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그토록 강조했던 언론자유를 위해서는 누구부터 바뀌어야 하나 (김은규)
등록 2016.09.21 09:55
조회 360

<언론포커스> 김영란법 시행과 언론계의 과제

그토록 강조했던 언론자유를 위해서는 누구부터 바뀌어야 하나


김은규(우석대 교수, 민언련 웹진기획위원장)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9월 28일 이전에 다녀오자.” 모 은행이 해외지점 개설을 앞두고 해외 취재 기자단을 꾸리자, 기자단 내부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이를 두고 같은 기자단 내부에서는 “기자들의 인식 수준이 한탄스럽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접대와 향응에 젖어 그 관행을 아쉬워하는 기자도 있고, 이를 비판하는 기자도 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언론계의 한 풍경이다.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떤 모습을 지지할지는 물어보는 것 자체가 우문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이유이다.  


‘경제’를 앞세운 김영란법 흠집 내기

김영란법이 오는 9월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지난 201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을 두고 애초 그 취지와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했다. 하지만, 법 수정안에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김영란법은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었다. 위헌 문제가 부상되었고, 이를 부각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언론이었다.




언론이 김영란법을 공략한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 전략이었다. 하나는 김영란법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는 기사를 앞세운 우회적 공략이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인 ‘경제’ 문제와 김영란법을 연관시키며 소비 저하로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는 공세를 폈다. 때마침 농축수산업계와 한국경제연구원 등이 김영란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매출 손실 추정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팩트’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언론은 이러한 유용한(?) 팩트를 실감나게 우려냈다. 조선일보의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 연합뉴스의 “김영란법, 농수축산 브랜드 ‘남도미향’ 10년 명성 흔드나” 같은 감성적 기사들이 이어졌다. 언론은 관련 업계의 추정치가 정확한 것인지 팩트를 검증하기보다는 발표내용 인용에 급급했고,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를 시도했다. 그나마 한겨레가 “법과 시행령이 식사·선물·경조사 비용을 한정한 탓에 관련 산업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주장이 연일 쏟아지지만, 정작 그 근거라는 피해 추정액은 도무지 신뢰하기 힘들다. … 피해액 산출 방식에 오류가 적지 않은 데다 의도적인 과장 흔적도 있다. 김영란법에 괜한 흠집을 내어 정상적인 시행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해 언론의 체면을 세운 정도였다. 


언론자유 침해 주장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뼈아픈 지적

언론계의 또 다른 전략은 언론자유의 침해가 우려된다는 자기방어적 공세였다. 취재활동의 제한으로 언론자유의 침해가 우려된다는 기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기자협회는 대한변호사협회 등과 함께 김영란법의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은 언론인과 취재원의 통상적 접촉 등 정보의 획득은 물론 보도와 논평 등 의견의 전파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서 언론인의 법적 권리에 어떤 제한도 하고 있지 않다”며 위헌심판청구를 각하했다. 덧붙여 “언론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고, 국민들은 이 분야의 부패 정도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언론계의 부끄러운 치부가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통해 지적된 것이다.   


△ 김영란법 관련 헌법재판소 판결 장면 <사진 출처 : 조선일보>



하지만 한국기자협회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반발했다.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의 취지와 필요성에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기자사회 내부에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관행이 남아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기자협회의 주장은 언론계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당장 YTN지회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정 이후 나온 한국기자협회의 성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취재활동의 제한이나 자기 검열이라는 주장에 납득이 가지 않으며, 한국기자협회의 성명이 전체 기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영란법은 접대와 향응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다

공방의 시간은 지났고, 이제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언론계에 복무하는 임직원들은 이제 새로운 환경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 사실 김영란법을 지키는 일은 간단하다. 각자 내고, 향응성 선물은 안 받으면 된다. 언론계 스스로가 제시하고 있는 언론윤리를 지키면 된다. 혹여 취재원과의 관계 속에서 밥을 먹어야 된다면, 평소 자기 돈 내고 먹던대로 김치찌개나 갈비탕 수준으로 먹으면 된다. 취재 현장의 현실이 그리 간단치 않기에 사안이 헛갈린다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시한 직종별 매뉴얼(청탁금지법 언론사 매뉴얼)을 참고하면 된다. 조금만 공부하면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김영란법을 3만 원 이하의 접대와 5만 원 이하의 선물은 받아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안의 핵심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에 저촉되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부조리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사실상의 핵심이다. 언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언론계는 김영란법을 두고 언론자유를 운운한 것이 오히려 역풍이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접대, 외유성 해외 취재와 연수, 기자단 향응 등 언론계 내부의 부조리는 언론윤리 기준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그만큼 언론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언론윤리 및 자정 노력이 수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구호적 차원에서만 머물러 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언론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차제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언론윤리를 재정비하고 이를 언론 현장에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