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도_
대한민국 경제 미래 위해서는 경제지 자신부터 달라져야1. 경제지 선거 보도 모니터링의 의의
경제지들의 ‘경제’에 대한 보도 논조와 사안에 대한 시각의 기조는 평상시와 선거 때에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한 사회의 현실과 과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분출하는 선거국면 때는 그 같은 논조와 시각이 더욱 집중적으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평상시 보도의 연속이면서도 더욱 극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 관련 보도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은 경제지의 경제 관련 사안에 대한 시각의 타당성을 점검하는 것에서 이중의 효과가 있다. 즉 경제지의 선거 보도에 대한 모니터링과 함께 경제지의 경제 및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지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경제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거의 이뤄지지 못한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경제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인력이나 시간 등의 여건에서 열악한 언론감시 주체들이 종합지에 대한 모니터링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했던 사정이 있다. 또 경제라는 ‘전문’적인 매체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잖았다. 여기에는 경제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즉 경제지 기사는 ‘경제 전문’ 매체에서 ‘경제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비정치적인 보도라는 ‘오해’가 겹쳐 있다.
한국의 경제지들은 경제와 관련된 정보, 경제 주체들의 동향을 제공하며 세계경제의 흐름을 분석해주고, 경제운용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과제에 대해 유용한 기사와 논설들을 싣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폐해와 부작용도 매우 크다. 경제지는 ‘경제’에 대한 인식과 경제 관련 의제 설정, 경제 관련 용어 사용 등에서 여론을 왜곡시키고 독자들을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경제지에 넘쳐나는, 마치 공식과도 같은 현실 인식과 표현들은 경제의 도우미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의 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 같은 왜곡과 호도는 선거 관련 보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 ‘경제’에 대한 개념의 문제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협소한 인식, ‘경제’를 신성시하는 것부터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의도적인 것이든 무지에 의한 것이든 경제에 대한 협소한 인식이 협소한 보도를 낳고 협소한 보도가 다시 협소한 인식을 부른다. 또 경제에 대한 신성시가 ‘경제 외’에 대한 배척과 부정적인 시각을 낳는다.
경제지는 대체로 ‘경제 주체’를 극히 대기업 중심적으로 본다. 경제지들은 우리 ‘경제’의 주체를 매우 일부분의 집단으로 한정하고 있다. 우리 경제를 구성하며 거기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매우 다양하다. 기업과 정부, 노동자, 자영업자, 농민, 실업자, 주부, 심지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어린이들도 경제 주체이다. 모든 국민들이 차지하는 그 몫에서 크고 작은 것은 있지만 모두 경제활동의 주체들인 것이다. 그러나 경제지에서 설정한 ‘경제’의 주체는 대기업에 매우 치우쳐 있다. 이는 기업(압도적으로 대기업)과 언론 사이의 관계에서, 언론이 대기업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 중계하고 유포하며 대기업은 다시 언론의 그 같은 논리와 지원을 토대로 더욱 ‘친(대)기업적인’ 논리를 펼치는 식으로도 나타난다. 이중의 인과-악순환 관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지들은 선거 후보들에게 정책 경쟁을 주문해놓고는 정책에 대한 이성적 분석 없이 ‘친 대기업’ 여부를 잣대로 좋은 정책과 나쁜 정책을 가른다.
3월 30일 매일경제의 대선 주자 공약 검증이 대표적이다. <대선주자, 대기업 손보기 최우선…노동개혁은 ‘뒷전’>(3/30 기획취재팀 https://goo.gl/admrTB)는 매일경제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함께 실시한 대선주자 정책검증 설문 결과를 토대로 작성했다. 기사 내용은 대선주자들이 “최우선 개혁 분야로 대기업 집단을 꼽았다”면서 “대기업의 특권과 반칙을 줄여 공정한 경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주장이지만, 자칫 기업 경영과 투자활동을 위축시켜 ‘교각살우’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면서 이를 ‘대기업 때리기’,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이재명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은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대기업집단 중 어느 부문을 가장 먼저 개혁할 것이냐는 물음에 나란히 대기업을 꼽았다. 대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강화하겠냐는 질문에도 응답자 10명 가운데 홍준표 경남지사를 제외한 9명이 ‘그렇다’고 밝혔다. 기사는 이런 대선주자들의 답변을 ‘대기업 손보기’라고 표현했다.
이어지는 매일경제 <‘10명중 9명’ 대기업 배싱 예고…기업경영 위축 우려’>(3/30 https://goo.gl/mNCTA9)라는 기사는 더욱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제목과 첫 문장에서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대기업 타도’를 내걸고 있다고 해서 ‘타도’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제목만 본다면 대선 주자들이 마치 대기업을 적으로 보고 섬멸하겠다고 나서기라도 한 듯하다. 제목에서 쓴 것처럼 ‘대기업 배싱(bashing)’이 격해지고 있다면서 ‘심한 비난’과 공격을 뜻하는 ‘배싱(bashing)’이라는 용어도 쓰였다.
기사는 이에 대해 “대기업을 때리면 표가 나온다는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선 후보들이 밝히고 있는 대기업 개혁의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는다. ‘진보’라고 분류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 외에도 ‘보수’이며 친 기업적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자유한국당의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이인제 전 의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 범보수 후보들까지 앞다퉈 대기업 개혁을 얘기하고 있는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단지 “뿌리 깊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공약” “표만을 좇는 행태”일 뿐이며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는 지금도 과도할 정도로 많은” 상황에서 대기업 때리기로 인해 “앞으로 대기업의 경영권 방어나 투자활동에 있어 험로가 예상”될 뿐이다.
