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정치의 발견』(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정치도 싫지만 정치가는 더 싫다는 사람들에게
김경실(민언련 부이사장)
사례 1 2008년 총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떨어진 노회찬 씨는 당시 선거 후 지역구 주민이자 평소 자신을 열성적으로 지지해 주었던 젊은 부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노 후보가 당선되어 정치인이 될까봐 걱정해서 내심 떨어졌으면 했는데, 실제로 떨어지고 나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사례 2 같은 지역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오랜 시민운동 끝에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그를 지지했고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왔다는 한 시민. 그러나 막상 투표는 다른 후보에게 했는데 그 이유인즉 이렇다. “그 친구는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지 않은가. 시민운동을 위해 나온 거니까 정치인이 되어서 욕먹을 필요는 없으니 투표는 가능성이 있는 쪽에 했다.”
사례 1, 2는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정견을 지지하면서도 막상 그가 정치인이 되지는 않았으면, 정확하게 말하면 정치에 오염되지 않았으면 하는 복잡한 심리를 잘 대변한다. 이런 심리는 깊은 ‘정치의 부정’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요즘 내 안에서도 정치/정치가 불신의 뿌리가 제법 길고 깊게 자라나고 있는지라 『정치의 발견』(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도입부에 나오는, 자가당착의 두 사례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 박상훈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치가 부정당하면 정치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도 부정당하기 쉽다. 당연히 진보적인 정치의 길을 넓히기도 어렵다. 민주정치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진보적 대의와 사회 약자들의 권익을 생각한다면 먼저 진보 내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반 정치주의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어 저자는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는 최장집 선생의 말을 빌어, 정치/정당/정치가에 대한 비난이나 대책 없는 야유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일 때가 많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리고 묻는다. “입만 열면 정치, 정당, 정치인 욕하면서 실제로는 정치를 가장 잘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투표를 통해 종부세를 없애고 세금도 감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행동해온 집단은 누구였는가?”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 10개를 꼽으면 예외 없이 가장 부자인 동네가 순서대로 나열된다. 물론 투표율이 가장 낮은 동네 10개는 그 반대이다. (그렇게 해서 21세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정치가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졌다!) 한심스런 마음에 “그래, 잘난 늬들끼리 다 해먹어라~” 하고 손 털고 싶은 맘도 들지만, “권력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들은 시민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는 냉철한 선언 앞에서는 새삼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해 내 손에 쥐어준 시민의 권리’와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누가 정치를 부정하는가, 누가 투표를 막는가
“서민들이 먹고 사는 데만 급급하고 공적 문제에 참여하지 않아 이명박 정부가 전횡을 일삼게 되었다, 유리한 취업 조건에만 신경 쓰고 사회 정의에 관심이 없으니 세상이 이 모양이 되었다. 조중동 프레임에 포획되었다….” 익히 들어왔고, 나 역시 열을 올리며 거들었던 말들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항변한다.
“투표율이 낮은 것의 책임을 시민의 무지, 무관심, 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체 내의 좀 더 부유한 계층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태이다. 이는 어떤 정치체제나 늘 하층계급의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던 논리이다…우리 사회 서민들과 젊은 세대들은 제 역할을 다했다. 표를 던졌고 재정적 후원을 했으며 촛불도 들었다. 그런 그들의 자유의지를 위축시킨 것은 불평등이 급속히 심화되었기 때문이지 시민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현실의 불평등에 힘들어하고 민주주의와 진보를 주장했던 세력들에게 실망을 표현하고 있을 때, 그들을 향해 민주주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데 헛된 욕망이나 추구한다며 화를 내고 깨어나라며 훈계할 수 있는 특권을 누가 가질 수 있을까.”
민언련 회원으로 활동하는 우리가 더 특별히 돌아보아야 할 문제도 있다. ‘정치가들은 겉으로는 대중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을 무식한 존재로 생각한다. 사실은 시민운동가들 역시 민주적 결정을 내릴 역량이 일반 대중에게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는 일반 대중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내심으로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치명적인 태도이다.’ 이 외에도 ‘상층계급은 갈등의 민영화 내지 사사화를 선호한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농성이나 법정다툼이 아니라 일반 시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결국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것이다. 갈등의 범위가 기업과 시장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비롯해 ‘어떤 사람이 정치가가 되어야 하는가’ ‘왜 민주적인 조직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지도자가 필요한가’ 등등,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고 함께 토론해보아야 할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혼자 읽어 보는 것도 좋겠지만 가능하다면 여럿이 함께 읽고 토론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