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취지는 실종되고 부작용만 전한 연동형 비례제 보도지난 15일, 여야 5당이 내년 1월에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한다는 합의문을 냈습니다. 선거에서 ‘죽은 표’를 방지하고 시민들의 뜻이 국회를 통해 더 잘 실현되도록 하겠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간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요구해온 바입니다. 해당 합의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열흘 동안 단식을 하며 얻어낸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방송보도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부정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보도가 문제였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 마디로, 국회의원 선거 때 국민들에게 2당 중 하나를 고르게 하지 말고 다양한 정당들을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현행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전국을 250여개 지역구로 나눠 각 지역구에서 1등을 기록한 후보들을 국회에 입성시켰습니다. 이렇다보니 1등과 2등을 다투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외 다른 정당들은 지지도에 비해 적은 의석만을 가져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정의당을 지지자들은 지역구에서는 어차피 정의당을 당선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자유한국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아도 더불어민주당에 한 표를 던져야 했습니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을 2개 정당 속에 모조리 욱여넣는 데 제도가 일조해온 셈입니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국회의원 선거 때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정하게 됩니다. 지난 20대 총선 때의 정의당을 예시로 들면, 당시 정의당이 정당투표에서 7% 남짓의 지지를 얻었으니 국회의원 정원의 7%인 21명만큼은 의석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제도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얻은 의석수는 6석에 그칩니다. 물론 지지정당과 다른 정당 소속인 지역구 후보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투표하기도 하는 예외도 있겠지만, 정의당이 본래 가져갔어야 할 의석 15개분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이 훔쳐간 것이라 봐도 무방한 겁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같은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극복하고 의회를 정상화시키자는 취지를 갖습니다. 관련 내용을 잘 정리한 보도로는 JTBC <민주·한국당 손잡게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란?>(12/6 임소라 기자)가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제 = 의원 수 확대’ 프레임 굳히려는 TV조선과 채널A
하지만 TV조선과 채널A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보다는 그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의원 수 증대’에만 집중했습니다. 두 언론의 보도에서 ‘사표 방지’ 혹은 그와 취지를 같이 하는 표현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TV조선 <국회의원 적어도 30명은 늘어날 듯>(12/16 김보건 기자)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놓고 각 정당이 의원 정수를 늘리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보다는 국회의원이 몇 명 늘어날 지에 대해서만 보도한 것입니다.
게다가 TV조선은 앵커멘트에서부터 이 사안을 정쟁으로 해석했습니다. “선거제 개편에 따른 의원 정수 확대 폭을 놓고 전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소수 야 3당은 의원 정수를 60명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은 최대 30명 이상 늘릴 수 없다고 버티고 있습니다”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의 초점이 의원 수 증가에 따른 정치적 분쟁인 것처럼 호도했습니다. 리포트 내용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증가될 의원 숫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채널A도 마찬가지입니다. 채널A <의원수 증원... 반대 여론 넘을까>(12/16 김철웅 기자)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국회의원의 숫자를 늘리는 게 불가피한데 반대 여론을 뚫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자기 밥그릇 챙기기라는 국민들의 반대 여론부터 넘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이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시민 반감 조성하는 TV조선 <뉴스9>(12/16), 채널A <뉴스A>(12/16)
TV조선은 이어진 분석보도에서 의원 수 확대를 더 강조했습니다. 이어진 TV조선 <따져보니/의원 정수 왜 늘리나 봤더니>(12/16 강상구 기자)에서는 강상구 정치부장이 직접 나와 의원 정수를 늘리려는 각 당의 셈법을 정략적 차원에서 분석했습니다. 각 정당들이 지역구 의석을 최대한 줄이지 않으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360석을 주장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정치공학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르나 이 보도에서도 현행 선거구제의 문제점이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명분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외려 지금의 정치개혁 논의를 ‘의원 정수를 둘러싼 각 당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묘사했습니다.
△‘의원 정수’에만 초점 맞춘 TV조선 <뉴스9>(12/16)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 속에 의원 정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반드시 국회의원 숫자 증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12월 11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의원 수를 확대하는 대신 국회 예산을 동결하거나 심지어 세비를 반으로 줄이자는 논의까지 제안했습니다. 의원 수를 늘리는 대신 국민 세금이 더 들어갈 일은 없게 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위 두 언론의 보도에서는 이런 내용이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시민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해당 사안을 오직 정치권의 이권 다툼으로만 묘사했습니다. 시민들의 불신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언론이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있는 겁니다.
‘사표 방지’에 ‘세비 감축 방안’까지 함께 언급했어야
물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평소부터 비중 있게 다뤄온 곳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JTBC <1월까지 갈 길 급한 선거제 개편…여야 합의 6개항>(12/15 김나한 기자)에서는 “승자독식인데다 사표를 많이 만든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에 대해 비교적 잘 전달했습니다. “야3당은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대신 혜택은 줄이자는 방안을 내기도 했습니다”라며 의원 수 확대로 인한 세수 손실을 최소화할 대안이 나와 있다는 사실까지 전했습니다.
KBS와 MBC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권 이슈로 본격 등장한 지난 11월 말부터 분석보도를 내 왔습니다. KBS <최대 쟁점 연동형 비례대표제>(11/28 최광호 기자)에서는 “정당 지지율과 실제 의석수 사이 비례성이 지켜지지 않고, 이른바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짚습니다. MBC <야3당 “연동형 비례제가 민심.. 죽은 표 살리기”>(11/29 이동경 기자)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유권자가 당에 보낸 지지율에 정확히 비례하는 의석을 얻기 때문에 사표가 없어진다”고 명시했습니다.
시민들을 ‘정치 혐오’ 속에 남겨두지 말아야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국회의원들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외려 국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회 개혁의 첫 단계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구제 개편입니다. 거대 양당이 입법부를 틀어막은 채 국민 80%가 지지하는 ‘유치원 3법’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지금의 구도를 타파하자는 것입니다. 이 개혁 시도를 ‘의원 정수 늘리기’로 호도해 국회 개혁을 막으려는 언론들이 진의는 의심됩니다.
정치혐오는 결국 시민들의 무관심을 부추겨 사회를 약육강식의 생태계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만들 뿐입니다. 민주사회의 언론이라면 제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의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 시민들이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보도가 절실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2월 15일~17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YTN <뉴스나이트>(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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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임동준 활동가 (02-392-0181) 정리 박철헌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