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핵심은 보도편성의 자율성이다
등록 2016.09.0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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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공영방송 정상화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핵심은 보도편성의 자율성이다


김서중 (민언련 정책위원장,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유신시대로 역주행한 공영방송

시계가 거꾸로 흘러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세월호 대참사같은 불행을 맞이해서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부 비판이나 막으려 공영방송에 압력을 넣고 사장은 이에 호응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책기획수석이 겁 없이 공영방송은 국정 홍보 방송이어야 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세상이 됐으니 오죽하랴. 드디어 올 총선 시기 공영방송을 보면 북한방송 보는 것 같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북한 관련 적대적 정보를 쏟아냈다. 진정한 국가안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눈을 씻고 찾으려도 찾을 수가 없는 행태였다. 심지어 사드배치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외부세력,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민주공화국’에서 정부 시책에 민주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히는 행위를 적대적 행위로 매도하려는 시도였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국영방송이나 다름없었던 유신 시기나, 신군부 시기 공영방송의 모습을 21세기에 다시 목도하리라 상상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08년 불법·탈법을 동원해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던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정연주 사장은 모든 소송에서 대법까지 승소했다. 해임이 부당했다는 것이다. 사실 법원의 판단을 받을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그것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첩경이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역주행은 2008년 불법적인 정연주 KBS 사장 해임이 시작이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4월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개입 규탄, 길환영 당시 KBS 사장 퇴진을 요구한 KBS노조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공동파업 출정식. (사진 오마이뉴스)



기울어진 공영방송 이사회 지배 구조는 개선해야

사장을 견제하고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이사회는 법이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소위 KBS 7:4, 방송문화진흥회 6:3, EBS 7:2 또는 8:1 비율로 구성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렸다. 형편 없이 기울어진 그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 또는 추천하고, 그 사장이 방송사를 이끌어갈 경영진들을 임명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정권을 비롯한 사회 제반 권력을 감시·비판하는 감시견(Watchdog)으로서 공영방송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합리적 논의가 사라지고 오직 ‘다수’가 군림하는 논의 구조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정권의 대리인이 아니라 ‘공’영방송답게 시민을 대변하며 공공성 구현의 선도방송 구실을 해야 한다. 그래서 공영방송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최근 방송법 개정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소위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름 아래 이사회 구성을 바꾸자는 제안이 있다. 어차피 현재도 여야 정치권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으니 여야 정치권이 직접 선출하고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7:6 구조로 가자는 것이다. 또 사장 선출과 같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안은 일방의 힘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2/3 찬성으로 가결하는 특별다수제를 적용하자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장을 지나치게 한쪽으로 경도된 사람으로 임명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자는 뜻이다. 의미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장 선출을 제외하고는 매번 7:6이라는 고착화된 표결 결과가 나오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지혜, 즉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공영방송 정상화의 핵심은 ‘보도 편성의 자율성 보장’

그런데 이사회 구조를 바꾸고 사장을 선출하면 보도가 공정해질까? 노사가 합의한 편성규약을 제정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현실은 경영진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사회와 사장 선임 구조를 바꾸는 것은 분명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핵심은 보도 편성의 자율성 문제다. 현장을 모르는 사장이 내용에 개입하려는 자세, 사장을 대리하는 보도, 편성 간부들이 군림하는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지배구조 변화는 허울만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방송법 개정 논의는 소위 지배구조 논의 못지않게 보도 편성 자율성 논의를 포함해야 한다. 지배구조 개혁도 결국 보도 편성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법은 4조 3항에서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와 관련한 법 규정은 딱 거기까지다. 편성규약이나 편성위원회를 사장의 의지나, 경영진과 구성원의 힘겨루기에 좌우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편성규약 및 편성위원회 구성과 권한을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여 자의적 운영을 막아야 한다. 지금도 편성규약이 있고, 편성위원회가 있지만 보도가 편파적이고 왜곡되는 이유는 경영진의 의도에 따라 편성규약이 준수되지 않고 편성위원회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더욱 중요한 지점은 진정한 공영방송이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하다는 사회 구성원의 강력한 바람이며, 공영방송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강력한 의지다. 이 바람과 의지들이 강력해야 방송법 개정도 가능하고 개정 이후 진정한 보도 편성 자율성이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는 틀을 제공하지만 운영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양심에 따라 진실을 전하는 것이고 이는 보도 편성의 자율성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