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허무 국감’ 훈계하는 언론들, 자격 있나? (김수정)
등록 2016.10.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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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2016 국정감사 전반기 신문방송보도 비평


‘허무 국감’ 훈계하는 언론들, 자격 있나?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국정감사(이하 국감) 전반전이 끝났다. 또다시 ‘국감 무용론(無用論)’과 ‘허탕 국감’이라는 언론의 질책이 시작되고 있다. 송곳 질문도 없고 대형 폭로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의원들의 질문 수준을 봐도 준비가 부족하고, 증인들의 답변과 태도가 불성실하니 허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음 두 국감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를 비교해보고 이러한 평가에 동의할 수 있는지,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고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논쟁서 피감기관장 답변은 생략한 KBS‧MBC

5일 국제사법위원회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의 부검영장을 두고 질의가 이뤄졌다. 법원이 지난달 28일 발부한 부검영장은 다음과 같은 제한조건을 달고 있다. ▲유족이 원할 경우 시신이 있는 서울대 병원에서 부검을 진행하고, ▲유족 측 참관인을 최대 5명까지 두도록 하며, ▲부검 시기와 절차에 관해 유족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강형주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직원과 함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스1)

 

국감에선 ‘제한부’ 혹은 ‘조건부’ 부검영장을 발부한 법원이 책임회피 의도가 있는 것이냐는 추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강형주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제한이 들어있기 때문에 제한을 벗어나는 건 기각이라는 취지로 이해하면 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 사안을 두고 연합뉴스TV는 “국감 정상화 사흘째, 양대 쟁점을 중심으로 여야의 대치 전선이 뚜렷해지고 있”다면서 논란 사안이 있었음을 살짝 언급하고 말았다. KBS는 “부검을 실시하라는 것이 원칙인 것이고(주광덕 새누리당 의원 발언)”라는 주장을 담은 발언을 편집에 넣으면서, 국회의원들의 질문만 줄줄이 나열했지 피감기관장인 강 법원장의 해명이나 답변 장면은 전혀 넣지 않았다.


MBC는 “영장 발부 판사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르자는 요구까지” 나왔다고 전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강 법원장의 답변은 포함하지도 해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여야대립각만 보여주는 꼴이 됐다. TV조선, 채널A, YTN은 이 사안과 관련해서 보도를 하지 않았다. 


강 법원장의 발언 장면을 SBS와 JTBC는 보도했다. 의원들이 법원의 부검영장 내용에 대해 추궁과 질책이 있었다는 화면과 “제한을 벗어나는 것은 기각이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는 법원장의 답변을 내보냈다. 영장에 제시된 조건을 이행하는 것이 의무 규정이라고 본 것이라고 해설했다.


국감 파행 원인 ‘여야정쟁’ 탓만 하는 조선‧중앙‧한국

8일 경향신문은 주요 의혹 관련자를 한 명도 증인으로 부르지 못하는 상임위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국감이 ‘파행’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10/8). ‘국감 파행’은 언론이 쓰는 단골 표현이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증인 문제 때문에 8시간 동안 3차례에 걸쳐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며 파행(10/7)”했다고 적었다. 한국일보는 “지역에서 올라온 8개의 지방교육청 피감기관 관계자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대기 상태를 유지(10/8)”할 수밖에 없었다며 여야 힘겨루기 장으로 국감이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 중앙일보 기사 캡쳐


조선일보는 최순실 씨의 딸을 둘러싼 대입 특혜 의혹을 밝히기 위해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격돌했고 이 때문에 이틀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국감이 파행했다고 평했다. “경기도 등 8개 도 교육청에 대한 감사는 이날 저녁에서야 시작됐다”면서 여야 증인 채택 대립으로 ‘꽉 막힌 교문위(10/8)’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국감 상황을 두고 한겨레는 파행이라는 단어를 직접 쓰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서로 밀고 당기며 국정 감사 전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셈(10/8)”이라고 사설에 썼다. 의혹을 밝혀줄 사람을 불러내지 못한다면 국감이 제구실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이유에서이다. 


전처럼 언론이 ‘허탕 국감’, ‘구태 정치 반복’이라고 국회와 의원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서는 모양새는 달라지지 않았다. 피감기관의 문제를 폭로하고 기관장의 잘못을 들춰내야 할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다. 그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국감을 정치인 세를 과시하는 장으로 여긴 채 나왔다면 질책 이유가 마땅하다. 다만 언론이 국감 의제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에 당당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