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양적완화는 띄우면서 기본소득제는 ‘황당공약’?(김성원)
[시시비비] <조선일보>의 황당한 총선 정책보도
양적완화는 띄우면서 기본소득제는 ‘황당공약’?
김성원 이사
20대 총선을 앞두고 연일 각 정당의 정책 및 공약이 잇달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책 선거를 위해 노력해야 할 언론들은 정작 정책과 공약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엄밀한 검증이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제대로 비판하지 않으면서 오랜 숙의 과정을 통해 제시된 정책은 매도하는 이중잣대를 휘두르는 언론의 작태는 유권자들의 정치혐오감만 더 부추기고 있다. 그 중 압권은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 사설 통해 새누리당 양적완화 공약 적극지지
지난 3월 29일 새누리당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원회 회의에서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 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한국형 양적완화’ 정책이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산업은행의 채권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보증증권(MBS)를 직접 인수하도록 하여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상환을 돕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에서는 주로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금리 인상 또는 인하와 같은 통화정책을 펼쳐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상당히 파격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벌써부터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양적완화 정책이 자칫 우리나라에서 제2의 IMF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달러화를 발권하는 미국, 유로화를 발권하는 유럽연합, 엔화를 발권하는 일본과 달리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웃 일본도 2012년 이래 ‘아베노믹스’란 이름으로 ‘윤전기를 돌려 엔화를 무제한 찍어내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달러-엔 환율이 달러 당 80엔에서 120엔으로 무려 50%나 폭락하기도 했다. 일본과 같은 준 기축통화국조차 환율 50% 평가절하를 겪은 상황에서, 나라 밖을 벗어나면 휴지값도 쳐주기 어려운 한국 원화를 윤전기를 돌려 마구 찍어내면 얼마나 가치가 하락할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면 필연적으로 나라빚이 늘어난다. 현행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강봉균 위원장 주장대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이나 주택담보보증증권(MBS)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빚보증을 서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라빚이 늘어나면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고, 이는 외환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 구조조정 지원과 가계부채 상환 부담 경감이라는 측면에서 일견 양적완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제학자들조차 외환위기 초래의 가능성 때문에 신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일보>는 3월 31일자 사설 <‘한국형 금융환화’ 시도해볼만 하다>를 통해 강봉균 위원장의 ‘한국형 양적완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양적 완화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일본, EU(유럽연합) 등에서 시행돼 어느 정도 효과를 본 통화 팽창 정책”이라고 추켜세우면서 “경제의 목을 조이고 있는 부실기업과 가계 부채 문제에 숨통을 틔울 수 있다면 경기부양을 위해 검토해볼 만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정부와 한은은 과거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금리 조정 방안과 함께 우리 실정에 맞는 금융 완화를 병행하는 공격적 통화 정책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양적완화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조선일보>, 기본소득제는 황당 공약?
반면 <조선일보>는 자매 섹션지 <조선비즈> 3월 30일자 보도 <[여의도토크] 권익위에 ‘한풀이청’ 설치… 민족은행 설립” 황당공약>을 통해 진보정당의 기본소득제 정책을 ‘황당공약’으로 매도했다. <조선일보>는 “군소정당들은 유권자들에게 당을 알리기 위해 과도한 복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며 그 사례로 “노동당도 기본소득법을 제정해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알렸다. 녹색당도 청소년, 청년, 농어민, 장애인, 노인에게 월 40만원의 기본소득과 모든 연령대의 시민들에게 생태배당금을 준다고 공약했다. 복지국가당은 모든 노인들에게 최대 약 60만원을 보장하는 ‘더불어 연금’을 도입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녹색당이나 노동당 등의 기본소득제는 날로 실업률이 높아져가고 복지사각지대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생활 기반을 반드시 고용에 결부시켜야 한다는 편견을 극복하며 오랜 숙의 끝에 마련된 제도다. 증세를 통해 확보된 재원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물복지’에서와 같은 우선순위 논쟁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미 스위스나 핀란드 같은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제도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거나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등 보편적 복지를 위한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 전 주민을 상대로 연간 2천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미국 알래스카주처럼 이미 실현된 곳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성남시가 3년 이상 거주한 1991년 4월 2일~1992년 4월 1일 출생 청년들을 대상으로 연간 50만원 규모의 지역 상품권을 지급하는 청년배당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일종의 ‘청년기본소득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면 기본소득제는 새로운 보편적 복지 대안으로서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정책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녹색당은 지난 4월 1일 <새누리당 양적완화 vs. 녹색당 기본소득 -빚 내서 뿌려댈 것이냐, 잘 걷어서 잘 돌릴 것이냐>란 제하의 논평에서 “OECD 국가 평균 조세부담률은 34.1%(2014년)인데 한국은 24.3%(2014년)에 불과하다. 덴마크(48.6%/2013년)의 절반 수준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라도 끌어올리면 그것으로 시민 1인당 매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여기에 세출개혁과 불로소득 과세 강화와 기초연금이나 양육수당 등의 통합을 통해 매월 40만원(지역화폐 포함)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이다. 재원 확충이 단기간에 어렵다면 1단계로 우선 노인과 청년, 농민,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방안이 있다”며 녹색당의 기본소득제는 보편적 증세를 하면서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임을 밝히기도 했다. 녹색당은 또한 “빚 내서 뿌려대지 말고 잘 걷어서 잘 돌려보자”면서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부채와 부동산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사회에서 “빚 내서 돈 풀자”는 사고방식은 집권여당 공약으로 등장하는 것 자체로 커다란 해악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나랏빚을 늘리고 자칫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초래하여 제2의 IMF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정책을 사설을 통해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면서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이 오랜 숙고를 통해 제시한 기본소득제는 간단히 ‘황당공약’으로 일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행태야말로 새누리당의 ‘황당공약’은 감싸면서 진보정당의 대안 정책은 매도하는 이중잣대요, ‘황당보도’가 아닌가? 이번 총선이 정책선거가 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조선일보>와 같은 이중잣대와 ‘황당보도’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