이 같은 시각은 기업의 자유는 무제한 보장돼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쉽게 이어진다. 매일경제 <매경데스크/ 국가의 부는 어디서 나오는가>(4/9 김명수 증권부장 https://goo.gl/f70hWy)는 그 같은 극단론이 어디까지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국부의 원천은 기업이며 그런 점에서 기업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서두를 뗀 이 칼럼은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은 기업에 투자와 고용 창출을 요구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기업을 제물로 삼는다”고 말한다.
필자의 말처럼 기업은 국부 창출의 원천-그러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기업활동에 무제한의 자유를 줘야 한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글을 읽다보면 대담하게도 그런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필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리한 표현을 불사한다.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에 입각해 기업활동에 적정한 규제를 강구하는 것을 ‘기업활동 제한’으로 표현하고, 일탈 행위를 한 일부 대주주에 대한 반감을 ‘반기업 정서’라고 규정하고는 정치권에서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표를 얻으려 한다고 꾸짖는다.
급기야 “심지어 일부 대주주의 일탈을 기업의 일탈로 해석하고 한국의 모든 기업을 국민의 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하는데, 후보마다 기업단체들을 열심히 찾아가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장면들을 방송 화면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대체 어떤 후보가 ‘한국의 모든 기업’을 ‘국민의 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는 건가.
한국경제 <정규재 칼럼/대기업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다!>(4/24 정규재 논설고문 https://goo.gl/kD93Yf)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대기업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고 주장하며 대기업이 너무 적기 때문에 “과도한 자영업, 골목에서 터지는 비명소리,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빚어진다고 말한다.
극단적인 가정과 왜곡으로 범벅된 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논리의 비약이 서슴지 않고 행해진다. 그에게는 다른 많은 대선 후보들처럼 재벌개혁과 불공정 관행의 시정을 주장하는, 그러나 한편에서는 너무 친대기업적이라는 지적까지 받는 문재인 후보조차 ‘대기업과 자본가를 적대시한다’고 비치는 듯하다.
그는 한국에서 2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대기업은 전체 기업의 0.2%밖에 되지 않으며 여기서 일하는 종업원 수는 전체 근로자의 19.9%로, 이는 일본의 0.6%, 25.8%, 독일의 2.1%, 52.9%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해 대기업이 아직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이 말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이지만 그의 눈에는 한국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
이같은 (대)기업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우호·옹호적 태도를 보이는 반면 또 다른 경제의 주체인 노동계는 경제의 주체가 아닌 ‘문제’의 대상일 뿐이다. <균형추 무너진 노동개혁-경제 살릴 노동개혁 사라지고...표심 노린 설익은 정책 쏟아내고>(3서울경제 3월 23일자)에 그런 시각이 나타나 있다. 구조적으로 기울어진 ‘노사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표출되는 것이 당연하며, 특히 이는 선거 국면에서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데, 이 기사는 이를 균형추의 붕괴로 우려하고 있다.
노동절(5월 1일)에 내보낸 기사들조차 노동에 대한 편견과 폄하, 경시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국경제가 이날 1면 머릿기사로 실은 <누가 되든 1만원-10만원-30만원>(4/30 서정환․배정철 기자 https://goo.gl/jGsjWc)은 대선후보들이 하나같이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걸고 있다면서 시간당 최저임금 최소 1만원 실현 공약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가운데 제19대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국민은 임기 내 최소 1만원(시간당 최저임금)·10만원(월 아동수당)·30만원(월 기초연금)을 받게 될 전망이다”면서 “짧은 대선 기간에 후보들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사설 <대선 D-8, 1만·10만·30만원…'퍼주기'엔 한통속 된 후보들’>(4/30 https://goo.gl/FF73MQ)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등을 ‘퍼주기’로 규정했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퍼주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무차별 복지공약’이다, ‘뭐든 다 해주겠다’ 식의 공약 탓에 선거가 끝나면 ‘국가 재정이 거덜날 판’이다, ‘선심성 공약 광풍’의 피해 등의 표현까지 동원하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 기사와 사설은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이 ‘인간다운 생활의 최저 수준’에 크게 미흡하다는 것, 최저임금 현실화가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오랜 숙원이며, 그래서 많은 노동사회 단체들이 이의 실현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최저 생활 보장 요구에 대해 우선 포퓰리즘이라는 규정부터 하고 든다.
여기에는 많은 노동자들의 ‘최저’ 이하 생활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급여를 철저히 ‘비용’으로 보는 시각이 내재돼 있다. 이는 경제지들의 기업에 대한 태도와 확연히 대비된다. 경제지들은 기업의 법인세 인하 등은 비용 절감, 투자 의욕을 자극하고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며 긍정적인 평가 일색이다.
반면 노동자에 대한 적정한 급여, 특히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저임금의 현실화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 등 연쇄적 긍정효과에 대해서는 주목하려 하지 않는다. 경제의 양 주체인 노(勞)와 사(使)에 대해 극히 이중적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날, 다른 유력 경제지인 매일경제는 인터넷판 톱 및 지면의 15면 머릿기사로 <“연봉 3천만원 올려라”…현대차 귀족노조의 황당 요구>(4/30 박창영 기자 https://goo.gl/GWchG5)라는 기사를 실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임금·고용·복지에 대한 요구 수준을 나날이 높여가고 있으며 성과급으로 중소기업 초봉보다 많은 금액을 요구했으며, ‘4차 산업혁명’을 근거로 총고용보장까지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노동자들이 급여를 많이 받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기사다. 특히 생산직 노동자의 고임금에 대한 편견을 보여준다. 생산직 노동자들이 고임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마치 부당한 일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다.
