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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블랙리스트 피해자’를 때리고 있는 수구보수언론

민주주의는 ‘수치심’을 먹고 자란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17.09.26 14:55
조회 617

“다시 한번 확인하지만 KBS 내에 이른바 ‘블랙리스트’는 없다. 이번 김미화 씨의 트위터 발언은 PD의 제작 자율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김 씨는 하루속히 언론에 나와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공인의 인터넷 매체를 통한 무책임한 언행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불안하게 하는 고질적 풍토가 바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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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7월 8일 중앙일보에 실린 길환영 당시 KBS 콘텐츠본부장의 기고. 길환영 씨는 기고문에서 KBS 내에 ‘블랙리스트’는 없다며 김미화 씨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2010년 7월 8일 중앙일보에 실린 길환영 당시 KBS 콘텐츠본부장의 기고 중 일부다. 앞서 6일 김미화 씨가 자신의 SNS에 “KBS 블랙리스트를 밝혀달라”라는 글을 올리자 KBS는 재빨리 대응했다. 김 씨를 민‧형사 고소하고 보수신문의 지면까지 빌려 그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제. 작. 자. 율. 성. 침. 해! 공. 영. 방. 송. 훼. 손!

 

정작 KBS 구성원들은 길환영 씨야말로 공영방송을 망가뜨리고 KBS를 ‘MB방송’으로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으로 꼽아왔다. 그런 인물이 김미화 씨를 향해 제작 자율성 운운하며 ‘무책임한 언행으로 사회를 어지럽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길환영 씨는 이명박 정부 막바지인 2012년 11월 KBS 사장 자리에 오른다. 

 

블랙리스트 실체 드러나도 ‘적반하장’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그 부역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새삼 궁금하다. 애당초 이들에겐 옳고 그름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누구든 권력을 잡으면 방송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권력에 가까운 사람이나 새로이 충성해보려는 사람이 잘 나가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밉보인 사람들은 숨죽이고 살아야 마땅하다. 이게 세상 돌아가는 순리인 것이다. 당연한 이치를 블랙리스트니 탄압이니 하면서 피해자인 양 구는 것이야말로 세상 어지럽히는 일이다! 

 

이런 인식이 아니라면 길환영 류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권력이 던져주는 블랙리스트를 집행하는 그 순간에도 “절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피해자를 비난한 적반하장. 이 사람들에게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사실로 드러난 지금도 적반하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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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2일 조선일보에 실린 최보식 칼럼.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게 ‘정의의 사도’처럼 굴지 말라며 오히려 책임을 추궁했다.

 

문화예술인 탄압에 책임이 있는 옛 여권의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정치 보복’을 벌이고 있다고 외친다. 지난 정권 아래 이른바 ‘좌파 연예인’ 낙인찍기에 앞장섰던 수구보수신문은 정치 보복이라는 이들의 주장을 충실하게 전한다. 나아가 진보정권에서도 “피아(彼我) 성향 분류의 리스트”는 있었을 것이라고 근거 없는 주장을 펴며 물타기에 나선다. 피해자들에게는 “정의의 사도처럼 굴지 말라”며 꾸짖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부끄러움

 

가해자와 부역자들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니 인터넷 공간에서도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향한 험한 말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수구보수신문이 만든 ‘좌파’의 딱지를 들이미는 사람, 애당초 정치적 발언을 한 게 문제라고 양비론을 펴는 사람, 진보 정권도 똑같다고 주장하는 사람, 능력 없고 인기 없어서 못 나온 걸 왜 블랙리스트 탓하느냐는 사람, 무작정 너는 비호감이라는 사람까지 피해자를 잔인하게 몰아붙이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본다. 진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면 이들의 마음은 좀 달라질까?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은 ‘밥줄’만 위협받은 게 아니다. 수구보수언론의 왜곡과 매도에 끊임없이 공격받고, 권력의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때로 송사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피해자들은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 와중에 김규리 씨는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에 출연했고, 김제동 씨는 국정원의 회유에 무릎 꿇지 않았으며, 김미화 씨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무엇보다 다들 살아남아 주었다. 이건 우리 모두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면서 잘만 살아왔다”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 두렵고 섬뜩하다. 어쩌다 평범한 시민들까지 가해자의 논리를 따르게 된 것일까.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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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방송인 김미화 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9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미화 씨는 적반하장 식으로 '블랙리스트 피해자'를 비판한 9월 22일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 내용에 대해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반박했다. (사진 : 민중의소리)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들 말한다. 한국사회는 독재와 맞서 피 흘리고 죽어간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는 좀 다른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방송을 장악하고, 문화예술인을 탄압하고, 선거에 개입했던 지난 정권과 부역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이 없다. 그들은 계속 적반하장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하나 돌아보고 따져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수치심 없는 집단에게 권력을 쥐여준 것, 권력의 횡포를 막지 못한 것, 피해자들의 고통을 모르고 살았던 것, 무엇보다 수구보수언론의 논리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어리석음을. 좀 더 많은 사람이 괴롭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나아갈 것 같다.

 

*시시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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