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과 나] 오늘 제가 주목한 단어는 영화분과 민씨네입니다.
등록 2015.04.2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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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주목한 단어는 영화분과 민씨네입니다. 


최윤실 회원



하이드 지킬 나 

떨렸다. 찔렸다. 그리고 망설였다. 총회가 끝난 며칠 후 민언련 발신 전화가 오고 찰나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총회에 위임도 안 하고 참석 안 했다고 혹시? 설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추측을…. 조용히 회비만 내는 회원일 뿐인데…. 큰 행사가 또 있나? 받지 말아야 하나? 살아보니 정면 돌파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는데… 일단 통화를 하자.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아뿔싸! 원고 청탁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회원 통신에 <민언련과 나>라는 섹션이 특히 마음에 들기는 했다. 글을 읽으며 아주 잠깐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왔다. 그동안의 필진을 보니 뜨르르한 선배들인지라 아직 순번이 안 된다고 슬쩍 빼기도 하고 한 달만 연기하자고 딜(deal)도 걸었다. 부질없다. 다음 달로 미루는 게 무슨 의미랴. 이후 핫라인으로 사진을 수배했고 고이 간직했던 추억들을 떠올렸다.


내 삶에 가장 강렬하고 뜨거운 민씨네 시절

민언련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몇 차에 걸친 뒤풀이 자리를 지키며 혼자 조금 울컥했다. 묵묵하게 30년을 견뎌 온 민언련이 대견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갑고 준비하느라 고생한 스텝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故 성유보 이사장님을 비롯해 함께하지 못한 영화분과 민씨네 회원들이 매우 그리웠다. 한참 잘나갔던 영화분과 민씨네는 민언련 행사라면 열 일 제치고 참석하는 열성 회원들이 유독 많았는데 그 덕분인가? 현재 이사진을 장악(?)하고 있다. 민언련 행사에서 영화분과 민씨네의 활약은 유독 두드러졌다. 영화분과원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건 다 해 회원들에게는 큰 즐거움을 선사하였고, 수련회나 송년회에서 장기자랑으로 각종 상을 휩쓸었다.

되돌아보면 민언련 영화분과 민씨네 시절이 내 삶에 있어 가장 강렬했고 뜨거웠다.

우연히 참석했던 광주순례의 인연이 이어져 영화분과 민씨네에 가입하고 언론학교를 비롯한 몇 개의 강의를 수료하며 분과활동 외에도 참으로 민언련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당시는 요일마다 다른 분과들이 모임을 했는데 회원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였다.

민씨네는 매주 금요일 밤 7시에 모여 잘 짜진 커리큘럼으로 선정된 영화를 감상하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다들 주관이 분명한 분과원이었던지라 뒤풀이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늘 새벽까지 술을 먹고 동이 틀 무렵에 헤어지곤 했다. 민씨네 식구들은 시간에 맞출 수가 없어 영화는 보지 못해도 뒤풀이는 반드시 참석하는 열성을 보여줬으며 영화보다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모이는 분과였다. 영화분과 민씨네 안에는 좋은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한 소규모 스터디 그룹도 만들어졌는데 철학, 미술, 음악, 문학, 역사 등 다방면에서 선정한 교재로 발제하며 인문학적 소양도 기르고 몹시 충실한 뒤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제1회 전주영화제 아이디 패스를 받아 모텔 방에 며칠씩 같이 지내며 각자 취향의 영화를 본 후 한밤중에 품평회를 벌이고 곗돈 붓듯 회비를 모아 DVD를 방을 꾸며 영화뿐만 아니라 월드컵 축구도 응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저는 영화분과 민씨네 마지막 분과장입니다. 

허나, 분과원들이 하나둘씩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고 회사 생활 연차가 올라가는 만큼 무거워진 책임감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면서 급격히 활기를 잃어갔다. 각자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한두 명이 모여 영화를 보거나 아예 영화 상영을 못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민언련 캐비닛에 모아둔 영화의 라벨 붙이는 것부터 시작해 최연소 분과장으로 선출된 나는 분과원들의 동의를 얻어 결국 영화분과 민씨네 해체를 결정했다. 한동안 금요일 7시 금단현상에 시달렸으며 미친 듯이 사랑했던 것과의 이별은 만만찮은 후유증을 남겼다.


그래도 살아간다.

이년 전 영화분과 민씨네가 탄생 20주년 기념 파티를 했다. 연락된 거의 모든 사람이 모였고, 몇 년 만에 만났어도 왁자지껄 그렇게 설레고 신날 수가 없었다. 영화 퀴즈 난이도는 10주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맞추지 못했고 비록 단체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모두 그려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민언련 영화분과 민씨네 30주년에 다시 만나도 우리는 여전히 유쾌할 것이고 영화 퀴즈에 승부욕을 발휘할 것이며 서로 늙지 않았다고 감탄하며 처음 봤을 때와 똑같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렇게 영화분과 민씨네는 우리에게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