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이런 ‘언론’을 계속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가?(정연구)
<시시비비>‘정파성’의 도를 넘어서는 보수·종편 매체의 선거 보도
이런 ‘언론’을 계속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가?
정연구(이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16 총선보도감시연대의 모니터 결과를 지켜보노라면 마치 왕조시대에 온 착각마저 든다. 언론매체가 정파성을 띠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언론매체는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일 수 있다. 일부 정당의 정책에 더 호감을 가질 수 있다. 공영방송만 아니라면 이에 대해 어느 국민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사영매체라 할지라도 사실에 입각하고, 반론권만 보장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비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에 보수 신문이나 종편 방송이 하고 있는 보도를 보면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파성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정 정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보도를 하기 보다는 원칙도 논리도 없이 특정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찬양하는 보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하고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비난 받을 일로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고 여당이라 할지라도 특정 계파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융탄 폭격을 하고 있다.
△ 3월 7일 채널A <쾌도난마> 화면 갈무리
한국 정치의 수준이 워낙 일천해서 정당이라는 것이 나름대로의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따라서 한 정당 구성원 간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계파 중심보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당 사이의 경쟁은 정책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일정 수준 되어 왔다. 특정 정당을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일은 그나마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파성의 범위에 들어가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정당 안의 계파 간 갈등에 대해서 사실을 충분히 알리는 수준을 넘어서 누구를 노골적으로 편드는 일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유는 명확하다. 언론 매체 존재의 당위성이 공적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른바 ‘언론 매체’라고 인정되는 매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투쟁현장에서 기자들이 정당하게 취재하다 경찰에게 폭행당했다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말할 권리, 알 권리를 훼손당한 듯 생각하여 ‘국민’이 누려야 할 헌법적 가치의 훼손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런 여론이 모이게 되면 정치권에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정치권은 이런 압박에 굴복하여 언론매체를 보호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가게 된다. 이 순환구조에서 핵심 고리는 언론매체가 공적 영역에 있어 ‘우리’의 삶이 향상되는데 기여하거나 할 것이라는 공유된 믿음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구조에 방해가 되거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기자에 대해서 ‘기레기’라는 말을 국민들이 사용한 것도 같은 믿음 때문이다. 기자라면 해야 할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더 이상 기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이야기는 기자라면 공동체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는 ‘공유된 믿음’이 없다면 존립할 수 없다.
언론 존재의 당위성이 공적 영역에 있어서 공동체를 위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 편의를 봐주는 일은 국민의 개별적 판단에만 맡겨져 있지 않다. 다양한 제도를 통해서도 보장하고 있다. 예컨대 명예훼손을 다루고 있는 형법 33장에서 언론 매체는 일반인과는 다른 대접을 하고 있다. 형법 310조는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신문 판매 행위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면세해주기도 한다. ‘언론진흥재단’과 같은 곳에 공적자금을 부어 언론사나 언론인을 다양하게 돕고 있기도 하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이 모든 일들이 언론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를 한다는 전제하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쇼핑채널이나 전단지 발행이 아니라 ‘언론’ 행위라고 생각하는 매체라면 특히나 선거 국면에서 계파의 이익을 위해 종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계파 간에 국민을 위한 경쟁이 공정하게 일어나도록 북돋워줘야 한다.
과연 언론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나?
그러나 4/13 총선을 20여일 앞둔 지금까지는 본을 보여야 할 대통령도 대부분의 보수·종편 매체도 이런 상식적 당위를 무시하고 있다. 민언련 총선 모니터 보고서가 보여주고 있듯이 어제도 오늘도 특정 정당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심중을 헤아리는 충성 경쟁을 하고 있다.
최근 내용만 몇 가지 추려보더라도 낯 뜨거운 비 언론행위가 줄을 잇고 있다. ‘초유의 욕설파문, 축소하는 지상파와 감싸는 종편’(14차 보고서), ‘공천개입 ‘물타기’로 청와대 향한 충성심 경쟁 나선 조중동’(15차 보고서), ‘대통령의 거침없는 선거개입, 노무현·MB때도 그랬다는 동아’(16차 보고서).
사태가 이 지경이니 만큼 이런 매체의 행위를 바로 잡기 위한 모니터 활동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보호와 지원으로부터 배제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