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의견서]방통위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에 대한 민언련 의견서(2015.8.14)
돈 받고 홍보성 프로그램 제작하는 잘못된 관행을
확대‧고착할 우려만 커진 개정안 철회하라
방송통신위원회는 2015년 8월 6일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대통령령 제26422호, 2015. 7. 20. 일부개정)을 반영하여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방통위는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에 대해 20일간의 행정예고를 통해 방송사업자, 시청자단체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반영하여, 9월에 의결하고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민언련은 8월 20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위원에게 우리 단체의 의견을 제출한다.
이번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은 규제 완화와 규제 강화를 적절히 조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시청자의 시청권을 침해하고 방송의 공적 책무를 훼손하며,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만 낮출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기업체가 돈을 주고 홍보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협찬고지’라는 제도를 쉽게 악용할 수 있도록 정비해준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민언련은 이번 개정안에 △협찬고지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하고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위해 협찬고지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한다.
또한, 민언련은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원안 통과시킨 8월 6일 방통위 전체회의가 여당 추천위원 3인 만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안건을 둘러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야당 추천위원이 불참한 상황에서 이번 안건을 속전속결로 강행 처리한 것은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의사결정 방식을 철저히 외면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철회하고, 규칙 개정안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1. 협찬주명을 프로그램 제목으로 허용한 것은 홍보방송을 허용하는 셈
개정안은 “방송사업자는 협찬주명을 프로그램제목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기존 규칙 제 6조(협찬주명의 프로그램 사용금지)를 사실상 전면 폐지하고, 협찬주명(로고 포함), 기업표어, 상품명까지도 프로그램 제목에 포함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방통위는 시청자를 위해 방송 중에는 협찬주명이 포함된 제목의 고지를 금지하고, 시청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방송 시작 전후 타이틀 고지와 예고 고지, 프로그램 광고의 예고자막 방송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고 한다. 또한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처럼 방송프로그램의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하는 것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방송사가 음성적으로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홍보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던 관행을 더 수월하고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길을 터준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체명을 프로그램 제목에 넣어서 프로그램 앞뒤로 고지하는 수위가 아님을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방송사는 프로그램 제목에 기업체명을 넣어준다며 거액을 협찬받을 것이며, 기업체는 단순히 제목을 고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방송 여기저기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기업체 홍보성 내용을 담기를 원할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프로그램명에 기업명을 넣고 있다는 방통위의 보도자료도 불리한 여론을 의식한 구차한 설명일 뿐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방통위가 허용한 방송사와 기업체의 짬짜미 판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시청자이다. 앞으로 많은 다큐멘터리나 정보프로그램, 오락프로그램들이 기업 홍보성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과 보도ㆍ시사ㆍ논평ㆍ토론 등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방송프로그램의 경우는 제외했다고 하지만, 이는 단서조항으로 달 필요도 없는 당연한 조치일 뿐이다. 따라서 이 조항은 이번 개정에서 반드시 철회되어야 할 사안이다.
2. 협찬고지 건당 제한시간 폐지한 채 1회 고지 허용시간 확대한 것도 문제
개정안에는 제8조∼제11조에 있는 협찬고지 1건당 5초라고 정해있던 기존 제한시간을 폐지했다. 게다가 지상파중앙방송사업자와 지상파지역방송사업자는 1회 고지허용시간을 기존 20초에서 30초로 확대했으며, 종합유선방송사업자‧위성방송사업자‧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기존 30초에서 45초로 확대했다.
이렇게 되면 방송사는 협찬고지를 받기가 더욱 수월해지고, 기업체는 5초라는 제한시간은 넘어서 협찬고지 노출이 가능해진다. 특히 한 기업체가 30초까지 협찬고지를 내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제 완화는 방송사와 기업체에만 좋을 뿐 방송의 공익성 측면에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은 거액의 협찬금을 내고 프로그램을 장악할 수 있게 되며, 이로 인해 사실상 기업체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전략시킬 우려도 있다. 따라서 협찬고지는 기존 건당 5초의 제한시간 만이라도 유지하기를 권한다.
3. 방송협찬고지에 대한 심의규정 마련해 실효성 있는 심의 되도록 해야
개정안은 제 7조 2항으로 “방송사업자가 협찬을 받아 협찬고지를 하는 경우에는 심의절차 마련 등 투명한 집행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규제 완화와 더불어 시청권 보호를 위한 협찬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자체 심의절차 마련을 의무화했다고 생색을 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방송사의 자율적인 내부심의 절차를 마련하라는 것뿐이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심의를 할 것인지도 사실상 없다. 따라서 내부 심의라는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방송사가 면죄부를 받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방통위는「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과 같은 「방송협찬고지에 관한 규정」을 만들고. 최소한 방송광고 수준의 심의와 투명성이 제고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4.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재개정 필요
기존「방송법시행령」제 60조(협찬고지)와「협찬고지에 관한 규정」제 7조(방소의 공정성 및 공공성 유지)에서는 “법령 또는「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방송광고가 금지된 상품이나 용역을 제조‧판매 또는 제공하는 자”는 협찬고지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난 7월 20일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에서는 “다른 법령 또는 심의규정에 따라 방송광고가 금지된 상품이나 용역을 제조·판매 또는 제공하는 자가 방송광고가 금지되지 아니하는 상품이나 용역도 제조·판매 또는 제공하는 경우로서 방송광고가 금지되지 아니하는 상품명이나 용역명만을 협찬고지하는 경우”는 협찬고지를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이번 「협찬고지에 관한 규정」제 7조도 같은 맥락으로 변경되었다.
방통위는 “방송광고가 금지되지 않는 상품명이나 용역명만을 협찬고지”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담배 회사가 만든 건강식품, 술 회사가 만든 음료가 방송의 협찬고지로 나오게 되는 것이며, 이럴 때 누구나 금지품목인 담배와 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개정은 사실상 협찬고지 품목을 제한하고 있는 기본 취지인 ‘방송의 공정성 및 공공성 유지’를 사실상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언련은 지난 1월 21일에 제출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주요 내용에 대한 의견서>에서 공공기관의 방송사 협찬을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당시 민언련은 특히 방송사가 행하는 공익성 캠페인 외에, 방송사 주최·주관 문화예술, 스포츠 등 공익행사에 대한 마사회·KT&G 등 공익에 반하는 재화·서비스업자 등의 공공기관 협찬을 추가로 허용하는 것은 방송윤리 차원에서 공익에 반하는 효과를 낼 것임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언련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아, 공공기관 또는「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공익법인이 공익성 캠페인이나 공익행사를 협찬하는 경우로서 협찬주명만을 협찬고지하는 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방송광고나 방송 협찬고지는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방통위가 그동안 공익 차원에서 광고를 금지해온 품목과 업체가 협찬고지를 할 수 있도록 무리하게 시행령을 개정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 방통위는 방송의 공적 책무보다는 방송사의 수입을 늘려주기 위해 복무하는 기관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언련은 7월 20일 개정되어 오는 9월 21일부터 시행될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방송의 공익성이나 공공성 등을 저버린 규제완화라는 점에서 반드시 재개정되어야 함을 강하게 피력한다. <끝>
2015년 8월 1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