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게임산업 불황도 52시간 노동․민주노총 탓이라는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또 주52시간제 탓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게임업계 불황 원인도 노동 정책만 포기하면 해결될 것처럼 말했습니다. 조선일보 <'게임'이 안됩니다>(12/7 강동철·임경업기자)는 게임업계가 불황이라는 현황을 말하고, 이 원인을 주52시간제·민주노총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한류 콘텐츠 수출의 대표 주자였던 게임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김정수 명지대 교수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김정수 명지대 교수(산업경영공학과)는 "해외 게임의 공세에 대기업 독과점 구조가 굳어지면서 중소 게임사들이 창의적 게임을 시장에 내놓기 어려워졌다"며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개발 속도까지 늦춰지면서 한국 게임 경쟁력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시 게임업계의 불황을 이야기합니다. 작년 모바일 게임 한국 신작이 줄어들고 외산 게임의 공세가 이어졌다고 걱정하는가 하면, 중소 게임업체들도 대기업이 장악한 유통망을 뚫지 못하고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합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할 만한 걱정입니다. 그런데 대뜸 <신작 부재, 외산 게임 득세, 52시간 근로제로 실적 악화 우려>라는 소제목을 붙인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와 게임 업계에 속속 등장한 노조도 게임 업계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다 넥슨, 스마일게이트에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연이어 설립되면서 신작 개발이 더 늦춰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트렌드 변화에 맞춰 적기에 출시하는 게 핵심 경쟁력"이라면서 "게임 업체들이 올 한 해 주 52시간 근무 체제 도입에 대응하느라 신작 개발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게임산업이 어려운 이유를 나열하던 조선일보가 결론에서 ‘주52시간제’ 탓을 한 것인데요. 그야말로 기승전‘주52시간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임 업계가 주52시간제에 발맞춰 준비해온 건 사실일지 모르나 이 때문에 게임 산업의 위기가 도래했는지 단정하기 힘듭니다.
특히 아직 주52시간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인데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개발 속도까지 늦춰지면서 한국 게임 경쟁력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라는 진단은 기가 찰 수준입니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에다 넥슨, 스마일게이트에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연이어 설립되면서 신작 개발이 더 늦춰질 우려가 크다는 것”은 얼마나 더 황당한지요.
주 52시간 탓하기 이전에 과로사 이어졌던 게임 산업 노동 현실을 짚었어야
‘주52시간 근로제’는 일주일 최대 노동 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정한 제도로, OECD 국가 중에 멕시코 다음으로 일 많이 하는 대한민국이 과로 사회에서 탈피해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사회가 돼보자고 도입한 제도입니다. 기존에 과로하던 사람들의 일이 줄면 업무 상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기존 인력에게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임금 여력으로 추가적인 고용 창출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지난 2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고용노동부는 일주일을 5일로 보아 주말에 일하는 휴일 근로 16시간을 포함해 주 최대 68시간 노동이 가능했습니다.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노동시간에 대한 법적 제약을 받지 않던 26종 중 21종도 제외됐습니다. 남은 5종은 운송업 4종과 보건업 1종입니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올해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기에는 준비가 덜됐다는 이유로 노동시간 위반에 관해 단속과 처벌을 유예해왔습니다. 물론, 게임업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게다가 게임 산업의 살인적 노동 강도는 타 언론을 통해서 지적된 바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구로의 등대’ 넷마블의 노동착취 관행에 대해 3회에 걸쳐 자세히 보도한 바 있습니다. <게임산업 노동자 잔혹사/(1)“밤 10시 퇴근은 반차, 12시가 칼퇴, 새벽 2시 넘어야 잔업”>(2017/02/06 이효상 기자) 이 보도로 연속된 야근을 일삼는 ‘크런치 모드’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작년 3월부터 3개월 간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95%의 게임회사가 노동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과로사한 넷마블 노동자에 대한 산업재해보험 적용은 작년 8월에야 처음으로 인정됐습니다. 이후 대기업 게임사의 노동환경은 나아졌다고 하나 90%의 게임 노동자가 일하는 중소기업의 노동환경 개선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정부가 위법 사실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동안 게임업계가 노동착취가 용인된 건 ‘그렇게 해도 됐기’ 때문입니다.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하는 등 게임업계의 악질적 관행을 문제 삼기는커녕 52시간제 때문에 게임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을 내놓은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게임업계의 부진 원인은 중국 판로 차단
한편, 게임업계들은 3분기 실적 부진 원인에 관한 원인에 대해 대부분 신작 부재와 중국 판로 차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중국 시장(약 37조원)은 우리나라(약 10조원)보다 3배나 크며,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입니다. 다음은 머니투데이 <韓 게임 '반등' 이끌 3가지 변수… '신작·해외·콘솔'>(11/13 신진호 기자)기사 중 일부입니다.
3분기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신작 부재와 중국 판로 차단이다. 엔씨는 지난해 11월 공개한 신작 4종 중 단 1종도 출시하지 못했다. 넷마블의 최고 기대작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이하 블소 레볼루션)은 상반기 중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출시일이 오는 12월 6일로 밀렸다.
한국과 중국 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이 봉합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게임사들의 중국 진출 통로는 여전히 막힌 상태다. 판호(게임유통 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중국 중앙선전부는 3월부터 중국 게임사들에 대한 신작 판호조차 내주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엔씨의 '리니지M',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 펄어비스 '검은사막' 등 국내 흥행작들의 중국 진출이 막혔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8일 컨콜에서 "중국 시장이 아직까지 열리지 않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중국 정부 당국의 출시 불허에 게임업계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화돼 있어 우회로를 모색해볼 수 있지만 강력한 국가주의를 앞세운 중국에 업계가 대처할 방안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업계 현실을 외면하고 게임업계 불황의 원인으로 시행되지도 않은 주52시간제와 민주노총을 문제 삼은 것은 부적절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2월 7일 조선일보 (지면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최영권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