이 기사는 사측의 입장만 인용할 뿐 노조의 설명은 아예 들어보지 않고 있어서 기사의 형식에서도 공정성을 잃고 있다. 이는 비단 이 기사뿐만 아니라 경제지의 많은 기사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경제활동의 두 축, 노(勞)와 사(使)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여기서도 확인된다. 노동계의 현실에 대한 ‘최저 이해’부터 필요하다.
경제지들의 ‘경제’에 대한 태도에는 경제에 대한 신성시, 경제 제일주의가 뚜렷하다. 경제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덜 중요한 것으로, 열위의 것으로 여긴다. 특히 ‘정치’를 경제에 대립적인 것으로, 경제를 해치는 것으로 본다. ‘정치’에 부정적 낙인을 찍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경제지에서 경제는 선이며 정치는 악으로 묘사된다. 정치(정치의 혼탁한 면이 아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치)는 절대로 경제에 개입해선 안 되는 것으로, 그래서 정치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정치에 의한 경제의 오염으로 규정된다.
특히 선거 때에는 이 같은 경제에 대립되는 것으로서의 정치, 정치의 포퓰리즘에 의한 경제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특히 경제지를 통해 대대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쏟아진다.
<‘정치 과잉’, 극단 치닫는 대한민국>(4/20 성수영 기자 https://goo.gl/6MBlSR)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1면 등 2개 면에 주요 기사로 배치된 이 기사는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갈등 양상이 내전이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극단적인 사례를 예로 들며 정치와 선거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다. 기사는 “‘문자 폭탄’이나 ‘18원 후원금’ 등의 공격은 이제 ‘애교’ 수준이 됐다. 온라인은 ‘OOO 후보를 때려죽이고 싶다’ 등의 섬뜩한 막말로 도배되고 있다. ...세대를 넘고 진영도 넘어 전선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라며 ‘죽기살기식 정치투쟁’이 전개되고 있다고도 서술하고 있다.
이 기사가 예로 들었듯 일부에 그 같은 과열과 과잉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극단’이나 ‘과잉’과 같은 용어로 이번 대선을 간단히 매도해도 될 정도로 과잉 양상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일까. 어느 선거판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무리하게 일반화해서 전체 선거판을 매도하는 기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치리더십을 세우기 위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 신문의 눈에 아예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
3. 포퓰리즘 낙인
경제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이 ‘포퓰리즘 낙인’이다. 이는 거의 모든 경제지들에서 마치 하나의 편집방침처럼 확고하게 뿌리 내려 있다. 경제지를 떠도는 하나의 유령이라고 할 만하다. 선거 때면 이 망령은 더욱 더 자주 출몰한다. 경제지들은 유난히도 대선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한다. 대선 후보들은 정책과 공약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전에 포퓰리즘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한 싸움부터 힘겹게 벌여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경제의 데스크칼럼 <차병석의 데스크 시각/‘고삐 풀린 포퓰리즘’>(3/27 차병석 산업부장 https://goo.gl/LmyAAT)도 포퓰리즘에 대한 비상경보를 요란하게 울려댄다. “대중의 표를 얻어야 하는 민주주의 선거에선 포퓰리즘이 필연적이기도 하다”면서도 부실 가계부채 탕감(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10년 일한 국민에게 1년간 유급휴가(안희정 충남지사), 농어민·노인·청년에게 연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이재명 성남시장),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기업 80% 수준 임금보장(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국민연금 최저 수급액 인상(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을 싸잡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공약을 실천하려면 문재인 27조원, 이재명 61조원, 안철수 6조원, 유승민 8조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분석을 제시한 이가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이며 한 종편에 나와 “연극인들이 노골적으로 풍자하니까 블랙리스트가 나오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아 물의를 빚은 인물이라는 점은 차지하자. 모든 정책과 공약에는 돈이 들어가며 문제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거기에 돈을 쓰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지, 그렇다면 그 재원마련과 예산의 배분안은 어떻게 짤 것인지 등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인기영합주의’를 뜻하는 포퓰리즘에는 그 말 그대로 깊은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공약을 남발하는 것으로 주로 쓰인다. 그러나 ‘국민의 지배’라는 말에서 비롯된 민주주의는 그 본질적 속성에서 포퓰리즘적인 요소가 깔려 있다. 무엇이 포퓰리즘이며 무엇이 포퓰리즘이 아닌지 구분하기가 그만큼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 씌워지는 부정적 어감을 생각할 때 이 용어를 쓰는 데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이 일단 씌워지면 합리적이고 냉철한 논의와 숙고가 들어서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대선 후보 캠프에서 내놓은 정책들이 설익거나 대중의 요구에 대한 표피적인 수준의 대응인 경우도 적잖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 개혁과 같은 요구가 국민의 절대다수로부터 광범위하게 분출하고 있다면 먼저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해 먼저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거치고 있는 촛불 혁명을 통한 대한민국 사회 대 개조 작업에서 왜 대기업 개혁이 최우선 과제이자 가장 중대한 과제들 중의 하나가 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섣부르게 대기업 때리기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낙인부터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지들은 대기업을 향한, 특히 그 총수를 향한 경제지의 ‘포퓰리즘’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업인을 뛰게 하라’>(3/27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https://goo.gl/qsScwW)는 칼럼을 보자.
