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조선일보, 언론을 참칭하지 말라이쯤 되면 조선일보에 거래가 아닌 기업 관련 기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는 지난 1월 28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박수환 뉴스컴 대표의 휴대전화 속 문자 파일 2만 9534건을 토대로 언론과 기업의 부적절한 공생 관계 실태를 보도했다. 박수환 대표는 2016년 8월 조선일보 주필이던 송희영과 대우해양조선 유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송 전 주필은 접대골프와 초호화 해외여행 등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뉴스타파 보도를 보면 수많은 언론의 사주와 언론인들이 박 대표를 통해 부적절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기업들과 유착해 기사를 거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언론사가 있다. 바로 조선일보다.
송희영 전 주필 포함 조선일보 기자 8인의 기사 거래 흔적
뉴스타파 보도 <‘1등 신문’ 조선일보의 기사 거래>(2019/2/1 https://newstapa.org/44051)에 따르면 송 전 주필을 비롯한 8인의 조선일보 기자와 박수환 대표 사이의 문자에서 기사거래 흔적이 발견됐다. 조선일보는 박수환 대표를 통해 GE(제너럴일렉트릭)에서 지목한 기고자를 전달받고, 한국형 전투기 사업 관련 기고를 ‘독자의견’으로 게재하는 등 관련 칼럼을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지면에 실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칼럼들을 지면에 실어준 이들은 조선경제아이 대표를 지낸 김영수 디지틀조선일보 대표와 조선일보 프리미엄뉴스 부장을 지낸 조선일보 윤영신 논설위원이다. 뉴스타파가 문자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평소 박수환 대표로부터 골프접대를 받는 등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영수 디지털조선일보 대표는 조선경제아이 대표 시절 기명칼럼을 통해 정부의 프랜차이즈 빵집 규제를 비판했는데, 해당 칼럼의 초안을 전달한 이는 파리바게트의 그룹사인 SPC를 고객사로 두고 있던 박수환 대표였다. 기자 기명칼럼의 배후에도 청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송희영 전 주필은 대우조선해양 등 박수환 대표의 고객사에 불리한 기사를 빼거나 기사 크기를 축소하는 조치를 했다는 문자와, 박수환 대표의 고객사인 오비맥주와 SPC 그룹의 경쟁사를 겨냥한 사설 게재에도 관여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미국행 항공권에 자녀 취업 청탁 의혹까지
조선일보 기자들은 박수환 대표와 박 대표의 고객사로부터 선물과 금품까지 받았는데, 특히 송의달 조선일보 편집국 선임기자의 경우 자녀까지 얽혀 청탁을 주고받은 정황이 짙은 상황이다.
우선 채용청탁 의혹이다. 뉴스타파 <고위 언론인의 채용 청탁>(2019/1/28 https://newstapa.org/44043)에 따르면 송 기자가 산업부장이던 시절 박수환 대표와 송 기자, 한국GM 황지나 부사장은 긴밀하게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그 중엔 송 기자 딸의 한국GM 인턴 채용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 한국GM은 2014년 11월 5~12일까지 인턴 서류를 접수 받았는데, 문자에 따르면 황 부사장은 원서 마감 9일이 지난 뒤 박 대표를 통해 송 기자 딸의 이력서를 요청했다. 또 박 대표는 한국GM 측에 “(송 기자 딸이) 내년(2015년) 3월부터 4개월 동안 인턴 하시겠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고, 실제 송 기자의 딸은 2015년 한국GM에 인턴으로 채용됐다고 한다. 당시 별도의 채용공고는 없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한국GM의 황지나 부사장은 “채용 청탁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며, 인사팀의 판단에 따라 인턴을 상시 채용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송 기자 또한 “한국 GM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황 부사장과 잘 알고 있었고, 그 전부터 딸의 인턴 문제를 얘기했다. 당연한 절차를 거쳐 (딸은) 인턴에 채용됐으며, 특혜 채용이란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없는 해명과 주장이다. 인사팀의 판단에 따라 인턴을 상시 채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대체 왜 인턴 지원자의 이력서를 한국GM의 부사장과 박수환 대표가 챙겼단 말인가. 더구나 보도에 따르면 송 기자는 황 부사장과 잘 아는 사이며 그 전부터 딸의 인턴 문제를 얘기했다고 한다. 