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정은경·민동기 회원] 모두가 언론을 행하는 세상을 위해(2016.6.)
등록 2016.05.30 15:34
조회 5204

[회원인터뷰-정은경·민동기 회원]

모두가 언론을 행하는 세상을 위해

 

 


 

 

5월 6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깜짝 선물처럼 마련된 민언련의 5일 연휴가 금세 지나갔다. 연휴 마지막 날인 5월 8일, 정은경·민동기 부부를 만났다. 마침 지상파 3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에 보도를 쏟아 부으며 ‘경제성과’를 부풀리고 있던 와중이었다. ‘친정부 보도’에 신물이 날 때 쯤, 운명처럼 대안 미디어에서 활약 중인 ‘부부 회원’을 인터뷰했다. 민동기·정은경 부부는 기자로 만나 지금은 각각 팟캐스트와 마을 미디어에 종사하고 있는 ‘대안 미디어 부부’이다. 풀뿌리 언론의 토대가 되는 마을 미디어의 정은경 회원, 기성 언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팟캐스트의 민동기 회원. 묻고 싶은 것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민언련 소식지 최초의 부부 회원 인터뷰인 만큼 ‘러브 스토리’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글: 이봉우 활동가/ 사진: 이병국 회원/ 동행: 김언경 사무처장

 

 

‘완소 부부 회원’ 정은경·민동기, 민언련과도 ‘상부상조’
민동기 회원에게는 미안한 일일 수도 있지만 정은경 회원과의 인연은 민언련이 먼저다. 그녀는 대학 시절, 리포트를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가 민언련을 알게 되었고, 당시 방송분과를 하던 KBS 강정훈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방송모니터위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3년 정도 참 열심히 분과 활동을 했다. 민언련 간사들의 애정을 듬뿍 받을 때, 언론학교를 추천받아 29기 언론학교도 수강했다. 지금도 언론학교 동기인 뉴스타파 김경래 기자 등 5~6명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고 한다.


민동기 회원은 정은경 회원의 권유로 민언련에 가입했다. 연애를 시작한 뒤 정은경 회원이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이 “적금 들어 놓은 것 있냐”와 “민언련 회원이냐”였단다. 인터뷰에 동석한 김언경 사무처장은 감격의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정은경 회원처럼 연인의 조건으로 ‘민언련 회원’을 내거는 회원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일까. 그래도 민동기 회원은 ‘애인님’이 권유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회원 가입을 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 전부터 민언련 후원을 다짐하고 있었다고 한다.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김언경 사무처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민언련도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민동기 회원에게 강력히 피력했다. 결국 그가 진행하는 <국민라디오 뉴스바> 토요일 방송분에 ‘민언련과 함께 하는 뉴스빡’이라는 코너를 만들기로 했다. 김언경 처장과, 배나은 활동가, 그리고 필자가 5월 28일부터 고정 출연한다. ‘대업’이 결정되자 김언경 처장은 부부를 ‘완소 회원’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상부상조’ 또는 ‘회원 착취’. 김언경 처장의 ‘묘수’가 빛났다.

 

 

미디어 비평지가 맺어준 인연, ‘로맨스’대신 ‘투쟁’
본격적인 ‘러브스토리’는 지금부터이다. 두 사람은 미디어비평 매체인 <미디어오늘>에서 선후배로 만난 이른바 ‘사내 커플’이다. 치열한 기자 생활 속에서 꽃피는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할 법 하지만 부부는 입을 모아 “낭만이 없었다”고 단언했다. 민동기의 정은경에 대한 첫 인상은 “쟤 뭐야?”였단다. 신입 기자 채용 당시 면접관이었던 민동기는 입사 최종 면접을 보러 찾아온 정은경을 만났고, 그녀가 당돌하게 ‘미디어오늘의 발전 방향’을 논했기 때문이다. 이후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린 후배 정은경의 노고를 보며 어느새 민동기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썸’이 시작됐다. 그런데 정작 누가 먼저 고백했는지는 서로 ‘모르쇠’다. 그나마 정은경 회원이 답을 냈는데, 김빠지게도 “애매하다”는 답이었다. 민동기가 잽싸게 “정 기자가 손을 먼저 덥석 잡았다”며 주도권을 가로채자 정은경은 눈을 흘기며 “(민동기가) 속 터지는 캐릭터라서 그렇다”고 맞받아쳤다. 투탁거리는 애정 다툼은 “그래도 프로포즈는 내가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호주 케언즈에서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서 했다”며 ‘고공 청혼’을 내세운 민동기 회원의 ‘우세승’으로 마무리됐다.


