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경사노위 출범에 부쳐

사용자 없는 노동자의 시대 
김영훈(정의당 ‘노동이 당당한 나라’본부장) 
등록 2018.11.26 15:23
조회 489

2013년 고등학생이던 A군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음식 배달 알바를 했다. 그가 취업한 곳은 음식점이 아니라 배달앱을 통해 가맹된 음식점의 주문을 받아 A군과 같은 배달 노동자에게 연결시켜 주는 배달대행업체였고 배달에 사용하는 오토바이는 친형으로부터 빌렸다. 

 

노동자는 있는데 사용자는 없다
근무 장소와 노동시간은 정해진 바 없이 배달대행업체로부터 ‘콜’이 뜨면 다른 배달노동자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알아서’ 달려야 했다. 2013년 11월 A군은 배달 업무 수행 중 무단 횡단하던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 산재보상을 했다. 그런데 배달대행업체는 자신이 A군의 산재보험료를 부담해야 할 사용자가 아니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에서는 A군이 배달대행업체에 ‘종속된’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와 같은 개인사업자로 보아 노동자가 아님으로 산재보상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일을 했는데 노동자가 아니라면 대체 A군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유지해 온 전통적인 고용관계는 토지와 기계, 자본 등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A군 경우를 대비해 보면 배달대행업체는 A군과 구체적인 근로계약은 체결한 적이 없고, 주문에 대한 정보만 모두에게 공개했다고 주장한다. 음식점으로부터 받은 수수료가 임금이니 A군의 사용자는 음식점인가? 배달을 위한 주된 생산수단인 스마트폰과 오토바이는 A군 소유이거나 빌려온 것임으로 A군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노동자인 셈이다. 반대로 배달대행업체는 음식점을 손님들을 소개해 주고 대금 결제라는 ‘노동’을 음식점에 제공한 것인가.   

 

노동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제도
최근 택시사업의 노사가 한 목소리로 투쟁을 전개하는 상대는 우버나 카카오택시와 같은 공유경제기업이다. 자본주의 초기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뉴욕의 마주와 마부들이 공동투쟁을 벌였던 것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자동차를 한 대도 소유하지 않은 소프트개발업체 우버의 기업가치는 자동차 생산대수로 세계5위권인 현대기아차 기업 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70조원에 달한다.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도 세계적인 호텔업계 수익률을 이미 앞지르고 있다. 자본 없는 자본가로 인해 사용자 없는 노동자가 출현하고 있다. 세계2차 대전 이후 계급타협 산물인 유럽 복지국가모델은 일자리와 사회복지제도를 연계시키고 국가와 기업, 그리고 해당 노동자가 각각 이를 분담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기술발전에 따라 급증하고 있는 플랫폼노동자들은 전통적인 고용관계로 해석이 어려운 새로운 생산양식에 기초하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종속성이 사라진 이들은 사회복지제도와의 관계도 끊어진 채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웃소싱이나 외주화 등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공세가 노동조합 보호 밖에 존재하는 노동자를 통한 노동시장 이중화전략과 조직노동운동 고립화로 귀결됐다면 기술발전과 맞물려 설립되는 ‘그림자 기업(shadow corporation)은 아예 ‘노동법’ 밖의 노동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다행히 최근 대법원은 A군은 “한국표준직업분류 상 음식배달원이 아니라 택배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여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산재보상 대상이라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로 어렵게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산재보험의 일부를 보호받을 뿐 나머지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으며 무엇보다 현행법으로는 노동조합 결성도 불가하다.

 

모든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기업별노조 중심의 기업별 교섭과 투쟁 결과 노동3권은 노동자가 기업 내에 존재할 때만 고용과 임금, 복지를 보장받는 기업 내 노동권으로 축소시켰고, 오늘날 어떤 기업에 속하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2중 국민, 기업국가로의 귀결이었다. 노동운동이 기업국가를 극복하는 유력한 방안은 공장 밖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하는 산별투쟁과 교섭, 노동법 밖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사회연대적 투쟁과 교섭이다.

 

지난 22일 노사정위를 대체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했다. 모든 언론이 민주노총 불참을 비판하는 기사와 문재인 대통령의 동참 ‘호소’가 주요 지면을 채웠다. 그래서 묻는다. “노동자와 노동단체는 엄격히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노동자 개인이 노동단체와 분리된 채 어떤 방식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가. 사용자 없는 노동자 시대 사회적 대화의 핵심의제는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보장이다.  

 

*시시비비는?
<시시비비>는 신문, 방송, 포털, SNS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의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