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시비걸기 ‘끝판왕’ 조선일보요즘 조선일보의 노동에 대한 걱정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보일러 고장 나도 밤새 떨어야하다니
지난주에 게임 산업의 불황이 ‘주 52시간제’ 탓이라던 조선일보가 이번에는 <1월부턴… 밤에 오들오들 떨어도 보일러 기사 못옵니다>(12/11, 성호철 기자)에서 ‘보일러 공포’를 부각했습니다. 주 52시간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어서 기업도 고객도 모두 걱정이라는 것인데요. 먼저 ‘계도 기간’이란 올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했어야 할 주 최대 52시간 노동시간 제한 위반에 대한 단속 및 처벌을 유예하는 시기입니다. 법을 지키려 해도 채용 여력과 시간이 부족한 사업장의 사정을 감안한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얼마나 사실과 다른 말로 호들갑을 떨었는지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인해 밤에는 보일러 기사가 못 온다는 조선일보 보도(12/11)
기사에 등장한 첫 번째 사례는 보일러 A사인데요. 조선일보는 이 보도에서 “A사는 본사에 100명 안팎의 전문 수리 인력과 전국 대리점·협력업체에 900여 인력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대리점과 협력업체는 개별 사업체로 파악하기 때문에 A사의 직원에 포함되지 않고요. 본사 직원 규모 100명 안팎이면, 내후년인 2020년 1월 1일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 적용됩니다. 따라서 “전문 인력 100여 명으로 밤과 주말까지 모두 대응하다가는 자칫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할 우려가 있어 아예 밤 수리는 안 하기로 했고 주말 수리도 최소화하고 있다”는 A사의 관계자의 인터뷰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기사 속에 등장하는 두 번째 사례인 “경상북도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B사”는 아예 사업장 규모를 말해주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사업체가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예전에는 직원들이 특근과 주말 근무에 매달리면 됐지만 현재는 방법이 없다"며 "일부 직원이 특근 수당 감소에 불만인 상황이라서 주문 거부한 사실을 쉬쉬하고 있다"는 B사 관계자 인터뷰를 담아줬습니다.
기사 속에 등장하는 세 번째 사례는 IT업체 C사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적시해야 할 사실은 사업장 규모임에도 이를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내년에 시작하는 프로젝트들은 애초 계약 단계부터 52시간 근무를 감안해 구축 기간을 현재보다 20% 정도 길게 잡고 있다"는 회사 관계자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네 번째 사례는 에어컨 설치 기사인데요. 조선일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장 내년 여름에는 에어컨 설치와 AS 대란도 우려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내년부터 AS 협력업체 직원을 정직원으로 직접 고용할 예정이어서 이 AS 기사들은 모두 52시간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에도 에어컨 설치나 AS는 고객 요청 후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걸렸는데 내년에는 1~2주일씩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서비스나 LG전자에 들어온 AS 직원들은 민주노총 산하에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새로 정직원이 되는 협력업체 직원들과 단체협약도 맺지 못한 상황"이라며 "법이 허용한 3개월 탄력근로제도 노조 측과 합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에어컨 설치와 AS대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주 52시간제’ 때문이 아니라 폭염 때문에 에어컨 설치가 늘었고, 그만큼 수리 물량도 늘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니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걱정이 많은 것은 바로 ‘민주노총 산하에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체협약은 새로 정직원이 되는 직원들과 대화하여 맺으면 될 일입니다. 법이 허용한 3개월 탄력근로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아직 정직원 전환도 안됐는데 노조 설립과 노조 설립 이후에 일어날 단체 협약을 걱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노조 혐오입니다.
최저임금이 올라서 완구·신발공장이 다 망한다는 걱정
조선일보는 다음날에는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인 신발·섬유·조선·기자재·자동차부품·완구 등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조선일보 <지자체서 선정한 우량 中企까지 폐업, 그 자리엔 창고가…>(12/12 김강한·오로라 기자)는 부산 사상구와 부산 금정구에 있는 폐업한 신발공장에 찾아가는데요. 여기서도 인과관계가 조금씩 뒤틀려 있습니다.
보도는 먼저 부산시 사상구에 있는 한 신발 제조업체 관계자가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대출이자를 갚기도 어려워졌다”면서 “10월부터 국내 공장을 닫고 베트남 공장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직원 160여 명을 권고사직 처리했다고도 합니다. 인건비 상승이 노동집약적 산업에 부담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표적인 신발제조업체인 태광실업을 필두로 하여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해외 이전을 한 것이 1990년대 초중반에 일어난 일입니다. 신발공정 해외이전에 인건비 상승과 채산성 악화의 원인을 댄 게 벌써 30년 가까이 되어가는 일입니다. 중앙일보 <고향 떠났다가 … 돌아오는 ‘신발 부산’>(2017/6/19)에 따르면, 그 사이에 베트남과 중국으로 떠났던 신발공장이 부산으로 돌아와 만들어진 곳이 부산 강서구 국제산업 물류단지 신발산업 집적화 단지입니다. 중국의 우대 정책이 축소된 반면 한국 정부의 유턴기업 지원이 이뤄진 게 촉매제였다고 합니다. 한국과 중국의 인건비 차이는 여전하지만, 물류비용과 생산성은 부산의 경쟁력이 훨씬 높고, 한국이 다양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관세가 중국보다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인데요. 그럼에도 다시 신발제조업체의 폐업을 한다면, 이것이 꼭 인건비 상승 때문일까요?
조선일보는 또한 부산시 금정구에 있는 W제화 공장을 지난 10월 한 조명업체가 사들인 이유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금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 따라오는 원인 분석 문장을 읽으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이 회사는 IMF 외환위기 전까지는 영업이익률 10%대를 기록했지만 최근 2~3년간은 적자를 보거나 겨우 적자를 면했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는 1997년 12월의 일입니다. 그전까지 영업이익률 10%를 기록한 회사가 ‘최근 2~3년간’ 적자를 보거나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는 수준이었다면 최저임금이 상승하기 전에도 영업이익률이 악화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결정적으로 ‘최저임금의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보기에는 최저임금이 실제로 오른 2018년 1월과 ‘최근 2~3년간’의 시점 차가 너무 큽니다. 따라서 이 사례를 최저임금 상승으로 영업이익률이 악화한 사례로 보는 것도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완구제조공장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 완구업체는 지난해까지 직원 23명을 고용했었지만 올해 직원 5명을 줄였다. 이 업체 대표는 “작년만 해도 직원 월급을 157만원을 줘야했지만 최저임금인상으로 내년부터는 2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면서 “거기에 야근 수당 150%를 추가로 줘야하기 때문에 일감이 몰리는 달에는 월 300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다른 수당 등이 제공되어 내년에 200만원을 지급하는지 모르겠지만, 내년도 최저임금은 8350원이기에 근로자 1명 이상인 모든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만근 시 받는 내년 월급은 200만원이 아니라 약 174만원이 됩니다. 무엇보다 야근 수당은 내년부터 갑자기 오른 게 아니라 원래에도 150%를 추가로 주게 되어있습니다. 이 업체 대표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야근수당에 적용되는 평균임금이 올랐음을 언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자는 이런 말을 그대로 받아쓸 것이 아니라 오해가 발생하지 않게 정확하게 적었어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의 소제목을 <최저임금 2차 쇼크/上/문닫는 중소기업들 속출>이라고 붙였습니다. [上]이 붙은 걸 보니 [下]편도 나올 계획인가 봅니다. 다음에는 아무리 최저임금 인상이 속상하더라도 최소한 정확한 인과관계만을 지적하기를 바랍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2월 11일~12일 조선일보 (지면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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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최영권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