두 사람만의 ‘연애담’에 로맨스가 없다면 혹시 함께 한 기자 생활 와중에는 낭만이 있지 않을까. 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갔다. 두 사람이 <미디어스>로 일터를 옮긴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투쟁’이다. 민동기 회원은 2008년 촛불집회 당시를 떠올리며 직접 경험한 경찰의 ‘물대포 조준 발사’에 치를 떨었다. 정은경 회원은 “전경과 시위대의 중재를 서겠다”며 나타난 예비군들에 관한 칼럼을 썼다가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 나왔는데 왜 굳이 예비역들이 나서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 드는가”는 취지의 칼럼이었다고 한다. 정은경 회원은 격렬한 예비군들의 항의 전화에 “테러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바닥’친 언론, 기자생활의 ‘매너리즘’
이렇다 할 로맨스도 없고, ‘투쟁’이 추억이 된 연인의 기자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정은경 회원은 기자가 된 지 3년 차가 되었을 때 민동기 회원과 ‘썸’을 탔고, 5년차가 됐던 2008년 <미디어스>를 끝으로 기자직을 떠났다. 정은경보다 언론계에 좀 더 머문 민동기도 지난해 2월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직을 사퇴하면서, 15년에 걸친 기자생활을 마무리했다. 무엇이 이들을 언론계에서 떠나게 만들었을까?


“언론의 문제점을 15년 동안 보고 기사도 썼지만 바뀐 것이 없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서 기자들의 바닥, 언론계의 바닥을 목격했다. 이제는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언론사들의 반성도 ‘관성화’된 것 같다. 고민을 한다고 하는데 지면과 화면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기존 매체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쉽게 공감이 되서 더 슬픈, 민동기 회원의 대답이다. 바닥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우리 언론의 현실은 두 기자를 회의로 이끌었다.


“기자로서 마지막 취재가 2008년 8월 8일, KBS 정연주 사장 해임 건이었다.(당시 KBS 이사회는 해임 제청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규정까지 어겨가며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가결했다. 경찰은 수천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KBS를 포위하고 사장실까지 진출하며 KBS 기자협회 및 노조원들의 접근을 막았다.) 경찰이 KBS에 들어오다니, 너무 화가 많이 났다. 욕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정연주 사장 해임 건을 취재하기 전, 이미 퇴직을 결심한 상태였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그녀의 본심인 듯 했다. 정은경 기자의 회의는 좀 더 개인적이지만 결국 망가진 기성 언론이 그녀를 지치게 한 것은 매한가지다. 정연주 사장 해임 건 취재를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분노가 서려있었다.

 

누구나 지닌 “표현의 욕구”, 그 자체가 풀뿌리 언론의 ‘청사진’
두 사람이 인연을 맺고 함께 했던 기자 생활은, 우리 언론 지형이 얼마나 보수화되어있는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권력의 추가 오른쪽 날개 끄트머리에 걸려버린 우리 언론 지형에 답은 없는 것일까. 대안 미디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은경, 민동기 회원에게 그들의 ‘현재’이자 ‘답’을 들어 볼 차례다. 

 


정은경 회원은 <미디어스>를 떠난 후, <마포FM>에서 근무했고 현재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마을미디어 사업의 실무를 맡고 있다. 마을미디어 행사 기획, 예산 지원 및 감사, 미디어 교육 교과서 발간, 보도자료 작성 등의 업무를 포괄한다고 하니 ‘팔방미인’이라는 점에서 민언련 활동가들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다른 사람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것이 성격에 맞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는 대안 미디어 중에서도 ‘풀뿌리 언론’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마을미디어는 말 그대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직접 신문, 방송,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꾸리는 것이다. 콘텐츠 선정과 제작, 운영이 모두 마을 사람들의 직접 참여로 이뤄진다. “서울에 마을미디어가 소소하게 늘고 있다. 대중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이 많고 더 필요하다는 인식도 생기고 있다. 지금은 서울에 조금씩 생기는 수준이지만 확장될 가능성은 높다”는 그녀의 얼굴엔 기자 생활 이야기를 할 땐 볼 수 없었던 기대감이 가득했다. 특히 정은경 회원이 놀란 부분은 마을 주민들의 참여 열기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영향력이 있지도 않지만 참주민들이 신기할 정도로 재밌어 한다. 나의 콘텐츠, 나의 말이 매체 형태를 갖춰 공식화된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언론’이라고 하면 연예인과 정치인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모든 사람에게 ‘발화’의 기회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마들끼리의 수다가 마을 미디어를 거치면 보육에 관한 공식적, 사회적 문제제기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참 의미가 있다.”


