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모니터_
성비 맞춘다며 남성 기자에게 ‘긴 머리 가발’ 씌운 JTBC
등록 2019.02.26 21:04
조회 3005

지난 12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내놓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이하 제작 안내서)에 대해 언론과 일부 정치인이 비판에 가세하면서 논란이 뜨겁습니다. 이 안내서의 본문은 성평등한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 방송 제작 현장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문제 삼은 부분은 해당 안내서의 부록으로 수록된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외모로 성품, 능력, 성적 매력을 유추하도록 기획하거나 ‘바람직한 외모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유도하지 말아 달라는 권고가 담겨 있습니다. 16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이 내용 중 일부 표현을 부각해 여가부 장관을 “여자 전두환”이라 몰아 세웠고 그 전까지는 이 ‘제작 안내서’에 관심이 없던 언론들도 일제히 비난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이들의 비판 지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정부가 아이돌 외모를 통제한다’는 것, 그리고 ‘정부가 방송 제작에 개입해 규제한다는 것’이죠. 둘 모두 사실과 다릅니다. ‘제작 안내서’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주기적으로 발간하던 권유 사항으로서 아무런 강제력이 없으며 방송 제작자들이 자율적으로 고려할 것을 독려하는 취지입니다. 논란을 빚는 표현 역시, ‘마른 몸매’, ‘선정적 의상’ 등 획일적 외모 기준을 종용하는 방송 풍토를 벗어나자는 ‘권유’일 뿐입니다.

 

국제 기구도 만드는 ‘성평등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

더욱이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여가부가 미디어 속 성평등에 관심을 두고 ‘권고 사항’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일이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UNESCO에서도 모든 형태의 미디어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미디어를 위한 젠더 감수성 지표 (Gender-Sensitive Indicators for Media)’를 작성하여 중국어, 영어, 불어 등 여러 나라 언어로 작성하여 배포하였으며, 올림픽 위원회(IOC)에서도 스포츠 중계를 위해 성차별 없는 방송을 위한 가이드라인 (Portrayal Guidelines for Gender Balanced Representation)’을 작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UNESCO와 IOC가 세계 미디어를 규제하려고 하느냐며 항의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지침은 유럽 회의 등 여타 수많은 국제기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일부 언론은 ‘외모 규제’라는 엉뚱한 프레임으로 공격하면서 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폄훼하고 있습니다.

 

종편, 일제히 “정부가 아이돌 외모 통제” 왜곡 프레임

‘문재인 정부가 외모를 규제한다’는 이 황당하면서도 자극적인 프레임에서 종편이 빠질 수 없습니다. 종편 방송사 역시 왜곡 대열에 가담했는데요. 하태경 의원이 16일 ‘전두환 발언’으로 촉발시킨 논란이 본격적으로 다뤄진 19일, 대다수의 종편 시사 프로그램이 이를 다뤘으며 타 매체의 왜곡 프레임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코너 제목만 봐도 <외모별 출연 지침>, <여가부 “비슷한 외모의 아이돌, 방송 출연 줄여라”> 등 여가부 ‘제작 안내서’를 강제적인 규제로 묘사하고 여가부가 ‘아이돌 출연’을 금지시킨 것처럼 표현한 과장이 대부분입니다.

 

 

대담‧코너 제목

방송 시간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

외모별 출연 지침(2/19)

4분 35초

MBN <아침&매일경제>

조선일보 <여가부 “비슷한 외모의 아이돌,

방송 출연 줄여라”>(인용 기사, 2/19)

3분 10초

JTBC <정치부회의>

국회 발제(2/19)

4분

채널A <돌직구쇼>

중앙일보 <“비슷한 외모 아이돌 출연 줄여라”…

역풍 맞은 여가부>(인용기사, 2/19)

11분

MBN <뉴스와이드>

다루지 않음

TV조선 <신통방통>

“출연 줄여라” 비슷한 외모 금지령?(2/19)

6분 43초

TV조선 <이것이 정치다>

다루지 않음

채널A <뉴스TOP10>

“국민 외모까지?” vs “경각심 차원”(2/19)

15분

채널A <정치데스크>

다루지 않음

△ 종편 시사프로그램 ‘여성가족부 성평등 방송 제작 안내서’ 관련 방송 제목 및 분량(2/19) Ⓒ민주언론시민연합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비판하는 채널A

종편 4사 모두 ‘정부가 아이돌 외모까지 통제하려 한다’는 허위 프레임으로 대동소이한 보도‧대담을 선보였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사례는 채널A <뉴스TOP10>(2/19)입니다. 채널A는 이 사안을 무려 15분이나 다루면서 황당한 수준의 언급들을 내놨습니다.

