책임이 있다”는 ‘빈 협약’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녀상이 들어선 이후에도 2016년 초까지는 대사관 신축이 추진됐다. 한·일 양국 정부는 2015년 12월 일본이 정부 예산으로 재단을 세워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치유 사업을 하고, 한국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한다는 내용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정권 교체에 따라 상황은 달라졌다. 야당 대표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10억엔에 혼을 팔았다”고 비판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고, 2018년 11월 21일 정부는 한·일 합의로 설립됐던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이보다 20여일 전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반발했다.

 

시민단체들이 2017년부터 일본대사관 앞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하려고 하는 것도 일본 정부가 현재 위치에 대사관 신축을 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후략)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정부가 대사관을 안 지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원인으로 조선일보는 △평화의 소녀상 △화해‧치유재단 해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꼽았습니다. 이들은 한국 정부나 한국 사회 내에서 일본을 불편하게(?) 만든 사안일 것입니다. 일본의 시선에서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을 분석했을 때 꼽을 수 있는 이유들인 셈입니다. 일본 정부나 기업이 한국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던 일들은 이 기사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진1.JPG

△일본대사관 신축 취소가 소녀상 때문이라는 조선일보(4/10)

 

이어 연합뉴스가 <주한일본대사관 신축허가 취소…‘소녀상‧수요집회’ 영향 관측(종합)>(4/10 이정진 고현실 기자)을 냈습니다. 기사 초입에는 “과거사 문제 등을 둘러싼 한일관계의 냉각기가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한일본대사관 신축 사업이 최근 허가가 취소되는 등 표류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습니다. 이어 “대사관 터 앞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고, 매주 수요일 인근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리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대체 누구의 분석인지 인용된 발언도 없지만, 어쨌든 조선일보의 시각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 외에 뉴시스 <주한 일본대사관 신축 4년 끌다 무산…서울 종로 소녀상 앞>(4/10 강수윤 김지현 기자), 연합뉴스TV <주한일본대사관 신축허가 취소…“소녀상 영향”>(4/10 단신)이 거의 비슷한 분석을 담았습니다.

 

이후 통신사가 쓴 기사를 인터넷 매체 여기저기서 받아썼습니다. 그렇게 한국 정부와 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강경대응(?)하고 과거 역사에 연연(?)해 일본이 대사관을 못 짓는다는 분석이 기정사실화 됐습니다.

 

그럼 대사관 위해서 소녀상 없애란 말씀?

연합뉴스TV의 단신 외에 방송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이 문제를 다룬 TV조선은 <건축 허가 받은 지 4년 만에 신축 포기>(4/10 이채현 기자)에서 조선일보와 비슷한 ‘자체’ 분석을 내놨습니다.

 

“2016년 철거한 옛 일본 대사관 자리”가 “시세 1500억 원짜리 땅”임에도 “4년 간 놀고 있다”고 시작한 이 기사엔 취재원이 두 명 등장합니다. 종로구청 관계자와 일본 정부 관계자입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으면서 안 짓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소녀상에 대해) 한국 정부가 조치를 취하는 걸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곤 이채현 기자가 “일본 대사관은 현재 한 상업건물에 세들어있습니다. 소녀상도 집회도 없어, 대사관 직원들은 내심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반도 인근 주변 4강국 중 대사관 자체 건물이 없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라며 “악화된 한일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라고 마무리했습니다.

 

종합해보면, ‘일본 정부가 세금도 다 내면서 1500억 원 땅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 일본만 현재 대사관 건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이 문제라고 한다’는 게 이 기사를 통해 TV조선이 하고 싶은 말일 겁니다.

 

자, 그럼 일본 정부가 이렇게 돈을 낭비하면서까지 대사관을 못 짓고 있으니 그들이 싫어하는 소녀상을 철거해야 할까요? 종로구청과 서울시 등이 대사관 신축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 일본 정부 측에서 ‘본국 사정으로 착공 안 한다’고 통보한 사안인데 말입니다.

 

좋게 생각해서, 최근 나빠진 한일 관계에 대해 일본이 불만을 드러낸 것이니 한국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녀상과 수요 집회에만 탓을 돌리면, 30년 가까이 수요 집회를 이어오고 있는 시민들과 소녀상을 만들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고자 한 국민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 아닐까요? 한일 관계가 지금까지 왜 나빠졌나요? 기사에서 일본 정부의 입장만 대변한 언론들은 자신이 일본의 수석 대변인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2.JPG

△일본대사관 직원들은 소녀상도 집회도 없어 다른 건물에 세 들어 사는 데 만족한다고 전한 TV조선 <뉴스9>(4/10)

 

‘외교 관계’인 만큼 일본 입장 대변 말고 맥락 설명 필요해

최근 한일 관계가 썩 좋진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하자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며 반발했고(지난달 14일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했으나 성과 없이 끝남), 지난해 11월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시절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렸습니다(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설립허가를 취소, 일본 정부는 당일 한국 정부에 항의함).

