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위원회_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보고서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국민에게 필요한 의제 설정한 EBS <빡치미>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생트집지난 8월 24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EBS 프로그램을 집중 비판했다. 김성태 의원은 “(EBS가) 지속적으로 정치편향 시사프로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정용기 의원은 “EBS 출연진을 보면 특정 정당 의원의 인기관리 프로그램 편성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성태 비례대표 의원은 10월 1일 EBS의 보도·시사·오락 프로그램 제작을 완전히 차단하는 ‘한국교육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EBS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국정감사 기간에도 같은 주장을 펼치며 지속적으로 EBS를 비판했다.
이런 EBS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EBS <대국민 청원 프로젝트 빡치미>(이하 빡치미)가 있었다. 국감에서도 윤상직 의원은 “<빡치미>는 시사 프로그램입니까, 정권 홍보 프로그램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주로 프로그램 출연진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나 정당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출연진 구성을 두고 정치권이 ‘정치적 편향성’ 운운하는 것은 방송법이 보장한 ‘편성의 독립과 제작 자율성’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공적 재원 구조가 취약한 EBS에 대해 예산 삭감을 거론하거나 방송 분야를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자유한국당이 아직도 ‘방송 장악’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주장이 난무하는 이 방송을 직접 모니터해보았다. 모니터는 방송 구성과 내용에서 실제로 정치적 편향성이 있었는지, 방송 내용은 유익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적 공론화 필요한 시의적절한 주제선정 돋보여
2018년 4월 24일부터 7월 17일까지 총 13회에 걸쳐 방송된 <빡치미>는 소제목 그대로 ‘대국민 청원 프로젝트’이다. EBS의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대신 화 내드립니다! 한국인을 빡치게 하는 13대 악행, 그 악행을 근절하기 위해 빡치미가 떴다. 극한 취재, 극한 체험, 사회 실험 퍼포먼스까지 당신의 깊은 화를 풀어 줄 <빡치미>만의 처방. 세상에 대한 빡침을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힘으로 빡치미가 이제 화를 좀 내보겠습니다”라는 취지가 실려 있다.
<빡치미>는 실제로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난제와 풀어야 할 숙제를 12개로 정리해서 방송했다. 1회부터 12회까지 △직장 내 갑질과 불공정 거래 △불법 주정차 및 주차 공간 문제 △1인 미디어 문화 및 이용실태 △대기오염 및 미세먼지 △산업재해와 하청노동자 △과로 및 과로사, 노동자 휴식권 △외모와 사회적 차별, 꾸밈노동 △음주범죄와 음주 감형 문제 △주거 빈곤과 청년임대주택 △불법 촬영과 유포, 리벤지포르노 △반려동물 학대와 동물유기 △직장 내 갑의 횡포와 갑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빡치미>가 방송에서 다룬 주제는 EBS 프로그램이 애초 설정했던 콘셉트에 걸맞게 실제로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일상에서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이었으며,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해법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었고 국회가 입법과 정책 보완으로 역할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빡치미>의 주제와 소재는 정치적 편향성을 논하기 이전에 방송이 적극적으로 다뤄야 마땅한 것이었다. 실제 방송법 6조 5항(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과 7항(방송은 사회교육기능을 신장하고, 유익한 생활정보를 확산ㆍ보급하며, 국민의 문화생활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하여야 한다)에 충실한 주제 설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회차 |
제목 |
주제 및 내용 |
1 |
갑질 공화국 대한민국 |
직장 내 갑질과 불공정 거래 |
2 |
주차전쟁 |
불법 주정차 및 주차 공간 문제 |
3 |
1인미디어 |
1인 미디어 문화 및 이용실태 |
4 |
미세먼지 |
대기오염 및 미세먼지 |
5 |
산재공화국, 대한민국 |
산업재해와 하청노동자 |
6 |
대한민국 과로잔혹사 |
과로 및 과로사, 노동자 휴식권 |
7 |
외모지상주의, 대한민국 |
외모와 사회적 차별, 꾸밈노동 |
8 |
술 취했으니 괜찮아?! |
음주범죄와 음주 감형 문제 |
9 |
주민VS청년, 청년임대주택 논란 |
주거 빈곤과 청년임대주택 |
10 |
당신도 몰래카메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불법 촬영과 유포, 리벤지포르노 |
11 |
동물학대 잔혹사 |
반려동물 학대와 동물유기 |
12 |
을의 반란 |
직장 내 갑의 횡포와 갑질 사례 |
13 |
특집 빡치미 스페셜 |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
△ EBS <빡치미>(1회~13회) 방송 주제 분석 ©민주언론시민연합
국회의 역할 강조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한 <빡치미>
자유한국당은 <빡치미>가 “정부와 여당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또 특정 정당에 유리한 방송 내용과 친정부 성향의 패널을 지적했다.