“우리나라에 반기업 정서가 만연해 기업인 사기는 떨어지고, 기업을 잘되게 하기는 커녕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만 늘어나고 있다”고 필자는 한탄한다. 경제지들과 대기업인들, 일부 학자들이 끊임없이 얘기하듯 과연 한국에 반기업 정서가 만연한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따져볼 일이다. 다만 설령 그렇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를 살펴봐야 할 터이지만 이 칼럼은 “기업인들의 글로벌 활동을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출국금지 조치 때문에 기업인들은 기회가 와도 살릴 수가 없다”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두 번이나 트럼프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고” “최태원 SK 회장은 다보스포럼에 이어 중국 보아오포럼 참석까지 좌절됐으며” “중국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 회장은 8개월가량 국내에 발이 묶여 있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범법 행위 혐의에 대해 수사를 하고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않고 쉽사리 면죄부와 특권을 주는 것이 과연 ‘글로벌 기업’ ‘글로벌 기업인’에게 요구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것일까라고. 백보 양보해 포퓰리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경제지들의 대기업을 향한, 특히 그 총수를 향한 포퓰리즘에 대해선 뭐라고 할 것인가.
4. ‘시장주의’ 대 ‘반(反) 시장주의’ 프레임
이번 선거에서 기득권 보수 언론들은 적폐청산이냐 국민통합이냐, 분열이나 화합이냐는 구도를 제시하려고 했다. 이 프레임은 실제로 상당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들 기득권 언론은 “이제는 적폐청산보다 국민화합에 나설 때”라면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의 대결을 ‘부패기득권세력과의 대결’ 대 ‘편가르기 정치를 끝내겠다’는 진영 간의 대결로 규정했다.
경제지들은 또 다른 강력한 프레임을 내세웠다. ‘시장주의 대 반(反) 시장주의’, ‘자유경제 대 반(反) 자유경제’의 프레임이다.
평상시의 보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선거국면에서 경제지들은 이 프레임으로 후보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고 후보들을 견인하려 한다. 이들에게 시장주의는 경제학이 아니라 ‘종교적 교의’에 가깝다. 그 교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시장주의와 자유경제가 위협받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한다. 그 같은 진단으로부터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에 대한 당부(當否)의 판정을 내린다. 자신들의 기준에 어긋나면 ‘이단’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해서 자유시장주의 전파의 목적과 인식과 수단의 ‘3위일체’가 완성된다.
한국경제 <다산칼럼/몽펠르랭학회의 자유주의에 길을 묻다>(4/11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https://goo.gl/N3obKh)는 칼럼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칼럼은 “우리사회에서 경제는 규제의 대상일 뿐”이며 “법치에 어긋나는 차별법이 쌓이고 정실주의 부정부패 사회갈등만 만연한다”고 진단한다. 이 글의 필자는 한국사회가 참담한 현실에 놓여 있다고 개탄하는데 그에 따르면 “요즘 경제적 자유를 말하는 사람은 이른바 적폐 대상이다. 좌파의 눈치를 보면서 자유를 말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는 대담하게도 “경제적 자유보다 민주주의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게 좌파다”고 해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를 상충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규제가 많을수록 기업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 어렵다. 세무사찰, 인허가 배제 등 정부의 불리한 처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고 하고는 엉뚱하게도 이것이 ‘언론자유가 불안정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매우 창의적인 발상이지만 무리한 강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정부와 시장이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라도 ‘시장’을 해치는 불공정, 불합리를 교정해야 한다는 것, ‘시장 안의 반(反)시장’을 개선해야 제대로 된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에 대한 이해, 혹은 이해하려는 의지는 찾을 수가 없다. 정부로 대표되는 공공의 적정한 기능과 역할이 작동해야 공정한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대기업개혁 등 경제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특정 후보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난다.
<‘큰 정부’ 내세운 문재인, 오바마처럼 “재정 확대”>(4/12 서정환 기자 https://goo.gl/QKG8Ue)라는 기사는 문 후보가 4월 12일 발표한 경제정책 기본 방향, ‘제이(J)노믹스’ 구상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큰 정부’로 제목을 뽑았다.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 복지분야에 재정 지출을 과감하게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정부 역할을 강조한 ‘큰 정부’를 내세웠다고 평가한다.
‘큰 정부’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시비를 삼을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방만한 경영 등 우리 사회에서 공공과 정부의 확장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거부감-이에는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왜곡된 정보 제공 등에 의한 과도한 비판도 있다-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낙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에 대해 ‘민간의 자율을 해치는 비대정부를 만들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는 평가이며 편집이다.
중요한 것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가 아니다. ‘큰 정부 대 작은 정부’ 프레임은 프레임으로서 올바르지 않다. 정부의 기능 중에는 지금보다 더 크게 할 것이 있고 더 줄일 것이 있다. 정부 기능의 어떤 부분을 확대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문재인에 대한 이 같은 ‘비 시장주의자’ 진단은 문재인의 대척점, 보수세력의 희망으로 안철수를 내세우려는 기득권언론의 의도와 겹친다. 서울경제는 <문재인·안철수 공약 대해부/문 “관주도” 안 “민주도”… 일자리정책 선명성 경쟁>(4/10 민병권 기자 https://goo.gl/9el6nA)이라는 기사에서 안 후보는 ‘규제 간소화’ ‘반기업 정서의 문제점 지적’ 등 시장중심의 정책 기조를 내세우는 후보로 평가된다.
