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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완구 녹취록 한국일보 사보 관련 논평(2015.02.11)
등록 2015.02.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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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보도 기피, 한국일보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완구 총리후보가 몇몇 정치부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한 녹취록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시민사회는 유사 이래 가장 추악한 권언유착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화 한 통화로 방송사 패널을 빼라고 명령하고, 방송사 간부는 명령에 즉시 복종했다. “어이 이 국장, 야 김 부장” 하면서 기자들을 자신의 부하 부르듯 했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이완구 후보의 문제는 비단 그의 ‘언론관’만이 아니다. 깡패 두목이 수하 졸개를 대하는 듯한 그의 폭언은 즉흥적으로 나타난 실수가 아니라 출세 가도를 달려온 그의 속물적인 인생관과 처세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총리 후보와 언론인들의 간담회 자리를 ‘사적인 자리’로 치부하고, 거기서 나온 대화를 ‘사적인 대화’라고 강변하는 것 자체가, 세상만사를 사적인 관계로 보려는 습속을 드러낸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공직자로서 ‘부적격’이며 매우 위험천만한 사람이다. 

언론인에 대해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른 채 죽을 수 있다”고 한 그의 조롱섞인 망언은 언론인에 대한 협박이고 폭력이며, ‘인간적으로 친한 언론인’은 교수도 만들고 대학 총장도 만들어 주었다는 그의 힘 자랑은 언론인들에게 당근의 유혹과도 같은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를 혁파하기 위해 만든 ‘김영란법’을 부패 언론인들에 대한 거래와 협박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이 그들의 상사와 선배와 언론 전체를 능욕하는 이완구의 이러한 도발에 대해, 아무런 지적도 제지도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더구나 해당 언론사가 총리 후보의 이 같은 경천동지할 발언 내용을 확인하고도 기사화하지 않은 채, 녹취록을 야당에 전달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해당 기자를 ‘취재 윤리’로 징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10일 한국일보는 <이완구 총리후보 녹취록 공개파문 관련 본보 입장>이라는 사고(社告)를 1면에 게재하고 김경협 의원과 KBS를 통해 공개된 이 후보자의 발언 녹취록은 한국일보 기자가 녹음한 것임을 밝혔다. 이에 앞서 민언련을 비롯한 14개 언론‧시민단체는 지난 9일 <이완구 총리 후보의 언론 장악 규탄 및 사퇴 촉구 언론․시민단체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에 언론사들이 침묵한 이유에 대해 해명을 요구한 바 있다. 우리는 한국일보가 타 언론사에 비해 비교적 발 빠르게 입장을 밝혔다는 점을 평가한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사고 내용은 지금까지 중립노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한국일보의 위상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매우 실망스럽고 본말이 전도된 궤변으로, 정치적 외압에 굴복한 흔적을 짙게 풍기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는 해당 기자의 녹취록을 보고 받고도 보도를 보류한 이유를 이 후보가 ‘매우 흥분된 상태’였고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완구의 설명과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이는 이완구 후보의 ‘아무도 모르게 죽인다’는 채찍에 굴복했거나, ‘총장 시켜주겠다’는 당근에 회유당한 셈이다. 백번 양보해서 보도를 ‘보류’했을 뿐이라 하더라도, 이번 사고에서 보여주는 한국일보 데스크의 태도는 묵과할 수 없다. 

 

한국일보는 사고를 통해 자사 기자가 김경협 의원실 관계자를 취재하던 도중 이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김 의원 측에서 녹음파일을 요구했고, 해당 기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파일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재 내용이 담긴 파일을 상대방 정당에 제공한 점과 당사자 동의 없이 발언 내용을 녹음한 것에 대해 “이번 사태가 취재윤리에 반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보고 관련자들에게 엄중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기자로부터 취재 내용을 보고받고도 보도를 하지 않은 채, 언론의 책임과 국민의 알 권리를 내팽개친 데스크의 반성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일보는 “당사자 동의 없이 발언 내용을 녹음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했지만, 대화에 참여한 일원이 녹취를 행한 것을 ‘통신비밀보호법’ 상 불법으로 규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처럼 권력에 가려진 공적 영역의 진실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취재윤리와 관련한 한국일보의 잣대는 매우 편향적이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 2조(취재준칙)에는 언론인이 “비윤리적인 또는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고 2조 5항(도청 및 비밀촬영 금지)에서도 개인의 전화도청이나 비밀 촬영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녹취는 비윤리적인 것도 불법적인 것도 아니다. 언론의 집중 검증을 받고 있는 총리 후보자와 기자들과의 간담회가 이 후보의 사생활이 될 수도 없다. 2조 1항(신분사칭, 위장 및 문서반출 금지)에도 단서조항으로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와 다른 수단을 통해 취재할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적시되어 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총리 후보 검증은 공익을 위해 반드시 밝혀져야 할 문제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일보는 또한 녹취록을 김 의원에게 전달한 행위를 문제 삼았다.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본인, 친인척 또는 기타 지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거나 다른 개인이나 기관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한 신문윤리실천요강 14조(정보의 부당이용 금지)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14조가 주식 및 부동산 정보 등을 이해당사자가 사적으로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무엇보다 ‘신문윤리실천요강’을 보면 언론인의 윤리강령을 어긴 것은 한국일보 데스크이다. 언론인은 언론 자유와 독립을 위해 부당한 압력을 거부해야 하며 이는 신문윤리실천요강 1조의 내용이다. 1조 1항(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에는 “언론인은 정권, 정당 및 정파 등 어떠한 정치권력이 언론에 대해 가하는 부당한 압력과 청탁을 거부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사설에서 “(녹취를 한)기자는 정작 자신이 소속된 매체에는 이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하지도 않았다”면서 “처음부터 취재 목적이 아니었다”며 이완구 후보 관련 기사가 보도되는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곁가지로 원줄기를 흩뜨리는 조선일보의 여론왜곡은 익히 보아왔던 터이다. 92년 대선과정에서 김기춘 당시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부산의 기관장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던 초원복국집 사건, 97년 대선 당시 특정 후보와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던 삼성X파일 사건 등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여론의 물줄기를 바꿨던 것도 정치권력과 수구언론들의 합작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어렵게 건강한 저널리즘을 고수해 왔던 한국일보가 특정 정권의 홍보지에 가까운 조선일보의 프레임을 추종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위정자의 문드러진 언론관과 이에 조응하는 언론의 실체는 한 총리후보의 인준보다 우리에게 더욱 중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한국일보의 사고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한국일보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끝>

 

2015.02.11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