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캡틴 마블>과 페미니즘?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미디어 복합기업 중 하나인 디즈니 계열의 마블 스튜디오가 내놓은 야심작 <캡틴 마블>이 예상대로 개봉하자마자 관객 몰이에 질주하고 있다. 나도 마블의 소위 영웅 시리즈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모두 보는 매니아는 아니고 영화관에서건 TV에서건 기회가 되는 대로 본다.
마블 영화에서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의 활약은 불편하기도 하다. 내가 즐겨 보는 이유는 공상과학영화에 대한 관심이다. 전설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해서 ‘콘텍트’, ‘그래비티’, ‘아마겟돈’, ‘아바타’,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 ‘인터스텔라’, ‘마션’ 등의 연장에서다. 뒤늦게 우연히 <앤트맨과 와스프>를 본 후 마블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앤트맨>과 그 2편인 <앤트맨과 와스프>의 기본 설정은 양자역학이다. 앤트맨이 거인이 되었다가 개미만큼 작아지고, 미니에이처 건물과 자동차가 실물 크기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벌이는 흥미진진한 자동차 경주와 화려한 액션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1대 앤트맨 행크 핌 박사(마이클 더글라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핌 입자(물체를 자유자재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입자)를 개발했고, 그의 연구소에는 양자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계적 장치가 있다.
원자의 공간은 대부분 비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공간 압축에 의해 원자로 구성된 인간과 물질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현실화 될 수 없는 기발한 상상이지만 모르는 일이다. SF 영화의 상상이 현실화된 사례는 많다. 외계인의 침략을 가정한 마블의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앤트맨과 와스프>까지 마블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캡틴 마블>은 여자를 그것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캡틴 마블>은 작년부터 여성 주인공 홍보를 했고, 주인공을 맡은 브리 라슨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강조했다. 이게 일부 네티즌들에게 상당히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평점 테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최저 점수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날인 3월 8일 KBS 저녁 9시 뉴스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는데, 앵커가 기자에게 “그냥 오락영화 같은데 페미니즘 영화입니까?” 라는 질문도 했다.
세계의 경찰에서 지구를 지키는 영웅들의 나라, 미국의 이미지 조작
마블의 영화는 그냥 오락영화가 아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일관하다가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웠다. 둘 다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적 계산이 깔려 있다. 마블은 만화 시절부터 두 가지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었다. 미국 중심의 애국주의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다. 미국은 다인종국가로서 기본적으로 애국심을 강조하게 되어 있다. 빌딩들마다 1년 내내 국기를 걸어놓는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은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냉전을 치렀고, 베트남 전쟁에서 패하고 경제적 번영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마다 영웅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나온 게 마블 코믹스의 영웅 시리즈 만화였다. 영화 <람보>도 그런 배경에서 제작되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위엄을 상실해가는 지금도 영웅을 필요로 할는지 모른다. 영화에서나마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경찰, 나아가서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영웅들의 나라 미국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닝 주니어)는 엔지니어이자 군수산업 회사의 오너 경영자다. 그런 그가 평화의 수호자요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변신한다. 미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적을 필요로 하는 나라다. 레이건이 악의 제국이라고 했던 소련이 붕괴된 이후 부시는 북한과 이란, 이라크 세 나라를 악의 축이라고 했다. 엽기적인 침소봉대다. 그 명분으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 공격을 전제로 한 훈련을 해왔고, 북한은 핵 개발로 맞서왔다. 트럼프의 등장과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에 평화의 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미국 군수산업의 방해공작이 만만치 않다.
마블의 영화에 등장하는 기상천외의 무기들을 보는 것도 불편하다. 내용은 사실 별 거 아니다. 유치하다. 대개는 흥미진진한 눈요기로 볼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상상력은 여전히 흥미롭다. 스타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게릴라의 습격으로 부상을 당해 파편이 심장을 해치지 못하도록 가슴에 달고 다니는 아크원자로도 재미있는 발상이다. 전자기 유도법칙에 따라 자기장을 발생시킴으로써 파편 조각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다는 발상이다.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과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우리 영화계도 좀 분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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