5. 반(反)기업 정서 실체 있나
많은 언론들, 특히 경제지들은 우리 사회에 ‘반 기업 정서’가 만연해 있다고 개탄한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재계는 심각한 반 기업 정서로 인해 기업 경영과 투자의욕이 상실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에 큰 장애가 된다며 개선을 요구해 왔다. 경제지들은 이 같은 재계와 경제단체의 ‘하소연’을 그대로 중계하는 건 물론 재계에 반기업 정서의 유포를 부추겨 왔다.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현상인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반 기업 정서는 이번 대선에서도 경제지들이 후보를 판별하는 우선 기준, 대선 보도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초박빙 문재인-안철수, 기업인에게 달려가다>(4/10 유승호 기자 https://goo.gl/1wQxQb)라는 보도를 보자. 보도는 소제목으로 <문재인 “중소기업이 3명 고용땐 정부가 1명 임금 준다”, 안철수 “기업이 무슨 죄…반기업 정서 실체 없어”>를 뽑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책임질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친기업 행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두 후보의 이날 행보는 이 신문만이 아니라 모든 경제지가 크게 실었는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안 후보가 대한상공회의소의 ‘공정성장과 미래’ 강연 등을 하면서 했던 발언, “반기업 정서는 실체가 없다”는 말을 예외 없이 주 제목으로 뽑은 것이었다. 안 후보는 이날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가 아니라 민간과 기업의 몫”이라고 강조하고는 “기업이 무슨 죄가 있느냐. 기업과 부패기업인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지들은 안 후보가 문 후보를 겨냥해 한 발언, “어떤 분은 정부가 일자리를 내놓겠다고 한다. 저는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이다. 정부가 돈을 쏟아 부어서는 경제를 못 살린다”고 한 것에도 주목했다.
헤럴드경제 <상의, 안철수 후보 초청 강연/안 “반기업 정서 실체 없어…기업이 존경받는 나라 만들 것”>(4/10 홍석희 기자 https://goo.gl/a4cJmX)이라는 기사 역시 비슷했다. ‘반기업 정서 실체 없어’라는 말이 주 제목으로 뽑혔다. 경제지들은 이 기사를 통해서, 또 이렇게 제목을 뽑아서 우리 사회에 이른바 ‘반기업 정서’가 있다는 것, 안 후보가 반기업 정서를 질타한 것처럼 얘기하려 했던 듯하다. 그러나 이날 안 후보의 발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실은 매우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 드러난다. 안 후보는 “기업과 기업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서 이런 오해가 있다고 본다.
사실 아주 극소수의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서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이 나쁜 것 아니냐”며 “사실 반기업 정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반 부패기업인 정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정당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대다수의 양심적이고 성실한 많은 기업인들까지도 반기업 정서라고 해서 폄하된다. 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사익 추구하는 기업인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처벌을 강화하되 양심적인 성실한 기업인들은 존경받는 그런 환경들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제 철학”이라고 말했다.
즉 반기업 정서는 없으며 혹 있더라도 그것은 ‘반 부패기업인 정서’이며, 그러므로 사익추구하는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경제지들은 안 후보의 발언을 상당 부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읽고 싶은 대로 해석하려 했던 듯하다.
이렇듯 경제지들의 반기업 정서에 대한 지적과 하소연은 체질화돼 있다고 해야 할 정도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재계는 심각한 반기업 정서로 인해 기업 경영과 투자의욕이 상실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에 큰 장애가 된다며 개선을 요구해 왔다. 재계와 경제단체, 경제지들이 중심이 돼 반기업정서라는 용어를 끊임없이 유포하면서 이 용어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현상인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에서 파면된 박근혜 씨가 2015년 10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할 때도 청와대는 기존 역사교과서가 ‘현대사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한다’고 하면서 ‘무조건적 반기업 정서’를 문제의 하나로 꼽았다.
그렇다면 반기업 정서는 과연 그 실체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진 게 별로 없는데 10년 전의 연구결과이긴 하지만 지난 2007년 5월 30일 KDI가 발표한 ‘반기업 정서의 실체 파악을 위한 조사 연구’ 결과에서 반기업 정서의 실체 여부를 알 수 있다. KDI는 일반국민, 경제전문가, 노조간부, 기업인, 교사, 언론인, 국회의원까지 다양한 계층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반기업 정서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시도했다.
보고서의 결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반기업 정서가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업일반에 대한 호감도를 반감, 보통, 호감으로 나누었을 때, 노조간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응답집단의 기업에 대한 반감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기업일반에 대해서는 각계각층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특히 중소기업, 중소기업인, 전문경영인에 대해서는 강한 호감을 보였다.
KDI 연구가 밝혀낸 반기업 정서의 실체는 재벌과 재벌총수에 대한 반감이었다. 반기업 정서는 불법·탈법 행위 및 분식회계와 편법상속과 같은 부도덕한 경영, 정경유착과 부패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기업 정서의 원인은 기업 외부보다는 기업 내부에 있었다. 주목할 것은 조사에 참여한 기업인 본인들도 그 같은 사실에 공감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지들은 이렇듯 실체가 없으며 있더라도 재벌과 재벌총수의 그릇된 행태에 대한 부정적 태도인 반기업 정서를 부풀리고 왜곡하면서 기업에 대해선 어떤 제약이나 통제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는다. 매일경제 <16조 상속세 공포…본업 전념 못하는 기업들>(4/11 홍장원․김대기․배미정․윤진호 기자 https://goo.gl/wqjmbr)이라는 기사도 그 중 하나다.
‘한국형 국민기업 키우자’는 시리즈 기사의 제 1편인 이 기사는 30대그룹 중 승계이슈가 있는 16곳을 분석한 것인데, 지난 3월 말 기준 16개 그룹 후계자의 승계 전 보유 지분 시장가치 총합은 16조5800억 원이라면서 근본 원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50%)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대주주에게는 상속세율이 최대 30% 할증되는 제도까지 있어 이론상 부담해야 할 세금은 65%로 높아진다. 아예 상속세나 증여세가 없는 스웨덴 등 유럽 국가와는 대조적이다”고도 했다.