 

그러다 지난해 12월엔 일본 정부에서 ‘한국 군함이 일본 초계기에 추적 레이더를 쏘았다’고 우리나라 정부에 항의해 ‘초계기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이에 우리 국방부는 ‘일본 초계기가 낮게 날며 위협 비행했다’며 단호하게 대응한 바 있고 이후 일본 초계기는 네 차례나 우리 해군 함정에 근접 비행함). 최근의 흐름과는 별개로 1992년부터 시작한 수요 집회와 2011년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일본은 늘 예민하게 반응해왔습니다.

 

외교 관계를 무 자르듯 뚝 자를 순 없지만,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의 원인을 소녀상과 수요 집회에서 찾는다면 언론들이 맥락을 파악 못한 것입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은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와 법적 배상 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외면한 데 큰 원인이 있고 심지어 초계기 갈등은 먼저 그 불씨를 제공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 측이 대사관 신축을 중단한 이유 중 소녀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사관 신축 중단이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사례’(TV조선)라거나 ‘한일 관계가 1954년 한일 국교 정상화 직후 상황으로 돌아갔다’(조선일보)라는 분석은 과도한 일본 정부 감싸기입니다.

 

일본대사관 신축, 특혜 의혹 받다가 사실상 2016년부터 중단

일본대사관 신축에 대해서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근에 신축 중단 결정이 난 것도 아닙니다. 일본대사관 신축은 2012년부터 추진됐습니다. 한겨레의 <주한 일본대사관 3배 크기로 신축 추진>(2012/6/23 임인택 노형석 박병수 기자)에 따르면 일본대사관은 2012년 5월 종로구청에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문화재청에 ‘현상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대사관이 ‘운현궁 지구단위계획 구역’에 포함돼 있어 건축물 최대 높이 30m의 제한을 받는데다, 경복궁으로부터 100m 이내에 있어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심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2012.06

일본대사관, 건물 신축 허가 신청

2012.07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

2012.12

일본대사관, 문화재청에 공문 보내 “부결시 일‧한 관계 악영향”

2013.05

한국 외교부, 문화재청에 공문 보내 “긍정적 재고 요청”

2013.06

일본대사관, 건물 신축 허가 재신청

2013.07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조건부 허가’

2015.03

종로구청, 건물 신축 허가

2016.01

일본대사관 부지서 조선 후기 문화재 발견․공사 중단

2016.04

일본대사관, 신축 공사 재개

2016.05

일본대사관, 신축 공사 흙덮기 진행

2019.02

일본대사관, 해당 부지서 신축 공사 포기

△주한 일본대사관 신축 공사 관련 일지 ⓒ민주언론시민연합

 

일본대사관 측은 기존의 23.45m였던 건물을 허물고 35.8m 높이의 새 대사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화재보호법이 정한 건물 최고 높이 14m를 두 배 넘게 초과했고, 이에 2012년 7월 문화재청은 경복궁의 역사‧문화 환경 훼손 우려를 이유로 이 계획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년 뒤, 문화재청이 갑자기 신축을 조건부 허가하면서 정부의 외압 의혹이 일었습니다. (당시 여러 기사가 나왔지만 가장 자세한) 머니투데이 <“경복궁 앞 일본대사관 신축, 위법‧외압 의혹”>(2013/10/14 박창욱 기자)에 따르면 2013년 5월 우리 외교부가 일본대사관 신축 허가에 ‘긍정적인 재고’를 요청하며 ‘결과를 5월안에 알려 달라’고 문화재청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어 일본대사관은 2013년 6월, 건물 높이를 3.4m 낮춰 32.4m짜리 건물을 짓겠다고 알렸고 7월 문화재청이 재심의한 결과,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공사가 진행되던 중, 2016년 1월 해당 부지에서 조선시대 후기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기초시설이 나와 공사가 중단됩니다. 연합뉴스TV의 <단독/일대사관 부지서 문화재 발견…정밀발굴조사 시행>(2016/1/11 김지선 기자)에서는 “원형 복원으로 결론 나면 그 자리에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된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문화재청은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고 유구의 성격도 불명확하다’고 판단 내렸고 일본대사관 측은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돌연 2016년 5월, 신축을 위해 터파기를 해놓았던 공간을 일본대사관 측이 흙으로 다시 메우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지하 공간을 파뒀음에도 기반 공사를 하지 않고 흙으로 다시 덮는 건 공사를 중단하는 것으로 보였는데요. 연합뉴스TV는 <단독/주한 일본대사관 신축공사 갑자기 흙덮기…왜?>(2016/5/19 팽재용 기자)에서 이 장면을 전하며 “외교가 일각에서는 대사관 맞은편의 소녀상이 공사 중단의 원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고 알렸습니다. 즉, 일본이 자주 소녀상과 집회를 문제 삼았으나 한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때부터 공사를 중단하고 대사관 부지를 아예 이전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일본대사관 신축 중단이 확실해지자 언론은 다시 이 문제를 끌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 악화가 영향을 끼쳤다느니, 소녀상과 집회 때문이라느니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본 정부 측의 주장만 전하면서 말입니다. 외교 관계는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됩니다. 언론은 시민들의 정당한 시위를 막지 마십시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4월 10일 언론사 보도(지면, 방송, 온라인 모두 포함)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 (02-392-0181) 정리 조선희 인턴

 

monitor_20190412_137.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