모니터 결과 총 12회의 방송 중 정치인이 출연한 방송은 6회였다. 그중에서 민주당 의원이 총 5회를 출연했다. 표창원 의원이 갑질, 불법주정차 편에, 박주민 의원이 산업재해와 과로사 편에, 한정애 의원이 동물학대 편에 출연한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도 산업재해와 과로사 편에 각각 출연했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9회 청년임대주택 편에 출연했다.
단순 수치만 놓고 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회나 참여한데 비해서 자유한국당 의원이 1회만 출연했으니 패널 선정에서 공정하지 못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빡치미>가 정권과 여당의 홍보 방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회차 |
주제 |
정치인 / 정당 |
비정치인 |
1 |
갑질 |
표창원 / 더불어민주당 |
박창진(대한항공 사무장) 안진걸(참여연대 사무장) |
2 |
불법주정차 |
표창원 / 더불어민주당 |
양정훈(인천서부소방서 소방관) 주중배(서울시 주차단속 요원) |
3 |
1인미디어 |
- |
조영신(SK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대도서관(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보현(학부모)/이도경(초등학생) |
4 |
미세먼지 |
- |
최열(환경재단 이사장) 최재광(서울동답초등학교 교장) 조현주(학부모) |
5 |
산업재해 |
박주민 / 더불어민주당 이정미 / 정의당 |
강동구(명예산업안전 감독관) 김영신(산업재해 피해자) 박혜영(노무사) |
6 |
과로(사) |
박주민 / 더불어민주당 이정미 / 정의당 |
양도수(IT업계 노동자) 이민상(7년차 택배기사) |
7 |
외모지상주의 |
- |
황재근(패션디자이너) 김지양(플러스사이즈 모델) 김현윤(노돌리 크리에이터) 이가현(20대 시민) |
8 |
음주범죄 |
- |
노영희(변호사) 조영진(강남서 논현1파출소 순경) 김광삼(39년차 택시기사) |
9 |
청년임대주택 |
김현아 / 자유한국당 |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이한솔(청년 주거 활동가) 박민영(시민) |
10 |
몰래카메라 |
- |
이수정(경기대 교수) 김여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이경우(서울 지하철경찰대 형사) |
11 |
동물학대 |
한정애 / 더불어민주당 |
전진경(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이용녀(유기견 전문가) 최문희(반려견 납치 피해자) |
12 |
갑질2 |
- |
안진걸(참여연대 사무장) 박혜영(노무사) 박창진(대한항공 사무장) |
△EBS <빡치미> 방송 스튜디오 출연 패널 정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실제 발송을 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다. <빡치미>에 출연한 국회의원은 소속 정당이 아니라 입법부의 대표성을 갖고 발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만약 여야 의원이 출연하여 공방이 주를 이루는 콘셉트이었다면 여야 구성을 보다 정교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송에는 정치인뿐 아니라 관련 주제의 피해자 및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다양하게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이 속에서 출연한 국회의원들은 자기가 속한 정당의 정책이나 법안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회 차원의 대안과 해법을 모색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행태는 ‘민생에는 여야와 좌우가 없다’고 강조한 자유한국당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현아 의원(비례대표) 역시 <빡치미> 9회에 출연해 소속 정당에 편향된 모습이 아니라 국회를 대표해 실력을 발휘했다.
오히려 <빡치미>는 일반 시민의 참여가 높은 특별함이 있었다. <빡치미>는 매회 주제와 내용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섭외했고 관련 당사자와 경험자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무엇보다 피해 시민의 작은 목소리를 직접 듣고 피해자 입장에서 현실적인 대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개선안을 찾으려 했다. 기존 방송이 보여주기 식에 머물고 피해자의 사연을 단순하게 방송용으로 활용한 것과 달리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빡치미>가 편향되고 불공정했다면 각종 사고와 차별의 피해자가 용기 있게 <빡치미>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병폐를 정조준한 시의적절한 주제
특히 <빡치미>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으로 손꼽히는 ‘갑질’ 문제를 1회와 12회에 걸쳐 두 차례나 다룬 점이 눈에 띄었다. <빡치미>는 다양한 직장 내외 갑질 문제를 추적해 갑질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을의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갑질로 피해를 본 여러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1회에 출연한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은 “을의 입장에서 자기주장과 권리를 당당하기 내세우기 힘든 구조”라고 강조했다.