이 기사가 제시한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한 팩트체크부터 해야겠지만 여기서는 한 나라의 세금문제는 개개 세금 부담의 고저(高低)만이 아니라 세금체계 전반을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만 하겠다. 또 경영권 승계 시스템의 편법과 탈법에 대한 예방과 징계 시스템이 잘 돼 있는지, 시장에서 이에 대한 응징이 제대로 이뤄지는 구조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상속세율 하나만을 따로 떼어서 한국이 상속세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설령 ‘사실’을 얘기한 것일 수 있더라도 ‘진실’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경제지들의 ‘친기업 정서’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거의 악(惡)으로 규정하게 만든다. 한국경제 <바이오헬스 판을 바꾸자/국내 바이오 규제만 1163건…“이런 나라서 바이오산업 꽃 피겠나”>(4/11 이지현‧임락근 기자 https://goo.gl/46oqze)라는 기사는 국내법에 막혀 ‘규제 피난'을 떠나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많다면서 의료 영리화 논란으로 인해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원격의료‘와 생명윤리법 강화에 따른 규제를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 기사 속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산업 발전 속도에 맞춰 규제 시스템을 바꿔야 할 필요가 큰 건 사실이다. 정부의 부실한 행정으로 인한 부실 규제가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경제지들의 ‘규제 규탄’은 어떤 규제든 간에 ‘규제완화는 곧 선(善)’이라도 되는 것인 듯한 논조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안에 대해 왜 의료계가 10여 년째 반대를 하고 있는지, 생명윤리법 강화는 황우석 사태 이후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경제지들의 친(대)기업 성향의 결정판이랄 수 있는 게 매일경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伊엑소르 이사진서 제외>(4/12 송성훈 기자 https://goo.gl/lzwbpN)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탈리아의 엑소르그룹 이사진에서 5년 만에 배제됐다”면서 “삼성그룹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에 따른 후폭풍이 현실화하면서 연매출 300조원에 달하는 삼성의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킹 차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서술했다. 엑소르그룹은 글로벌 자동차회사인 피아트크라이슬러(FCA)를 보유한 지주회사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012년부터 매번 빠짐없이 참여했던 이사회에서 5년 만에 배제됐는데 엑소르의 존 엘칸 회장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에 빠지는) 이재용 이사 등 4명 이사진의 현명한 조언이 더 강하고 기민하며 보다 국제적인 엑소르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개인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지만 이들의 이사직 사퇴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제지들은 “재계에서 지난해 11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지난 2월 구속되면서 정상적인 이사회 활동이 불가능해진 데 따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CBS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엑소르의 사외이사직에서는 사임하겠다는 뜻을 표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부회장의 이번 엑소르 사외이사 배제가 수사나 구속 등에 따른 여파가 아니라 삼성전자의 사내이사로서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스스로 사의를 밝힌데 따른 것이라는 뜻이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배제’라기보다는 ‘사퇴’라고 하는 게 맞다. 다만 여기서 사퇴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밝혀내는 것은 논외로 치자.
경제지들이 굳이 사퇴가 아닌 ‘배제’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도 보이지만 전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래의 기사에 나온다는 것만 지적하고자 한다.
<시나브로 와닿는 JY의 부재…삼성 ‘최고실적’도 못즐긴다>(4/12 송성훈‧이동인 기자 https://goo.gl/cMzdr5)는 기사는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킹에 `빨간불`이 켜졌다면서 삼성 내부가 무력감에 분위기가 최악이라고 적었다. 올해 1분기 사상 최고 수준의 실적을 거뒀지만 총수 부재 사태로 조직은 오히려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면서 ‘주가와 실적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의 빈자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중장기적인 경영전략과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킹에 큰 공백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매년 참석했던 보아오포럼이나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올해는 불참했거나 찾기 어려울 전망이라는 ‘걱정’도 곁들였다. 미래 먹거리를 키울 굵직한 인수·합병(M&A)도 사실상 올스톱됐다고 전했다. 사장단과 임원 인사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조직 분위기도 크게 가라앉은 모습이라고 서술했다.
이 기사의 지적대로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인한 공백이 회사 운영이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부회장에 대해 기업경영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킹을 위해, 중대한 경영상의 결정을 위해, 라는 ‘정상(情狀)’을 참작해 석방이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실은 경제지의 이 같은 보도야말로 오히려 반 기업정서를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경제지야말로 기업을 위한다면서 오히려 기업을 망치는, 반 기업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6. 재벌 ‘황제경영’ 청산, 또 자율에 맡기자는 경제지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정농단과 함께 정경유착의 실상을 드러냈다.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재벌 개혁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았던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였고 각 후보들도 재벌개혁 공약을 내걸었다.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 작업이 이미 국회에서 추진돼 온 가운데 대선 후보들도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경제지들은 이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거의 예외 없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논지다. 비판 자체가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무리한 논리로 강변하는 보도가 많다. 국회나 정부는 간섭하지 말고 기업 자신에게 맡기라는 논리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들면서 그에 반대되는 결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매일경제의 시리즈물 ‘한국형 국민기업 키우자’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스웨덴은 기업·정부 상생…한국, 반기업정서에 규제만’(4/18 홍장원․김대기․배미정․윤진호 기자 https://goo.gl/BskTGM)이라는 기사는 상법개정안이 법의 취지를 벗어나 ‘기업 옥죄기’ 카드로 변질됐다면서 국회에 계류된 33건 중 17건이 집중투표제등 지배구조 이슈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나 경제지들의 주장이 전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5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면서 배당금 확대 등을 요구한 사례에서 보듯이 헤지펀드의 집중 타깃이 될 수도 있다. 헤지펀드는 중요한 현안이 있는 기업의 지분을 확보한 후, 이에 반대하면서 배당금 확대 등을 요구하는 전략을 많이 쓴다.