 

채널A <뉴스TOP10>(2/19)은 대담에 앞서 이슈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제작해 보여줬는데요. 진선미 장관의 얼굴에 <먹방, 유튜브, 성인물 이어 연예인 외모까지 규제?>라는 자막을 띄우고, 여가부 ‘제작 안내서’를 비춘 화면 위에는 <“비슷한 외모 아이돌 출연 자제”>라는 문구를 도장처럼 찍어냈습니다. 이어서 “여가부 장관은 여자 전두환”이라는 하태경 의원과 “편향된 시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데 앞장선다”라고 말한 장능인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모습을 보여주더니 진선미 장관 얼굴 위로 <“여자 전두환”>, <“외눈박이”>라는 문구를 크게 박았습니다. ‘외눈박이’라는 문구는 자유한국당 장능인 대변인이 “자신들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듣고, 같은 편만 눈에 보이는 ‘외눈박이’ 정책 집행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특정 정치인이 분명하게 발언한 것을 그대로 따옴표로 옮긴 것이니 문제없다고 판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장애를 차별하고 비하하는 부적절한 단어로, 언론이 부각해서 자막으로 쓸 표현은 아닙니다.

 

K-004.jpg

△ 채널A <뉴스TOP10>(2/19)의 제작 영상

 

채널A는 <문화검열 비판에 진화나선 여가부>, <“방송 현장 자율반영”>, <“통제 아냐”> 등 여가부 반론을 잠시 보여준 다시 <문정부의 연이은 인터넷 방송 규제>, <국민 보호인가? 통제인가?>라는 자막으로 영상을 마무리했습니다. 반론을 보장하는 척 했으나 일방적인 결론을 내린 ‘왜곡 보도’나 다름 아닙니다.

 

채널A, 막말‧비방의 향연

이어진 대담은 더 심각했습니다. 채널A 진행자, 출연자의 발언들은 과연 기본적인 취재와 조사는 하고 방송을 하는 것인지, 인권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의심케 합니다.

 

5분간 이어진 대담은 모조리 이런 주장으로 채워졌습니다. 가히 총체적 난국입니다. 성평등과 방송심의규정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 그 가치를 폄훼하는 수준입니다. 진행자 황순욱 앵커는 대담의 시작부터 ‘제작 안내서’를 ‘강력한 규제’라 규정했고 이현종 씨는 같은 이유로 ‘공무원들 숫자가 줄어야 한다’는 공무원 비하 발언까지 나아갔으며 평소 이현종, 조수진 씨와 다른 의견을 펼쳤던 양지열 변호사도 ‘젊은 사람들은 아이돌 생김새 다 구분한다’, ‘아이돌 그룹 해체해야 하냐’는 황당한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한심한 작태입니다. 특히 ‘외모의 다양성’를 반박하기 위해 ‘이목구비의 유사점’을 내세운 것은 채널A의 한계를 잘 보여줍니다.

 

진행자 황순욱 앵커

“최근 정부가 연이어 인터넷과 방송에 대한 강력한 규제방안을 내놓으면서”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 위원

“공무원들 절대 규제 안 풀어요. 왜냐, 그게 없으면 자기 존재 이유가 없으니까”

“공무원들이 빨리 좀 숫자가 줄어야겠다라는 그런 저는 생각도 가집니다”

조수진

동아일보 기자

“만에 하나 방송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뭔가가 잘못됐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곳에서 사후 제재를 받습니다. 그런데 여가부까지 나서서 이런 걸 한다? 이건 완장을 찬 거죠”