<빡치미>는 개인의 인식 변화와 조직적 문화 개선 이외에도 근로기준법을 중심으로 현실의 법과 제도가 제대로 준수되는 것을 강조했다. 법의 사각지대는 입법적 보완으로 채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12회에 출연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장은 “(갑질이) 범죄가 되고, 산업재해가 되고, 사람이 잘못되면 죽는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권이 시민을 위한 갑질 근절에 얼마나 노력했고 또 효과를 보았는지 참고해야 할 지점이었다.
△갑질의 구조적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한 EBS <빡치미>(위 1회, 아래 12회)
‘윤창호법’보다 먼저 음주운전 처벌요건 강화를 제안하기도
<빡치미>는 사회적 공분이 크고 대중의 경각심이 높은 대형 사건의 맥을 짚기도 했다. ‘음주 범죄와 음주 감형 문제’를 꼬집은 8회와 이른바 ‘불법 촬영과 유포, 리벤지포르노’를 다룬 10회가 대표적이다.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처럼 매년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추세이며 음주로 인한 각종 사회적 사건의 피해는 사회적 재난에 이를 만큼 심각하다. <빡치미>는 윤창호법에 앞서 음주운전 처벌 요건 강화를 제안했고 주취로 인한 사건사고를 지금보다 더 무겁게 처리할 것을 강조했다. 음주에 대한 인식 전화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8회 방송에서 절주 캠페인에 참여한 한 시민은 “술잔은 가벼워도 처벌은 무겁게”라고 제안했다.
<빡치미>는 단순 범죄를 넘어 사회적 폭력 수준으로 심각해진 불법 영상물과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문제의 폐해도 놓치지 않았다. 10회에 출연한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세상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빡치미>는 하나의 산업 수준으로 커진 불법 영상물 유통 시장의 현실에 주목하고 행정기관과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공조와 사법부의 변화를 요구했다.
교육방송의 본분에도 충실한 <빡치미>
EBS의 주요 시청층인 청소년과 유아의 눈높이와 일상에 초점을 맞춘 주제도 돋보였다. 젊은 세대와 청소년층이 즐기는 ‘1인미디어’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3회와 교육현장에서 간과하는 ‘미세먼지의 위험’에 대해 지적한 4회가 주인공이다.
3회에서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1인 미디어와 콘텐츠를 학교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어떻게 접근하고 소비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패널로 출연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부모가 함께 1인 미디어 방송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령대에 맞는 콘텐츠 이용을 강조했다. <빡치미>는 청소년에 유해한 콘텐츠를 근절하기 위해 실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하는 방법 등을 설명하며 시청자 스스로가 문제적 콘텐츠를 판단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방법까지 소개했다.
4회에서는 미세먼지에 특히 민감하고 취약한 교육현장(초등학교)를 방문해 성인과 일터 위주의 기존 미세먼지 대책의 그늘을 꼬집었다. 방송에 출연한 최재광 서울 동답초등학교 교장은 현재의 교육환경에 대해 “학교는 공기 정화 시설이 부족하다”며 “아이들은 최악의 상황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시 체육 및 야외 교육 활동이 제한되는데 체육관이나 대체 시설이 없는 학교에선 대체 교육이 어려움을 강조했다. 이처럼 자유한국당의 일방적인 주장과 달리 <빡치미>는 교육방송의 본령에 충실한 내용과 필요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방송했다.
자유한국당의 비판은 합리적인 지적인가?
무엇보다 <빡치미>가 다룬 주제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였다. 이는 교육방송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며, 프로그램 편성과 구성, 내용에 있어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달리 정치색은 없었다. 일반 시민의 목소리와 불만에 주목했고 해결책과 대안 역시 당파성과 무관한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 부합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국민과 함께했다. <빡치미>는 매회 국민 청원으로 끝맺는다. 시민들은 조금씩 응답하고 있다. 이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움직일 시간이다. 머뭇거릴수록 세상은 다시 분노할 것이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4월 24일부터 2018년 7월 17일까지 EBS <빡치미>
* 위 모니터보고서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의 회원 모임인 방송모니터위원회에서 작성했습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방송 비평을 직접 해 보고 싶으신 분 △방송을 보고 답답해진 마음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은 분 △언론인 지망생 모두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에 관심 있는 분은 방송모니터위원회 담당 임동준 활동가(02-392-0181)에게 문의하세요.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02-392-0181) 정리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장성욱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