그러나 이런 이유를 들어 지배구조 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이 기사가 “삼성·현대차·SK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 기업 분할·합병 등 민감한 이슈가 많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약점이 있어서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니 무조건 보호해 줘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많은 것도 지배구조 개선 반대 논리로 동원된다. 이 기사는 이에 대해 “최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했지만,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의 한 단면인 대기업 사내 유보금 급증에 대해 ‘뺏길 게 많으니 (가게 주인의 가게 운영에 문제가 있더라도) 빗장을 단단히 걸어줘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반대 논거들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떠나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된다는 단순논리대로라면 미국과 유럽 등 소액주주 참여가 활발한 선진국 기업들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설명할 것인가.
위 시리즈물은 사실을 일반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해석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재단 중심의 안정된 경영권, 160년 발렌베리 성장 이끌었다’(4/18 홍장원․김대기․배미정․윤진호 기자https://goo.gl/EJD5y7)는 기사는 스웨덴 기업집단 ‘발렌베리(Wallenberg)’의 사례를 들며 발렌베리와 같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너 경영’을 철저히 보장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 기사는 발렌베리 주니어 회장의 "창업주 가문이 장기적 시야를 가지고 기업이 갈 방향에 대해 조언한 덕분에 거센 풍파에도 발렌베리가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기업과 정부가 상생해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 생태계를 만든 스웨덴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기사는 “발렌베리 지배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정점에 발렌베리 재단(foundation)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 재단을 정점으로 하는 기업 지배구조는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포드,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레고 등이 모두 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조다. 이들 국가는 여기에 차등의결권 제도를 결합해 특정 가문을 대표하는 재단이 기업을 물려받는 구조를 공식화했다”면서 “반면 한국은 공익법인은 동일 내국법인이 발행한 의결권 있는 주식의 5% 이하를 출연받을 때만 세금을 면제해주는 상속·증여세법 제48조에 따라 이 같은 기업 지배구조를 짤 수 없다. 이 이상 지분을 재단에 넘기면 증여세를 물어야 해 지분을 직접 물려주는 것과 차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발렌베리가의 ‘5대 경영’이 가능했던 이유, 발렌베리가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소유와 경영의 족벌과 전횡성, 전근대적인 노사문화, 분식회계 등 한국의 재벌들과는 전혀 다른 발렌베리의 경영과 기업문화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는다. 소유를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해하고, 기업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며 수익은 스웨덴의 과학 기술에 투자하고 사회에 환원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재벌 경영으로는 절대로 한국의 발렌베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는다.
사실 상법 개정안에 담긴 지배구조 개선 관련 정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시절 ‘경제민주화’를 내놓으면서 공약으로 제시했던 것들이다. 법무부도 2013년 7월 이런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2013년 8월 28일, 청와대와 10대 그룹 총수 간의 오찬간담회 이후 입법 작업은 중단돼버렸다.
그러니까 상법 개정 작업은 이미 ‘친기업적인’ 새누리당에 의해서 공약으로 제시됐던 정책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일부의 반시장적인 정당이나 정치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경제지들은 한 목소리로 이를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 자율에 맡겨라’는 논리를 대고 있다. 서울경제 <문-안, 기업 지배구조 개편 시장에 맡겨라’>(4/14 https://goo.gl/Pws3Y4)는 사설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자율적으로 최적의 지배구조를 선택하고 이를 시장에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이사회를 ‘노조 천국’으로 만들고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나라’에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운운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고 해 기업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면 대기업 이사회가 노조에 의해 장악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과장하고, 해외 투기자본에 속수무책으로 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기업 대신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이 사설은 “재계는 이미 국민들에게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약속했고 많은 기업이 착실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지 의문이다. 재벌들이 수없이 약속했던 ‘황제경영 청산’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는 것인가.
7. 경제지들이 외면하는 의제
어떤 사안에 주목하고 어떤 사안을 소홀히 하는지 살펴보면 그들이 주로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들이 기피하는 논의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태도는 경제지가 대선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기업을 위해서는 열성적으로 대변하고 염려하는 경제지들이지만 잘 얘기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보도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사회책임 관련 제도와 법규를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고, 어느 때보다 그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우리의 경제지에서는 그에 대한 보도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가령 CSR의 한 부분인 사회책임투자(SRI·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 즉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성과를 반영해 투자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큰 흐름이 된 지 오래지만 우리 경제지는 이에 대한 소개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세계 사회책임투자 시장 규모는 22조 달러에 달하는데 한국은 0.1%도 안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SRI 시장 규모는 72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 국민연금만 봐도 올해 1월 적립금이 561조원인데 이중 사회책임투자는 6조 원 가량에 불과하다.
“사회책임투자는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능을 하고 있고 기업이 사회적책임을 다하면 그 자체로 경제민주화 많은 부분을 실현할 수 있다”는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의 말처럼 사회책임투자는 경제 민주화의 한 방도다. 우리 경제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논의이지만 한국의 경제지에서는 이에 대한 소개를 극히 꺼린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에 <‘기업 경영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범위’>(3/23 윤종원 주 OECD 대사 https://goo.gl/kxHCnd)라는 칼럼이 실린 것이 오히려 이채로울 정도다. 내부 필자가 아닌 외부 필자(윤종원 < 주 OECD 대사 >)의 기고인 이 칼럼은 “기업활동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원칙이 한국 사회에서 명확하게 정립된 것 같지 않다”면서 “기업이 국가사회에 기여한다고 경영상 자유를 무한정 용인할 수는 없다. 법 테두리 밖에 있어도 사회적 해악이 큰 행위에 대한 책임이 면탈되는 건 아니다”고 지적한다. 다만 “그 책임 기준은 법령으로 사전에 명확히 정해야 하며 그래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범위를 규율하는 데 기업책임경영 논의가 좋은 준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은 사회적 해악이 예상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절제와 배려, 자유에 걸맞은 책임이 꼭 필요하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주문이며 동시에 경제지에 대한 주문으로 읽어야 할 대목이다.