“걸그룹 하면 마른 체형에 긴 머리. 짧은 치마, 이런 걸로 되는데. 이것을 다양화하자, 이런 얘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더 놀랍습니다. 왜 여성가족부가 이런 일까지 나섰는지. 그리고 여성가족부라는 건 성평등을 고취하기 위한 그런 기관인데 이런 외모의 다양성이 성평등과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가”

“보건복지부가 작년에 비만을 방지하기 위해서 먹방을 규제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비만 인구를 줄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국가가 나서서 그렇다면 먹방을 규제해서 비만을 어떻게 떨어뜨릴 수 있을 거냐? 어디까지 국가가 개입할 거냐, 이거야말로 국가주의 아니냐 이런 비판이 나왔거든요. 지금 여성가족부도 똑같습니다”

“여성가족부, 여성이란 명칭이 들어갔지만 남녀의 양성 평등을 어떻게 하면 고취시킬까 이걸 궁리해야 해요. 지금 어떻게 보면 페미니즘 단체라든지 이런 단체들의 남성 혐오 운동이 조금 일어 나서 굉장히 좀 사회적으로 논란이 크거든요. 이런 것에 대해서 여성가족부가 관심을 가져야죠”

양지열 변호사

“(아이돌 생김새를)젊은 청소년들 내지는 아이돌 소비자층에서 다 구별하더라고요” “비슷하게 생긴 아이돌 그룹들 중에 몇몇 그룹은 해체해야 하나요?”

△ 채널A <뉴스TOP10>(2/19) '여성가족부 성평등 방송 제작 안내서‘ 관련 주요 발언 Ⓒ민주언론시민연합

 

‘미의 기준 획일성’ 지적에 ‘생김새 다 다르다’는 ‘동문서답’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제작 안내서’의 부록인 ‘가이드라인’의 42쪽 중 일부입니다.

‘부록 가이드라인’은 △01 외모 지상주의 가치를 전파하는 기획, 연출이나 표현 △02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제시하는 연출 및 표현 △03 외모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연출 및 표현을 재고하자고 제안하고 있으며 이 중 두 번째 권고 사항에서 4가지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으며 그 중 두 번째가 언론이 비난하고 있는 “2-2.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문제의 “ 음악방송 출연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라는 ‘사례’가 제시되어 있고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 비슷한 메이크업”의 획일성이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납니다”라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이를 두고 여가부가 언급한 ‘외모의 획일화’가 아이돌 개개인의 ‘이목구비 닮은꼴’을 의미한다며 ‘닮은꼴 출연 금지 규제’라 여기는 것은 오독입니다. 다 똑같이 생겼으니 출연을 자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대한 강박을 심어줄 수 있는 ‘획일적 미의 기준’을 방송에서 조장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2월 27일 첫 방송을 앞둔 TV조선 <미스트롯>의 예고편처럼 신체가 드러나는 빨간색 드레스를 천편일률적으로 입은 마른 몸매의 여성들이 미스코리아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카메라가 이들의 몸과 얼굴을 훑는 식의 방송을 하지말자는 의미이죠. ‘젊은 사람들은 아이돌 이목구비 다 구분한다’는 식의 주장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K-005.jpg

△ 언론이 집중 비난한 여가부의 권고 사항

 

‘걸그룹의 짧은 치마는 성평등과 관련 없다’는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

조수진 씨의 발언은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단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을 제재하는데 여가부까지 하겠다고 하니, 완장찬 것’이라는 주장은 시청자를 속이는 겁니다. 여가부는 심의‧제재 권한이 없고 ‘제작 안내서’에 심의를 한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외모의 다양성은 성평등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헛웃음을 치게 합니다. 아주 조악한 자기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조 씨는 여가부가 말한 외모의 다양성이 “걸그룹의 마른 체형에 긴 머리, 짧은 치마, 이런 걸로 되는데. 이것을 다양화하자, 이런 얘기”라고 했는데 앞서 살펴봤지만 여가부의 ‘제작 안내서’는 ‘걸그룹’이라 성별을 특정한 적도 없으며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 비슷한 메이크업”의 획일성이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납니다”고 서술했습니다. 여가부가 말한 적도 없는 ‘여성의 짧은 치마’를 채널A 스스로 ‘외모 다양성 대상’으로 규정한 셈인데 채널A 논리대로라면 오히려 더욱 여성가족부가 추구하는 성평등과 관련이 깊은 겁니다. 조 씨의 이 혼란스러운 발언을 차치하더라도 여가부가 ‘제작 안내서’에서 권고한 외모 다양성 추구는 명백히 성평등 이슈입니다. 방송이 남녀 모두에게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제시하거나 독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수준의 ‘성평등’입니다.

