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대선 편파 방송 못하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김유진)
<언론포커스>20대총선 선방심위 평가와 남은 과제
대선 편파 방송 못하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김유진(민언련 이사)
5월 13일 20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위)가 5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지상파의 선거보도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서 종편의 노골적인 여당 편향 행태가 반복되자 심의기구인 선방심위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종편의 저질 막말 방송에 ‘솜방망이’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 정파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원 구성이 아니냐, 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 등등.
20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총 제재 건수의 66%가 종편
선방심위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번 선거와 관련해 모두 88건의 선거방송이 제재를 받았다. 종편이 58건으로 전체의 66%에 이르고, 그 가운데 법정제재에 해당하는 ‘경고’와 ‘주의’를 받은 경우는 9건이다. 지상파는 20건의 제재를 받았는데 법정제재는 없다. 지상파와 종편의 불공정한 선거방송 행태에 분노하는 유권자들이 볼 때 “중징계 받아 마땅한 선거방송이 고작 이 정도냐?”고 할만하다. 그러나 앞선 선거에서의 통계와 비교해보면, 이번 선방심위는 그나마 ‘적극적인 심의’를 한 편이다.
△ 20대 총선 선거방송심의 및 의결 현황(출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
2014년 지방선거 선방심위는 24건의 선거방송을 제재했을 뿐이다. 이 가운데 종편은 단 9건(법정제재 2건). 좀 더 거슬러 올라가 19대 총선에서는 26건(지상파 13건, 종편 6건)의 선거방송이 제재를 받았고 법정제재는 한 건도 없었다. 2012년 대선 선방심위는 모두 47건(지상파 14, 종편 29)의 선거방송을 제재했는데 법정제재가 지상파 3건, 종편 14건 있었다. 하지만 대선 선방심위는 활동기간이 거의 9개월에 이르고 선거방송의 양상도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의와 제재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앞선 세 번의 선거방송 심의와 비교해 보면 20대 총선 선방심위는 상대적으로 많은 선거방송을 심의, 제재한 셈이다. 물론 제재 건수만 놓고 선방심위의 성과를 평가 할 수는 없다. 선거방송 심의의 목적이 ‘제재’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당 성향의 위원들이 다수인 선방심위가 종편의 선거방송 60건 가까이를 제재한 것은 종편의 심각한 불공정성을 공식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거방송 심의의 근본 취지는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에 도움을 주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선거방송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심의는 이런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과 종편의 출현으로 노골적인 여당 편향방송이 넘쳐나고 왜곡편파보도가 유권자의 눈과 귀를 흐리는 상황에서 심의기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종편은 선거 때면 더욱 극성스럽게 야당에 대한 막말과 조롱, 악의적 왜곡으로 가득한 시사프로그램을 양산하며 여당 승리를 위해 발 벗고 뛰었다.
민언련은 불공정한 선거방송의 문제를 의제화 하고, 좀 더 실효성 있는 제재를 이끌어내기 위해 심의기구에 직접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이번 총선 시기 민언련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심의기구를 압박했다. 146건에 이르는 종편의 선거방송을 심의 요청해 법정제재 3건, 행정지도 30건을 이끌어 냈다. 선방심위가 앞선 선거와 비교해 많은 제재를 내리게 된 데는 민언련의 적극적 대응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정성 위반’ 심의요청…종편 막장행태로 벌어진 고육책
사실 민언련이 종편의 선거방송을 비롯해 시사보도프로그램들을 심의기구에 심의요청 하게 된 것은 상황에 ‘떠밀린’ 선택이었다. “공정성이 과연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이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대립한다. 미국의 경우 미연방통신위원회(FCC)가 1987년 논란 끝에 방송심의에서 ‘공정성 원칙’을 삭제했다. 공정성 심의가 악용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이명박 정권 이래 우리사회에서 극명하게 확인되었다. 권력에 불리한 방송에 대해서만 자의적인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며 탄압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민언련은 ‘표적 심의’에 항의하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감시기능 보장을 주장했다.
때문에 명백히 악의적인 여당 편향보도라 해도 심의기구를 향해 ‘공정성 위반을 제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공정성 심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논쟁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맞불’을 놓는 선택이 최선인가? 그러나 권력에 비판적인 방송은 ‘표적심의’에 시달리고, 종편의 악의적인 편파왜곡은 방치되는 현실에서 ‘맞불’ 전술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특히 선거 시기 기승을 부리는 종편의 저질 편파방송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선방심위가 제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더욱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대통령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왔다. 대선보도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내년 상반기에는 대선 선방심위가 구성될 것이다. 민언련을 비롯한 언론단체들은 대선 선방심위가 좀 더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했으면 한다. 이번 총선 선방심위의 성과와 한계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제도적으로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심의기구가 종편의 저질 편파방송에 더욱 엄정한 심의를 할 수 있도록 압박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