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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MBC, 대안은 다시 노동조합이다(이완기)
등록 2014.11.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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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조직개편안과 PD학살 등 MBC 파행에 대한 제언

길 잃은 MBC, 대안은 다시 노동조합이다



이완기(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MBC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공영체제의 간판을 달고 있으면서도 공영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권력에 대한 비판은커녕 권부의 아첨꾼으로 전락했다. 시청자들은 MBC뉴스에서 얻을 정보는 없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이제는 아예 MBC뉴스를 외면한 지 오래다.




지난 달 21일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뷰앤폴과 리서치뷰의 공동 조사에서 MBC의 신뢰도는 지상파 꼴찌를 기록했고, 8월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시사저널 설문조사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2011년 1위에서 무려 5단계가 하락한 것이다. 9월 시사IN 조사에서도 지난해 2위(20.6%)에서 올해 6위(5.9%)로 떨어졌다. 영향력은 지난 8월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자협회보 조사에서 7위(1.2%)를 기록했는데 1위인 KBS(46.3%)와의 격차가 무려 45.1%나 되었다. 시청자 만족도도 지난 9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조사 결과, 지상파 4개 채널 중 가장 낮았고, 공익성, 공정성, 신뢰성, 유익성, 다양성 등 5개 영역에서 최하위 점수를 얻었다. MBC역사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참담한 결과이다.


경영진은 2012년 170일 파업 기간에 시용직·경력직 사원을 대거 채용했고, 이후에도 파업 참여 직원들에 대한 보복인사로 업무공백이 생기자 이를 메우기 위해 똑같은 조치를 반복했다. 김재철 사장 때부터 지금까지 경영진은 노조의 DNA를 씻어내 MBC를 개조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고 이러한 인사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이는 1975년 유신치하에서 113명을 해고했던 동아일보 사태를 보는 듯하며, 1980년 신군부가 저항언론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저지른 언론인 대학살을 방불케 한다. 1975년과 1980년 모두 군부독재의 억압적 분위기가 작용했지만, 이 언론인 대학살에 적극 나섰던 부역자들은 언론 사주와 동료 언론인들이었다는 점에서 되풀이 되는 역사의 불행을 보는 듯하다.



MBC 몰락은 모르쇠, 현재 자신의 자리에만 몰두하는 MBC경영진


앞서 여러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MBC 개조작업’의 결과로 MBC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끝없이 추락해 왔고, 조직 내부는 분열과 불신과 상호 적대감만 증폭되어 왔다. 시용·경력직 사원들과 기존 구성원들과의 교감은 없고, 선·후배 간의 친밀감도 담아내기 어려우며, MBC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개개의 섬처럼 분리된 사고체계 속에서 MBC의 몰락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경영진은 오로지 현재의 자리와, 미래를 담보해 줄 권력과, MBC에서 편안하게 사는 방법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무책임한 처세 담론이 그들의 인너서클에만 머물지 않고 암세포처럼 전파되어 MBC조직 전체로 확산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MBC 밖의 환경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MBC 주변에는 하나같이 MBC붕괴를 바라거나 붕괴를 부추기는 세력들뿐이다. 방문진이 그렇고, 방송통신위원회가 그렇고 정치권과 청와대가 그렇다. 애초부터 MBC의 사영화에 방점을 찍었던 그들이 공영방송 MBC의 미래를 걱정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이번의 느닷없는 교양국 해체와 그에 따른 보복인사는 그러한 권부의 분위기가 전달된 결과일 터이다. 진짜 목적은 교양국 해체에 있기보다 저항 언론인들을 격리·관리하기 위함이며 교양국 해체 후 후속 인사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MBC 노조의 어려운 상황 이해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노조뿐


유일한 개혁세력인 MBC노동조합은 무단협 상황 속에서 상암동 신사옥 높은 곳 한 귀퉁이에 위치한 고탑(高塔)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과거 노조 방침에 동조했던 언론인들은 전보, 교육 등의 인사조치로 프로그램 제작권을 박탈당했고, 조금이라도 저항의 기미가 보이면 정직, 해고 등 중징계로 경제적 압박까지 가해진다. 노조는 저항을 통해 아무런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인의 부담만 가중되고 그 또한 노조의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한탄할 뿐이다. 무단협 상황에서 경영진은 공정방송조항 폐지, 노조강령의 수정 등 노조의 존재 근거와 자율권마저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조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해 있다.


시용·경력 사원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사회적 위상과 높은 임금을 보장받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인지상정이다. 상당수의 언론노동자들이 그러하듯, 당초부터 무슨 사회정의나 언론의 자유와 같은 지고지순한 목적을 가지고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는 언론인은 많지 않다. 좋은 처우와 복지, 사회적 위상 등 세속적인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 아니던가.


그러나 1987년 6.10대항쟁 이래로 축적된 MBC노조의 역사와 전통과 신념체계 등이 새 입사자들의 인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노조의 창립정신이 새 방송인들에게 착근하지 못하고 浮游하고 있는 것은 MBC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MBC 구성원들은 스스로 독재권력의 나팔수로 살아왔음을 부끄럽게 여겼고, 각성을 했고, 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숱한 투쟁을 벌여 자발적 저항의식을 키워왔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노조를 부정하고 말살하려 했던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도 당시에는 그 신념체계에 동조했고 그 속에서 살아 왔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다. 지금 다시 MBC에서 희망을 말한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다시 진정한 언론자유를 위해 깃발을 들어야 한다. 불의를 보고 모른척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힘의 논리에 굴종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탄압에 눈치 보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민중의 아픔에도 침묵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누릴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될 수 없다. 정의에 입각한 자율적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언론인들은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이지 당국에서 허용받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여 주는 것이 아니다.”고 외쳤다. 1980년 신군부의 검열을 거부했던 기자협회도 “자유언론의 구현은 언론인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선언했다.


MBC노조의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제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찾기 위해 행동을 준비할 때이다. 2012년 MBC 해고자들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던 박근혜, 2014년 세월호유가족들 앞에서 “모두가 대통령인 제 책임이다”고 했던 박근혜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책에 “당당하게 다시 일어나겠다”는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의 각오대로, 노조는 노조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