 

‘먹방 규제 가짜뉴스’까지 동원, 대체 누굴 위한 비방인가

조수진 씨가 여가부와 함께 ‘국가주의’로 매도한 ‘먹방 규제’도 거짓입니다.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에는 “비만을 조장하고 유발하는 문화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TV 방송이나 인터넷 방송 등을 포함한 폭식 조장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입니다. ‘먹방’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번잡한 주장을 토대로 조수진 씨는 ‘페미니즘 단체들이 남성 혐오 운동을 하고 있으니 여가부는 거기에나 신경쓰라’는 아주 과격한, 사실과도 다른 결론으로 나아갔습니다. 젠더 간 갈등 심화의 원인을 ‘페미니즘 단체’의 ‘남성 혐오’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부터 잘못되었습니다. 모든 페미니즘 단체가 ‘남성 혐오’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잘못이고, ‘남성 혐오’가 사회 논란을 시작한 것처럼 말한 것도 문제입니다. 여가부를 훈계할 시간에, 조수진 씨와 채널A 출연자들 스스로 사안을 더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JTBC도 ‘여가부 조롱’ 대열에 합류, 도 넘었다

놀랍게도 그간 TV조선‧채널A‧MBN 종편 3사와는 양질에서 다른 보도를 선보이던 JTBC까지 ‘여가부 조롱’에 가담했습니다. JTBC <정치부회의>(2/19)는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된 제작 안내서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정부를 조롱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양원보 기자는 먼저 다른 이슈와 함께 여가부 ‘제작 안내서’ 논란을 간략히 소개하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양원보 :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다 비슷하게 생겨가지고 외모 획일성 너무 심각하다’라는 그런 지적입니다, 이 책의 주장은. 외모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건데, 글쎄요, 그러든 말든 대중문화 소비자들이 알아서 판단한 문제인데 그거를 왜 정부가 하라 마라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JTBC는 채널A와 마찬가지로 ‘제작 안내서’의 일부 내용을 ‘정부가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죠. 그러나 ‘멤버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문구는 없고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JTBC는 이 내용을 ‘외모 규제’로 파악해 “왜 정부가 하라 마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도 비판했는데 ‘제작 안내서’는 ‘강제 규정’이 아닙니다.

 

여가부 제작 안내서는 ‘강제 규정’이 아니다

JTBC 양원보 기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양원보 : 당장 그리고 또 <정치부회의> 저희들한테도 걸리는 지침이 있습니다. 17페이지 한번 가보죠. 이거인데요.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 출연자, 성별로 균형 있게 대표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녀 비율 맞추라는 거죠, 이런 시사프로그램에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국장까지 4명이 남성이고 신 반장(신혜원 기자) 혼자 여성인데요. 4:1, 이건 뭐 극남초 아닙니까?

 양원보 기자가 ‘JTBC도 걸리는 지침’이라 한 것은 ‘제작 안내서’ 본문 중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실제 방송제작 현장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들>의 두 번째 항목으로 제시된 “남성과 여성 모두를 균형 있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의 내용입니다. 이 항목에서 고려할 사항으로는 첫째, “프로그램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구할 때는 성별 균형을 고려해야 합니다”라고 제시되었고 두 번째로 JTBC가 문제 삼은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의 인터뷰 대상, 초점보도 대상, 출연자 등이 성별로 균형있게 대표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는 권고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JTBC는 “남녀 비율 맞추라는 것”이라며 마치 강제 조항인 것처럼 묘사했으나 여가부의 ‘제작 안내서’는 시종일관 “고려해야 합니다”, “재고해야 합니다” 등 제작시의 참고 사항임을 명시하고 있고 이 대목에서도 “뉴스에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자, 시사토론이나 좌담회의 전문가 패널을 구성할 때 남녀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그것이 불가피한지 재고해 봅니다”라고 상술했습니다. ‘남녀 비율을 강제적으로 맞춰라’라는 규제가 아니라, ‘재고해보자’는 제안이죠.

