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병든 언론, 병든 사회의 치유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실천과 행동이다(이완기)
등록 2016.07.14 10:03
조회 508

<언론포커스> 공영방송을 바로세우기 위한 과제
병든 언론, 병든 사회 치유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실천과 행동이다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지난 6월 30일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에 대한 불법적 방송통제가 녹취록을 통해 공개되면서 국민에게 충격을 준데 이어, 이번에는 7월1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서 일부 여당 의원들의 국회 발언이 국민에게 허탈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날 여당 의원들은 이정현 의원에 대한 비호와 두둔을 넘어, 맨 정신으로는 듣기 힘든 억지와 궤변의 막말을 쏟아냈다.

 

  권부와 공영방송의 유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기실 녹취록에 나타난 통화내용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 군부독재 시절 보도지침의 망령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녹취록에는 “뉴스편집에서 빼 달라”거나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는 등 방송편성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방송법 위반행위가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어떻게 공영방송이 이런 위기상황에...”라며 한탄하는 대목에서는 공영방송을 바라보는 권부의 시대착오적 시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하필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오늘 보셨네”하는 대목에서는 주인(대통령)의 마음을 거슬려 어쩔 줄 몰라 하는 머슴(홍보수석)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고 서글프다. 이정현 의원은 그런 머슴의 자세로 박근혜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고 출세의 가도를 달렸을 터이다.

 

적반하장식 궤변, 무조건 덮고보자는 이들
  새누리당 의원들은 녹취록에 대해 “이정현 수석이 통사정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이어“어떤 의도로 녹음 했는지, 왜 한 참 지나서 폭로성 공개를 했는지...”라면서 범죄 행위보다는 범죄를 폭로한 행위에 의혹의 화살을 겨눴다. 심지어는 “이정현 의원이 언론에 의해 피해를 봤다”, “언론자유보다 언론에 대한 피해자 구제에 더 고민해야 한다”는 적반하장 식의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권력에 대한 방송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며 시청료를 내는 시청자들을 조롱하고 모독한 일이다. 야당 의원들의 청문회 개최 주장에 대해서는 세월호 특조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라면서 “사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에 청문회 개최는 할 수 없다”고 했고, 심지어 그런 식의 폭로는 “그분의 인격이나 위상에 걸맞는 처신이 아니다”며 김시곤 국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놀랍게도 이들 여당 의원들의 발언은, 지난 1월 “최승호, 박성제를 증거없이 해고했다”는 백종문 MBC미래전략본부장 녹취록이 나왔을 당시 “백 본부장이 술 마시고 헛소리 한 것”, “소송이 제기됐으니 결과를 지켜보자”는 등 방문진 다수 이사들이 했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백종문의 편성 개입에 대한 방송법 위반 주장이 나오자, “방송법 4조는 국가권력의 간섭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을 달았던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정작 국가권력의 개입이 명백히 드러난 이정현 녹취록 사안에 대해서는 “보는 입장에 따라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면서 빠져나간 것은 방송규제기구의 수장으로서 비굴한 이중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0.001%에 속하는 정치 엘리트들의 인식 수준이 이처럼 일반 국민과 괴리되어 있는 병든 사회에서, 이들에게 공정하고 건강한 언론환경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공염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99%의 민중을 ‘개와 돼지’로 취급했던 한 교육부 간부의 ‘신분제 발언’이 국민을 아프게 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을 한낱 정부의 홍보도구로 치부하는 그들의 병적 언론관이 바뀌지 않는 한 병든 우리 사회는 치유할 길이 없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동안, 박근혜 정권은 참사의 책임을 선장과 선원, 그리고 선사의 유병언 회장에게 덮어씌우는데 몰두했고, 방송과 보수 언론들은 그러한 권부의 의도대로 여론을 몰고 갔다. “솔직히 우리만큼 도와준 데가 어딨냐?”고 한 김시곤 국장의 항변은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해경이라는 국가 공권력이 제 역할을 못해 사고가 참사로 되어버린 인재에 대해, 국가 공권력의 총책인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은 정권 유지가 어려울 정도의 국민저항에 부딪힐 사안이다. ‘7시간 행적’에 대한 세월호 특위의 조사 의지에 대해 여권 특위위원들이 사퇴를 불사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논쟁은 거두고 지금 바로 행동해야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낙점하는 작금의 사장 선임방식이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언론계, 시민사회에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배구조의 개선만으로 권력과 방송의 고질적인 유착관계를 척결할 수 없으며 편성권과 제작 자율성을 보장해 내적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지배구조를 아무리 개선해도 이러한 인식 수준으로는 방송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모두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식의 변화가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고 제도의 개선 속에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뀐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은 제도냐 인식이냐의 생산성 없는 논쟁을 거두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치권, 언론계,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실천과 행동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