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성유보 추모]
성유보 선생이 살아 계시다면
김종철 동아자유실천투쟁위원회 위원장
성유보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가 오는 10월 8일로 한 해가 된다. 나는 지난해 10월 2일 오후 충정로의 가칭 민주주의국민행동(민주행동) 사무실에서 열린 창립준비 모임에서 그분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박근혜 정권의 ‘신유신체제’를 타파하고 민주체제를 세워 통일의 길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성 선생의 얼굴은 그날따라 유난히 노란 색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후배가 그분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님, 많이 피곤하신 모양인데 오늘 일찍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회의를 진행할 때면 늘 그러듯이 노트에 꼼꼼하게 메모를 하던 성 선생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10월 7일 저녁 프레스센터에서 자유언론실천재단 창립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가 중반을 넘어서는 데도 성 선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자리에 안 나오실 분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튿날인 10월 8일 밤 8시쯤인가 부인 장연희 여사가 ‘부음’을 전해왔다. 10월 6일 성 선생이 어느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신 뒤 집에 돌아가시자마자 고열과 통증을 호소하셔서 일산 자택 부근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치료를 받고 10월 8일 아침에 기력을 되찾으신 성 선생은 여러 시간 동안 부인, 아들 덕무 군과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오후 2시께 갑자기 의식을 잃어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가족이 얼마나 황망한 심경이었을까? 동아투위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성 선생을 ‘민주사회장’으로 모시고 남양주의 모란공원에 안장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개월이 지났다.
내가 성유보 선생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70년 7월 초였다. 동아일보사에서 수습을 받다가 군대에서 2년 4개월을 보내고 복직해 보니 그분이 편집부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나보다 대학 2년 선배인 성 선생은 육군 사병으로 36개월이나 복무했기 때문에 입사가 늦었다고 한다.
1971년 4월 공화당의 박정희와 신민당의 김대중이 맞선 마지막 ‘대통령 직선’에서 관권과 금권, 흑색선전을 총동원한 박정희가 실질적으로 영구집권의 길로 들어선 이래 언론계는 굴종과 침묵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영향력이 가장 크고 상대적으로 진취적이었던 동아일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젊은 기자들은 질식할듯한 분위기에서 일하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술과 당구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언론자유수호선언’을 발표하거나 박 정권의 언론탄압에 항의하는 밤샘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1974년 3월 7일의 출판노조 동아일부사 지부 결성과 같은 해 10월 24일의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였다. 성유보 선생은 언제나 그런 운동의 중심에 서서 조용히 맡은 일을 하셨다.
1975년 3월 17일 새벽 박정희 정권과 야합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113명을 폭력으로 몰아낸 이래 성 선생과 동지들은 40년 가까이 가시밭길을 걸었다. 걸핏하면 투옥되고 취업과 여행의 자유를 빼앗기곤 했지만, 우리는 민족·민주·민중운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1984년 12월에 출범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련의 전신), 1985년 3월 말에 결성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성유보, 이부영, 정동익을 비롯한 동아투위 위원들과 내가 함께 일하던 시절이 지금도 그립다. 1987년 6월항쟁 직후에 시작된 ‘새신문 창간’ 작업도 함께 해서 결국 1988년 5월 <한겨레신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이 후 성 선생이 걸어오신 길은 <한겨레>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미완의 꿈>)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는 그분의 1주기를 앞두고 ‘만약 지금 성 선생이 살아 계시다면 어떤 일을 하실까’를 생각해 본다. 불통, 독선, 무능, 후안무치, 유체이탈을 ‘전매특허’로 삼고 있는 박근혜 정권이 이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수구보수세력이 내년 총선과 2016년 대선에서 ‘영구집권 체제’를 다지는 것을 결코 방관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주주의국민행동의 앞장에 서서 무기력한 제일야당을 강하게 비판하고 민주대연합을 통한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강력히 추진하시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우리 곁에 안 계시니 ‘산 자들’이 깃발을 높이 들고 뜻있는 국민들과 함께 의연하게 민주화와 통일의 길로 달려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