 

남성 기자에 가발 씌워 “성비 맞췄다”는 JTBC

더 놀라운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양원보 기자가 ‘저희는 극남초’라고 말한 직후 느닷없이 긴 머리 가발을 쓴 고석승 기자가 화면에 등장한 겁니다.

 

K-006.jpg

△ 성비 맞춘다며 남성에게 가발 씌운 JTBC <정치부회의>(2/19)

 

점입가경으로 양원보 기자는 화면에 나타난 가발 쓴 고석승 기자를 가리켜 “글쎄요, 이건 제가 의도했던 건 이게 아닌데”, “이건 일단 저렇게 여장을 한번 시켜보기는 했는데, 록하는 사람 같고요”라고 평했고, “저렇게 해서 3:2로 얼추” 성비를 맞췄다고 말한 뒤, “네, 죄송합니다”라고 마무리했습니다. 이때 JTBC 기자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고석승 기자 사진에 분홍색 리본과 가발을 합성해 ‘여가부 규제대로 성비를 얼추 맞췄다’는 양원보 기자의 발언에 호응했습니다.

 

이는 여가부 ‘제작 안내서’를 향한 노골적인 조롱이자 비하입니다. 실제로 패널과 진행자 모두 남성이 대다수인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여성 전문과와 진행자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매우 오래 전부터 제기됐습니다. 따라서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성비를 재고해 보자’는 여가부 ‘제작 안내서’의 권유는 아주 상식적인 겁니다. JTBC는 정당한 문제제기를 그 어떤 진지함도 없이 오히려 가발을 동원해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JTBC가 ‘긴 머리 가발’과 사진에 합성된 ‘분홍색’ 리본으로 ‘남성을 여성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 대목은 ‘제작 안내서’의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입니다. JTBC가 여성의 외모적 특성에 얼마나 획일적인 편견과 기준을 지니고 있는지 그대로 노출했기 때문이죠.

 

왜곡된 신문 기사로 ‘허위 프레임’ 확대재생산한 종편 3사

TV조선‧채널A‧MBN의 조간 신문 프로그램에서도 똑같은 왜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TV조선 <신통방통>,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MBN <아침&매일경제>는 이미 과장과 왜곡으로 얼룩진 신문 보도를 다시 인용하여 ‘정부의 외모 규제’라는 허구적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했습니다.

 

TV조선 <신통방통>‧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중앙일보 <“비슷한 외모 아이돌 출연 줄여라”…역풍 맞은 여가부>(2/19)

TV조선 <신통방통>‧

MBN <아침&매일경제>

조선일보 <여가부 “비슷한 외모의 아이돌, 방송 출연 줄여라”>(2/19)

△ TV조선‧채널A‧MBN 신문 프로그램이 인용한 ‘여가부 방송 제작 안내서’ 관련 왜곡 보도(2/19)

 

종편 3사 모두 ‘비슷한 외모 아이돌 방송 출연 줄여라’라는 제목의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인용했는데 ‘제작 안내서’에는 ‘방송 출연 줄이라’라는 문구가 없습니다. ‘부록 가이드라인’ 역시 “미디어 산업과 제작 환경의 특성으로 인해 여기서 제시되는 모든 항목을 준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를 초래한 방송의 책임이 엄중하다는 점을 인지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줄 것을 권고합니다”라는 아주 상식적인 권유를 제시할 뿐입니다.

 

채널A “여가부 해체하라” “전두환도 사과했다” 막말

이렇게 왜곡된 프레임의 기사를 토대로 채널A <돌직구쇼> 출연자들은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진행자 김진 앵커 : 여가부가 음악방송 프로그램들한테 걸그룹 외모가 비슷할 경우 출연 제한하라는 지침을 내리는 건 살다 살다 처음 봤어요

(중략)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 : 여가부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데 차라리 저렇게 할 거면 그냥 부처를 해산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중략) 달동네 같은 데 가면 복지공무원들 일손 딸려서 힘든데 차라리 그런데 가서 도시락이나 나눠주고 하는 게 낫지

(중략)

