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_여는 글
‘변희재’도 ‘에드가 웰치’도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요?
‘피자 게이트’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가짜뉴스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맞붙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는 그야말로 기승을 부렸습니다. 특히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클린턴과 측근들이 소아성매매에 연루되었다’는 가짜뉴스가 퍼져나가면서 클린턴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해 10월 익명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처음 등장한 이 가짜뉴스는 몇 가지 사실을 짜깁기 하고 근거 없는 억측을 덧붙인 것이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짜뉴스는 급속하게 퍼져나갔습니다. 급기야 클린턴 캠프의 선거본부장 존 포데스타가 피자가게 ‘카밋 핑퐁’ 사장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소아성애자들 사이의 암호라는 주장으로 부풀려집니다. 피자는 ‘소녀’를, 핫도그는 ‘소년’을 의미한다는 식이었습니다. 또 피자가게 ‘카밋 핑퐁’ 지하실에 어린이들이 감금되어 있고 소아성매매가 이뤄진다는 가짜뉴스가 퍼졌습니다.
에드가 웰치는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직접 조사하고 지하실에 갇힌 어린이들을 구하겠다는 ‘선의’를 품고 피자가게에 난입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소아성매매를 확인할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고 가게에 지하실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제 발로 걸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웃픈’ 사건을 겪고도 여전히 ‘클린턴은 소아성애자’라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하기야 남의 나라 얘기를 할 것도 없습니다. 얼마 전 극우인사 변희재 씨가 구속됐습니다.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JTBC와 손석희 사장의 조작”이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려 JTBC와 손 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입니다. 변 씨는 구속 직전까지도 이른바 태블릿 조작설을 굽히지 않았고, 그의 지지자들은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변 씨보다 앞서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NLL을 포기했다”는 등의 가짜뉴스를 퍼뜨린 혐의로 1심에서 8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구청장직을 잃게 되는 형량이지만 신 씨는 항소심을 이어가면서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끝까지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퍼뜨린 가짜뉴스를 여전히 믿는 사람들은 “박근혜 석방”, “손석희 구속”을 외치고 “문제인은 종북좌파”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목격했습니다. 지금도 남북정상회담이나 지방선거 같은 새로운 이슈를 소재로 가짜뉴스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4.27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타고 온 벤츠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한 것’이라거나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석방을 결정했는데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연기됐다’, ‘1980년에 중학생이던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가 5.18 유공자로 인정받았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떠돌아다닙니다.
한편 지난 5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전후로 TV조선도 가짜뉴스 뺨치는 대형 오보를 냈습니다. TV조선은 북한이 해외 기자단에게 취재비로 일인당 1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보도했지만 다른 언론사들의 취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며칠 뒤 TV조선은 ‘풍계리 갱도를 폭파한 것이 아니라 연막탄을 피웠다’는 온라인 속보를 냈다가 공식사과 하기도 했습니다.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심각한 오보가 맞습니다. 하지만 거대 언론사들의 오보는 다른 언론사나 시민들로부터 일상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습니다. 오보가 드러나면 해당 언론사는 신뢰와 위신에 상처를 입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도적으로 추궁당합니다. 실제로 TV조선 오보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른바 ‘1만 달러 요구’ 보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인터넷과 SNS를 기반으로 하는 출처불명의 가짜뉴스들은 한번 만들어져 퍼지기 시작하면 바로잡기가 어렵고 책임자들을 찾아내 법적 책임을 묻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게 됩니다. 시민언론운동은 가짜뉴스로부터 민주주의와 시민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민언련은 거대족벌신문, 지상파방송과 종편의 왜곡편파보도를 주로 감시 비판해왔습니다. 우리의 언론감시 활동이 많은 성과를 남겼다고 자부하고, 앞으로도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에서 새로운 과제를 찾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가짜뉴스는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가짜뉴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난제 중 난제입니다. 세계 각국이 가짜뉴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구글 같은 거대 플랫폼들은 가짜뉴스 확산에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실상 사태를 방치하는 듯 보입니다.
지난해 영국 BBC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관련된 가짜뉴스를 퍼뜨린 누리집 도메인을 추적했더니 마케도니아의 한 시골마을에서 100개가 넘는 누리집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운영자들은 대부분 10대였고 가짜뉴스의 목적은 광고수입이었습니다. 트럼프에게 유리한 가짜뉴스가 조회 수가 높아서 대부분 클린턴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가짜뉴스, 이윤동기와 결합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가짜뉴스…. 점점 진화하는 가짜뉴스로부터 우리사회는 얼마나 안전할까요? 당장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도 토론을 시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시민운동은 가짜뉴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가짜뉴스의 법적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지, SNS나 포털 같은 플랫폼에 요구할 것은 무엇인지 등등. 민언련 회원들과 토론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