그렇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동네에 야구장을 짓는 문제까지, 우리 삶의 그 어느 것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지만 마치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살 듯, 우리는 스스로 정치와 거리가 멀다고 착각한다. 옆에서 거드는 민동기 회원은 그 일상 속 정치를 “표현을 하려는 욕구”로 규정했다. 누구에게나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그것이 공론의 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삶은 정치적인 본모습을 찾게 된다. 민주적 권리를 찾는 일은 거기서 시작된다. 다시 정은경 회원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표현이 타인과의 소통을 만날 때 힘을 갖게 된다.”정은경 회원은 지금 맨 아래에서부터 ‘소통’의 가교를 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파성’ 뚜렷한 팟캐스트, ‘가능성’의 기지개를 켜다
‘대안 미디어 부부’는 마치 약속한 듯,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정은경 회원이 마을에서 ‘조용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면 민동기 회원은 숱한 화제를 뿌리며 ‘인터넷 극우’와 맞서는 팟캐스트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동기 회원은 스스로 말하길 “제2의 인생으로서 팟캐스트를 하며 ‘프리댄서’(?)로 살고 있다.”

 


그는 현재 고발뉴스의 <뉴스박스>, 국민 라디오의 <뉴스바>, 그리고 김용민과 함께 하는 <관훈나이트클럽> 등 3개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컨셉도 가지각색이다. <관훈나이트클럽>은 “관훈클럽에 대적하기 위한 코믹 컨셉”이고 <뉴스바>는 “진지한 정통 시사 프로그램 컨셉”이며 <뉴스박스>는 “딱 그 중간”이라고 한다. <관훈나이트클럽>과 같이 ‘코믹 컨셉’을 표방하는 경우 수위가 센 미디어비평을 하다 보니 언론사로부터 소송도 많이 당한다고 한다. 송사까지 수습하며 뛰어야 하는 ‘팟캐스트 스타’의 삶은 어떨까. 민동기 회원은 기자 시절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고 했다. 최근 20대 총선이 야권의 승리로 끝나면서 덩달아 화제가 된 청년층의 팟캐스트 열풍도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을 것이다.


“팟캐스트가 (야권)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효과는 굉장히 강하다고 본다. 물론 그걸 뒤집어 보면 팟캐스트는 그 노선과 정파성이 대단히 뚜렷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확장성의 부족과 지나친 정파성을 지적하지만 정파성은 오히려 종편과 지상파 방송사들도 만만치 않다.”


‘내부자’의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민동기 회원은 팟캐스트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꿰뚫으면서도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린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듯 했다. “지금 사회에 너무 분노해서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들을 결집 시키는 효과”가 이번 총선에서도 드러났다는 것이다. 노선과 정파성이 지나치게 분화되는 문제점도 빼놓지 않았다. “너무 잘게 쪼개지는 것은 지지자들의 카타르시스 분출에서 그 역할이 그칠 수도”있기 때문에 <뉴스바>를 기획할 때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노선 외에 너무 지나친 정파성은 기피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 언론도 미국처럼 정파성을 공개하면서 합리적인 보도와 논쟁을 꾀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가는 요즘, ‘합리적인 정파성’을 고민하는 민동기 회원이 어쩌면 그 논의에서도 ‘최전선’에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지켜봐 달라는 그의 말에는 유독 힘이 실렸다.


“전체 유권자로 따지자면 팟캐스트의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확실히 어필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세대 중에 누가 듣고 있느냐가 유의미하다. 그들이 다음 대선과 총선의 향방을 가리기 때문이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도 창간 당시에는 내일 망한다고 했다”
마을 미디어와 팟캐스트라는 ‘대안 미디어’로 방향을 돌린 부부의 삶은 치열하고 행복해 보였다. 여전히 대안 미디어가 생소한 우리 언론 지형의 척박한 토양에서 치열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치열함이 자발적이며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행복이 묻어난다. ‘스스로를 표현하려는 모두의 욕구’를 모멘텀으로 삼는 마을 미디어와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를 앞세운 팟캐스트는 그 출발 자체가 기성 매체와 확연히 다르다. 일단 자본 및 기득권과 일절 관계가 없다. 그러다보니 기계적 중립을 가장한 은폐, 정권 눈치 보기 등 기성 매체의 구태도 찾아볼 수 없다. 가능성의 최전선에 선 ‘대안 미디어 부부’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


“<한겨레>도, <오마이뉴스>도, <미디어오늘>도 처음 나왔을 때는 다들 내일 모레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왔다. 지금은 대안 미디어 전체의 상황이 가능성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다.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고 공론화하면 된다. 기지개를 켤 때 밟는다면 그 어떤 싹도 자라지 못한다.”

민동기 회원은 대안 미디어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대로 기존언론이 ‘대안 미디어’였던 시절이 있었고, 많은 국민들이 그 등장에 환호했었다. 그 시절, 드라마의 한 컷을 도맡았던 민언련에는 이제 정은경·민동기와 같은 ‘또 다른 신대륙의 개척자’들이 있다. 민언련이 회원들과 함께 항상 바빠야 하는 ‘기꺼운 의무감’이 이런 것 아닐까.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뛴다. 이번 인터뷰의 피날레는 다시 뛰는 우리에게 ‘캐치 프래이즈’와도 같은 정은경 회원의 한 마디로 장식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이 배우고, 언론을 직접 행하는, 그런 세상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