이른바 새로운 안보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간 안보’ 개념에 대해서도 무지-혹은 무관심-하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이 제창하는 ‘인간 안보’, 즉 한 나라의 안보는 단지 무력만이 아닌 인간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총체적인 여건을 갖추는 데 있다는 것에 대해 무지하다. ‘복지야말로 최선의 안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러나 경제지들의 ‘복지’에 대한 낡은 사고는 여전히 완강하다. 특히 한국경제 <‘포커판 베팅’ 닮아가는 기초연금·아동수당 공약 경쟁>(4/18 https://goo.gl/e5Zp8g)이라는 사설은 대선 복지공약 경쟁을 ‘포커판 베팅 경쟁’으로 비하하고 있다. “한쪽에서 증액·확대를 공약하면 다른 쪽에서 따라가는 양상이다”면서 “이런 식으로 선거를 몇 번 더 치렀다가는 나라살림이 파탄날 판이다”고 호통을 치고 있다. “모든 후보들이 ‘판돈’을 더 얹었다”며 ‘판돈’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공약을 이행하려면 올해 10조6000억원 수준인 기초연금 예산이 내년엔 4조~8조원 더 필요하다며 어김없이 예산 부담을 들고 있다.
이 사설은 “각 후보들은 달콤한 선물만 뿌릴 뿐,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뒷전이다”면서 이를 ‘매표행위’의 일종으로 규정했다.
복지에는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돈은 비용이자 투자다. 그리고 사회의 재원과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한 논의가 펼쳐지는 장이 선거다. 그러나 경제지들에서는 그 같은 이해가 거의 없다. 아니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8. 대한민국 경제 미래 위해서는 경제지 자신부터 달라져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인 5월 10일 주요 경제지들이 내놓은 사설은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말 속에 우리 경제를 보는 시각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매일경제의 ‘문재인 19대 대통령에 거는 기대’는 이런저런 주문을 하면서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미봉책이며 지속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5년 동안 근본적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경제의 사설 ‘대한민국,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리더십은 사적 자치와 재산권 보장, 개인의 자유와 책임 등을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기반을 둘 때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진단에 대해선 시비를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이 아닌, 여러 측면을 골고루 봐야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다’고 이 사설이 강조한 것에 과연 부응하는 논지를 펴고 있는지는 크게 의문이다.
가령 일자리 부족은 ‘기업들이 공장을 국외로 옮기고 성장이 멈춘 탓’이니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로 기업을 끌어들여야 하고 증세 논쟁과 대기업 개혁 주장으로 기업을 옥죄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하며, 아동수당·기초연금 인상 등 무리한 복지공약은 나라살림을 절단내고 미래세대에 큰 짐을 안길 정책이니 다시 한번 점검하고 솎아내야 하며, 기업과 기업인들을 자의 반 타의 반 불법과 편법의 유혹에 빠뜨려 온 건 정치와 행정의 과도한 규제권력이라는 주장이 한쪽만이 아닌, 여러 측면을 골고루 보는 진단일까.
‘재벌 개혁’은 마녀사냥식 정치 이벤트에 그칠 게 뻔하고 다른 개혁 아젠다도 마찬가지라는 경고나 일자리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해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 기업들이 ‘공정한 사회’를 외면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되는 게 선동정치이며 시장경제 원칙은 설 땅을 잃고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다는 식의 논리가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 경제에 닥친 큰 과제 중의 하나는 4차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어떻게 대비하고 그에 필요한 여건을 갖춰나가느냐는 것이다. 인류가 경험한 1,2,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큰 흐름을 읽고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많은 경제지들이 얘기하고 있다.
경제지들이 4차산업혁명의 대비에 관건이 되는 것으로 말하는 것 중의 하나는 창의성과 수평적 관계, 기존의 발상을 뛰어넘는 자유롭고 파격적인 사고 등이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지들이 기사와 칼럼을 통해 펴고 있는 논지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창의성과 수평적 관계, 자유로운 발상에 과연 부합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혁신을 얘기하면서도 혁신에 배치되고, 창의성을 얘기하면서도 창의성을 억누르는 사회 및 경제 여건을 조장하는 것이 경제지들의 보도행태다.
경제지들의 친 대기업적 논리는 실은 오히려 대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반(反) 대기업론이 될 것이다. 재벌총수의 수난은 곧 기업의 위기며, 경제의 위기라는 재벌을 향한 무한애정,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나라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재벌총수는 어지간한 잘못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줘야 한다는 재벌을 향한 무한구애, 대기업 개혁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거부하는 대기업에 대한 묻지마 호위무사 노릇으로는 결국은 박근혜와 수구 기득권 세력이 자기성찰과 개혁을 거부해 스스로 자멸했던 것처럼 대기업의 눈을 가려 결국 대기업을 해치는 자해범 역할로 귀결될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968년 이후 50년 가까이 유지돼 온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바꾸기로 한 것에 대해 경제지들은 새롭게 태어나라고 주문했다.(매일경제의 사설 <사설/전경련 이름만 바꾼다고 될게 아니다 새롭게 태어나라>(3/25) 등). 경제지들 역시 이 사설의 결론처럼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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