김병민 경희대 겸임교수 : 갑자기 대한민국이 5공화국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5.18망언부터 시작해서. 전두환 전 대통령 얘기를 하게 되니 갑자기 떠오르는 배우가 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박용식 씨가 떠오르는데요. (중략)당시 신군부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랑 너무 닮았네라고 해서 출연 정지를 내립니다. 비슷한 외모 출연 금지의 시초를 올라가게 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용식 씨거든요. (중략)결국 방용식 씨가 나중에 정권이 교체되고 1991년에 연희동 자택으로 갑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불러다 몇 번이고 사과를 해요. ‘나는 진짜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없는 시행 착오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지나간 과거를 사과하는 마당입니다

 이는 진선미 장관을 ‘여자 전두환’으로 매도한 하태경 의원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막말입니다. 특히 김병민 씨는 여가부의 ‘제작 안내서’를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과 연예인을 탄압했던 전두환에 비유했으며 ‘전두환이 과거를 사과했으니 여가부도 사과해라’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앞서 살펴봤으나 여가부의 ‘제작 안내서’는 전두환처럼 출연 금지를 강제하기는커녕, 언론들 스스로 전혀 무관심했던 ‘권유 사항’이며 ‘성차별과 외모 지상주의에 유념하여 방송을 만들자’는 아주 상식적인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를 5‧18망언과 전두환에 비유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에 가깝습니다.

 

‘아이돌 외모 구분 가능’에 ‘실증 사례’까지 동원한 TV조선

MBN <아침&매일경제>(2/19)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하는가. 이 부분이 문제”, “이런 것까지 지침을 내리는 것은 문제”(이경환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등 ‘정부의 외모 개입‧규제’라는 주장이 만연했습니다.

TV조선 <신통방통>(2/19)에서도 사안을 파악하지 못한 게으름과 시청자 오해를 유도하는 비방이 이어졌습니다. 

임방글 변호사: 그 외모 획일화를 그러면 과연 누가 판단을 하느냐 예를 들어 아이돌 가수를 많이 가장 좋아하고 아이돌 가수를 보는 사람들은 어린 친구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은 모두 다 구별을 하거든요.

(중략)

하재근 평론가: 아이돌들이 저마다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데 아이돌의 외모 기준을 팬한테 맞춰야지 정부한테 맞춰야 하느냐 여가부가 실효성도 없는 탁상 행정을 내놔서 지금 이런 식으로 예산을 쓴다는 것 자체가 혈세를 낭비하는 것 아니냐 이런 주장들

(중략)

최병묵 TV조선 해설위원: 저런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 있잖아요. 유명 연예인들 중에서 일본 사람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중국 사람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잘 안 겹칩니다. 이거는 아주 실증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은 따로 있는 거예요. 다 구분하는 거예요

(중략)

임방글 : (방송사들이)굉장히 부담스럽죠. 왜냐하면 아무리 가이드라인 그냥 권고라고 하지만 여기에 어떻게 그냥 권고일 뿐 나는 신경 쓰지 않겠어, 라고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앞서 살펴본 왜곡이 그대로 반영된 이 대화에서 가장 현실과 동떨어진 대목은 임방글 씨가 주장입니다. 임 씨는 ‘방송사들이 여가부 권고를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죠. 이는 방송 제작현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발언입니다. 방송 제작진들은 여가부 등 정부기관의 권고는 물론, 방송기자협회 등 업계에서 만든 가이드라인, 심지어는 자사가 만든 가이드라인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미디어오늘 <공영방송 KBS ‘성평등’ 적극 다뤄야>(2018/10/8)서 황경아 경희대 언론정보학 박사는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발간했지만 지켜지지 않아 무용지물”이라고 토로하기도 했죠. 이렇게 여러 권고 사항이 철저히 무시되는 현실이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월 18~19일JTBC <정치부회의> TV조선 <이것이정치다>‧<보도본부핫라인>‧<신통방통> 채널A <김진의돌직구쇼>‧<정치데스크>‧<뉴스TOP10> MBN <아침&매일경제>‧<뉴스와이드>

 

<끝>

문의 이봉우 활동가(02-392-0181) 정리 정선화‧박철헌‧이정화 인턴

 

monitor_20190226_073.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