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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영화 <암살>을 비판한 동아일보 칼럼에 대한 논평(2015.8.13)
등록 2015.08.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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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우파’ 행세하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한 동아일보

 

 

 동아일보가 <홍찬식 칼럼/영화 ‘암살’의 역사 왜곡>(8/12)에서 현재 흥행 중인 영화 <암살>을 문제 삼았다. 칼럼은 영화 <암살>이 좌파 독립 운동가를 치켜세우면서 친일파를 과도하게 민족 반역자로 몰았고, 광복 70주년이 “어느 모로 보나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날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편이 갈려 더 으르렁대고 있다”며 영화의 흥행을 우려했다.

 

 칼럼의 황당한 궤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칼럼은 영화 속 가상 인물 염석진이 ‘실존 인물인 염동진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제한 뒤, “영화 ‘암살’이 좌파 김원봉을 도드라지게 하고 우파 염동진을 악역으로 묘사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김원봉을 좌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보고 있는 것 자체가 독립운동사에 무지한 문외한의 편견이다. 김원봉은 독립운동을 시작한 이래 해방 이후 환국할 때까지 좌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적이 없다.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손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 김원봉이었다.
실제 동아일보는 1925년 2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합치되는 두 운동,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이라는 제목의 외부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자는 상하이를 근거로 의열투쟁을 도모하던 김원봉이었다. 기고문의 내용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독립운동은 정통 좌파가 주장하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종족투쟁 곧 민족투쟁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한데 힘을 합해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가 김원봉을 정말 좌파로 단정한다면, 김원봉의 기고문을 싣고 수시로 김원봉의 활동을 보도하던 일제강점기의 동아일보도 좌파 선전지라고 봐야 한다. 또한 김원봉을 좌파로 몰아간다면, 국무위원으로 참여한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좌파 단체이며, 더 나아가 해방 이후 동아일보의 사주인 김성수와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송진우가 중심이 되어 만든 한민당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국가 건설의 주체로 삼아야 한다는 ‘임정봉대론’을 내세운 것도 좌파의 책동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원봉이 해방 이후 월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원봉의 월북이 대표적인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수석 논설위원이라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역사적 사실에 눈을 감은 채 좌우합작주의자이던 김원봉을 마치 극좌적인 인물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한때나마 민족언론을 자처하던 언론사로서의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과거 동아일보의 지면을 다시 살펴보기를 권한다.

 

 염동진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은 염석진이라는 캐릭터를 미육군문서에 의거, 독립운동 중 붙잡혀 밀정이 된 실존인물 염동진을 모티브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칼럼은 우선 염동진에 대해 “광복 이후 국내 공산주의자를 상대로 테러를 가하는 핵심 인물”이었으며, “1937년부터 1940년까지의 그의 활동 공백만으로 장기간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를 민족 배신자로 모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편들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염동진은 일본 관동군에 협력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에 친일파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더군나 <암살> 속 염석진이라는 캐릭터에는 더 많은 친일파의 모습이 겹쳐져 있다. 해방 이후 염석진이 경찰의 간부가 되어 거들먹거리는 장면에서 노덕술을 연상하거나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나야말로 애국자라고 강변하는 모습에서 이종형이라는 밀정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동아일보가 염석진이 곧 염동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무엇보다 동아일보는 역사적 사실조차 무시한 채 독립 운동가 김원봉과 친일 밀정 염석진을 제멋대로 좌‧우파로 나눈 뒤, 악질적인 친일파를 남한 우파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런 동아일보의 과민반응은 친일청산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가진 친일파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우파’ 행세를 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고백한 셈이 아닌가 싶다.

 

 한편 칼럼은 영화 <암살>에서 광복 후 남한의 경찰로 변신한 친일파 염석진을 응징하는 장면이 “왜곡을 부를 수 있다”면서 “독립운동 세력만이 역사적 당위인 것으로 근현대사를 바라보면 당시 국내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이나 이후 세워진 대한민국의 성취는 초라하거나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친일파의 변신이 굴절된 우리 역사의 표본처럼 이어져 왔던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도 도대체 어디에 왜곡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독립운동의 정신이 역사적 당위임을 명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 칼럼은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파에 응당한 처벌을 가하고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역사의 정론으로 세우는 일을 두려워하는 자의 궤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홍찬식이 칼럼 말미에서 문재인, 이종걸 등 친일파를 비판하는 야당 정치인들을 사회분열 책동자로 왜곡․선동하는가 하면, 관권 부정선거로 논란이 된 박근혜의 대선 승리를 혼란스런 국가 정체성을 바로잡으라는 국민의 뜻이라고 용감하게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과연 대한민국 주류언론의 논설위원이 맞는지 혼란을 느끼게 한다.

 

 독립운동은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민족과 국가의 기틀이 된 숭고한 희생이다. 영화 <암살>이 큰 인기를 끄는 것도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열을 기리고자 하는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국민의 뜻과 다르게 섣부르게 우파를 옹호하려다 친일파를 두둔하고 헌법 정신마저 내던진 동아일보 <홍찬식 칼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을 모욕하고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이런 주장이 외부 기고가도 아닌 자사 수석 논설위원의 고정칼럼에 게재되었다는 것 자체가 친일부역언론 동아일보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칼럼에는 사상 초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암살>로 인해 친일청산의 열기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동아일보의 속내가 담겨있다.

 

 오늘도 동아일보는 송평인 논설위원의 칼럼 <송평인의 시사 讀說/ 함석헌에서 배우는 겸손한 해방>(8/13)에서 함석헌 선생의 “해방은 도적같이 온 것이다. 고로 하늘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미신이라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라는 말을 제 멋대로 해석하여 “많아야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던 병력으로 일본의 패망에 무슨 기여나 한 것처럼 억지를 부려선 안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동아일보가 독립정신을 왜곡하고 친일청산을 회피한다면, 그 칼날이 도리어 동아일보와 창립자 김성수의 친일행각으로 집중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끝>

 

 

2015년 8월 1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