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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탓’ 이번엔 ‘익명의 D사’ 꺼내든 조선
등록 2017.08.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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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지난달 25일에는 경방 김준 회장의, 28일에는 전방 조규옥 회장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에 국내에서 사업을 운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하소연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같은 보도 이후 경방과 전방의 실제 운영 실태를 근거로 이들의 공장 이전 및 통폐합 결정은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과는 무관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조선일보는 이후 또 다른 회사 대표의 하소연을 소개하고 나섰는데요. 이번에는 검증 자체를 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했습니다. 바로 ‘익명의 D사’로 처리하는 방식이죠. 게다가 이런 익명을 근거로 한 기사를 1면과 4면에 주요하게 배치했습니다.  

 

 

대표 하소연에 직원 불안감 부각 ‘공식’ 여전… 지속된 업계 위기는 슬쩍 ‘외면’  
조선일보 1면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 발표 뒤에… 사장님은 동남아 공장 찾아 출장중>(8/2 성호철․임경업 기자 https://goo.gl/9wLzJt)과 4면의 <“1명 인건비로 베트남선 10명 고용 해외 안가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8/2 성호철․임경업 기자 https://goo.gl/9wLzJt) 속 ‘스토리’는 이전 보도와 유사합니다. 먼저 “경기도 포천에 있는 화학섬유업체 D사” 대표의 “최저임금 16% 인상이 적용되는 내년에는 국내 공장을 더 축소하고 해외 공장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소개하고, “이 회사에서 29년째 근무 중인 이모씨”의 “최저임금 인상이 발표된 뒤, 직원들은 우리 사장의 베트남 출장을 무서워한다” “사장의 베트남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 공장이 문 닫는 날이 더 빨리올 거라며 불안해한다”는 주장을 덧붙이는 식입니다. 


실제 업체 대표와 직원이 이러한 우려를 쏟아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수년간 이어져왔던 ‘섬유산업 사양화’라는 본질적 문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그저 “한때 30만 명 이상을 고용했던 국내 섬유 업계에 고용 쇼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진행되는 내년에 국내 공장 폐쇄·축소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섬유 업계는 2000년만 해도 국내에서 33만여 명을 고용했지만 지금은 16만명으로 뚝 떨어졌다”고만 말하는 것은, 무작정 최저임금 인상의 해악을 부각하기 위한 ‘오버액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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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회사대표를 앞세워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 호소’를 전한 조선(8/2) 

 

 

애초 비교 불가한 베트남 인건비와 국내 인건비 비교도 여전
조선일보는 위 보도에서 섬유업계에 머무르지 않고 완구·장난감·장갑과 같은 “인건비 한계 업종” 관계자들의 호소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저가 공세에 속수무책”인 상황에 최저임금이 오르니 업계에서 “한계” “단종”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어 조선일보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작년 한 해 동안 해외에 투자한 금액”이 역대 최고치라며 “최저임금 인상이 이런 움직임에 기름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전망과 함께 조선일보가 끊임없이 베트남 등의 인건비와 국내 인건비를 비교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데요. 실제 기사 말미 조선일보는 “포천 화섬업체 D사 관계자”의 “현재 최저임금 기준으로도 국내 근로자 1명 인건비면 베트남에선 8명을 고용할 수 있다” “내년부턴 10명을 고용할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는 발언을 소개하고, “이 회사 국내 공장의 최저임금 근로자의 인건비는 월 240만원, 베트남 공장은 월 250달러(약 28만원) 수준”임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종의 ‘후폭풍’을 예측해볼 수도 있고, 이를 근거로 소상공인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제 수준이 다른 두 나라의 소요 인건비를 직접 비교하는 ‘업계의 호소’를 소개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행동인지 의문입니다. 최저임금을 베트남 수준이 될 때까지 낮추거나 동결해버리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이 이번에 ‘급격하게 인상’되지 않았다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산업을 언제까지나 한국이 주도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 사안을 고려해 정책의 부작용을 검토하는 것과 이미 답을 정해놓고 선동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지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8월 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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