유력 일간지의 산업부장이 취재 대상인 기업의 부사장에게 이전부터 딸의 인턴 문제를 얘기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유력 신문의 산업부장이 딸의 인턴 문제를 얘기할 때 그것이 취재원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못했다면 송 기자는 기자 윤리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해본 일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뉴스타파 보도 <조선일보 기자들이 받은 비행기 티켓, 에르메스, 그리고 전별금>(2019/1/29 https://newstapa.org/44044)에 따르면, 2015년 6월 SPC 그룹은 박수환 대표를 통해 송의달 조선일보 편집국 선임기자에게 송 기자와 딸의 영문이름과 생년월일, 미국여행 일정과 비행기 편명을 전달했다. 그런데 이 문자들이 오가기 두 달 전 조선일보엔 SPC 그룹에서 운영하는 파리바게트를 홍보하는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뉴스타파는 “기사 게재 이틀 전부터 SPC 그룹 김모 상무와 박수환 대표 사이 여러 차례 문자가 오갔다”며 “조선일보 측이 ‘싣기 어렵다’고 했지만, 김 상무의 부탁을 받은 송의달 당시 조선일보 산업부장이 기사 강행을 결정했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또한 SPC 그룹에서 송 기자 부녀의 미국행 항공권을 끊어준 직후인 그해 7월엔 파리파게트 프랑스 파리 현지 매장을 알리는 홍보기사가 다시 한 번 조선일보에 실렸다.
기자 윤리조차 모르는 조선일보 간부 기자들
송 기자 외에도 2014년 강경희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박수환 대표로부터 명품 H사의 스카프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박 대표는 강 기자에게 두 번 고가의 선물을 보냈는데, 강 기자는 한 번은 퀵서비스를 이용해 선물을 돌려보냈으며 경제부장으로 발령 났을 당시 보낸 선물은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강 기자는 “2016년 송희영 주필 사건이 터진 후 그 사실을 회사에 보고했다”며 “명품 스카프 선물을 받은 것이 대외적인 시각에서 보면 과도하다고 비판할 수 있겠는데, 그런 비판은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강 기자의 해명은 송희영 전 주필이 사실상 스폰서를 두고 부적절한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고가의 선물을 전달받은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다는 말에 다름없다. 또 명품 스카프를 선물 받은 건 대외적 시각에서 볼 때 과도하게 인식되는 게 아닌, 기자 윤리에 해당하는 문제다.
보도에 따르면 2014년 미국 연수를 앞두고 있던 박은주 당시 조선일보 문화부장도 박 대표로부터 전별금 명목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박 기자는 박수환 대표의 고객사가 개최하는 전시회의 소개 기사를 박 대표로부터 부탁받고 게재를 약속했다. 이후 박 기자는 기사가 나오자 박 대표에게 링크를 전달했다. 또한 박 대표의 고객사인 SPC에 불리한 기사를 삭제한 정황 또한 문자를 통해 드러난 상황이다.
놀라운 건 박수환 문자를 통해 기업체로부터 갖가지 향응과 접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난 이들 대부분이 부장급 이상 간부인데다 송 전 주필을 제외하면 모두 현직에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조선일보 사측은 문제의 간부 기자들에 대한 어떤 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조선일보 노조가 사측에 엄정한 조사와 함께 공식 징계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로서 최소한의 윤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조선일보 내에 남아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이 사안은 조선일보 내부의 징계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배임죄 의혹이 짙은 만큼 법원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검찰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검찰은 조선일보를 비롯해 박수환 대표를 사이에 두고 기업과 부적절하게 유착해 접대와 청탁을 주고받은 정황이 확인된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수사에 나서라!
마지막으로 조선일보에 요구한다. 전 주필을 비롯해 이렇게 많은 간부급 기자들이 오랜 시간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향응과 접대를 받고 그 대가로 기사를 거래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는 건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언론 윤리가 겨우 그 수준이라는 걸 방증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조선일보가 자정 능력이 있는 집단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더 이상 언론을 참칭하지 말고 폐간하라. <끝>
2월 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